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의 재산상 가치는 34억 원으로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되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작은 사진은 경복궁 근정전 전경과 경회루 야경. 최준필·이종현 기자
문화재청 건물대장에 따르면 문화재청이 관리하고 있는 문화재 건물은 총 653점, 재산상 가치는 총 ‘3171억 원’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416점(2889억 620여만 원)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경기 138점(189억 1896여만 원) ▲전북 33점(51억 7500여만 원) ▲강원 24점(23억 3960여만 원) ▲충남 21점(5억 4300여만 원) ▲경북 7점(2억 100여만 원) ▲부산 5점(2억 2687여만 원) ▲전남 4점(1억 4200여만 원) ▲충북 2점(3910만 원) ▲제주 1점(5247만 원) ▲경남 1점(174만 원) 순으로 많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라도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거나 사찰 같은 경우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경우 건물 대장에 재산 가치 산정이 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재산상 가치는 어느 문화재 건물이 가장 높을까. <일요신문>이 문화재청 건물대장 전 리스트를 입수한 바에 따르면 ‘구 서울역사’가 ‘158억 원’으로 가장 가격이 높았다. 1922년에 지어진 구 서울역사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철도 건물이라는 점에서 건축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전해진다. 그 다음에는 경복궁 경회루 99억 원, 한국의 집 취선관 98억 원, 경복궁 근정전 행각 및 근정문이 87억 원을 기록했다. 보물 제812호이자 경복궁 근정전의 남문인 근정문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궁궐 정전(가장 주된 건물)의 남문 중 유일하게 2층 건물로 지어져 궁의 위엄에 맞게 조성되었다는 평을 얻고 있다. 그 뒤는 서울 태릉과 강릉에 있는 취호관(71억 원), 종묘의 정전(67억 원) 등이 이었다.
재산 가치 톱 20위에는 궁궐 내부에 있는 건물이 대부분 이름을 올렸다. 경복궁이 6개 건물, 창덕궁이 3개 건물, 덕수궁이 2개, 종묘가 2개 건물이 들어가 있는 식이다. 사적 201호인 서울 태릉과 강릉 건물도 2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관청인 ‘종친부’(조선시대 종실제군(宗室諸君)의 일을 관장하던 관서)도 톱 20위권 안에 포함됐다.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9호인 종친부의 재산상 가치는 ‘37억 원’이다.
궁궐 내부 건물이 재산상 가치가 높은 만큼 서울 5대 고궁 건물의 재산상 가치도 주목되고 있다. 궁궐 내에 있는 문화재들의 재산상 가치를 종합한 결과 경복궁이 ‘888억 8000여만 원’으로 가장 높았고, 창덕궁이 633억 3000여만 원, 덕수궁이 194억 3000여만 원, 창경궁이 154억 4000여만 원, 종묘가 149억 5000여만 원 순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부동산 가치까지 따진다면 가격은 더욱 더 올라갈 것으로 추산된다.
문화재의 재산상 가치가 높은 건물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재산상 가치 톱 50위권은 전북 덕진에 위치한 ‘조경단비각’을 제외하곤 모두 서울에 위치한 문화재들이 차지하고 있다. 조경단비각은 전주 이 씨의 시조 이한(李翰)의 묘소로 1973년 전라북도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었다. 조경단비각의 재산상 가치는 ‘24억 원’을 기록했다.
문화재의 재산상 가치가 처음으로 이렇게 공개되자 일각에서는 “문화재의 가치에 비해 가격이 너무 낮게 책정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국보 1호인 숭례문의 재산상 가치(34억 원)다. ‘남대문’이 서울 강남의 웬만한 고급 아파트 한 채 값밖에 되지 않는 충격적인 가치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재 위원은 “문화재를 가격으로 가치를 따진다는 게 조금 무리가 있지만, 어쨌든 그 가격에는 문화재적인 가치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숭례문은 그 점에서 조금 의외였다”라고 전했다. 숭례문뿐만 아니라 경복궁의 중심이 되는 근정전은 32억 원, 서울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광화문은 63억 원, 궁궐 안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덕수궁 석조전은 66억 원을 기록했다. 모두 예상보다는 재산상 가치가 그리 높지 않다는 시각이 상당하다.
구 서울역사는 현재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반면 국립고궁박물관(353억 원), 국립무형유산원(727억 원) 등은 상당한 재산상 가치를 갖고 있어 대조되는 모습을 보인다. 전북 전주에 위치한 국립무형유산원(문화재청 산하단체 건물)은 지난해 10월에 준공된 ‘신생 건물’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거듭된 리모델링으로 재산상 가치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국보 1호 숭례문과 비교하면 국립고궁박물관은 10배, 국립무형유산원은 ‘21배’ 높은 재산상 가치를 갖고 있다. 역사가 오래된 문화유산보다는 최근에 짓거나 리모델링한 현대식 건물의 재산상 가치가 월등히 높은 것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화재라면 오래된 것이 더 가치가 있다는 일반적 상식을 뒤집는 것이다.
문화재청이 보유한 총 건물의 재산상 가치를 보면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문화재청이 보유한 건물 재산상 가치 ‘톱 10’ 중 역사가 오래된 문화재는 ‘구 서울역사’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톱 10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현대식 건물이다.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종합체육관 346억 원, 문화재보존과학센터 185억 원, 태릉에 위치한 국제스케이트장이 153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문화재 중 가장 높은 가격인 경복궁 경회루(99억 원)보다 최소 1.5배에서 3배는 높은 수준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유재산대장은 국유재산법 제5조에 따른 국유재산의 범위에 따라 통상 공시지가를 기준(문화재 포함)으로 등재된다. 국유재산이 등재되기 시작한 60~70년대 최초 취득금액을 기준으로 각 재산의 간헐적 자본투입비용을 산입해 매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한 재산가액으로 관리한다”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숭례문이나 근정전도 건축물이므로 감정평가에 의해 가격을 산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가 있다. 때문에 체감 가치와 실가치 간 차이가 발생되고 있다”고 해명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