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이 영화가 흥행한 까닭은 무엇일까. 설민석 강사가 인강에서 미스터리라고 밝힌 부분이 있다. 바로 명량해전 초기 상황이다.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 앞바다에 나서지만 대장선을 제외한 11척의 배는 겁을 먹고 진격하지 못한 채 뒤처진다. 그렇게 이순신 장군이 탄 대장선이 홀로 100여 척의 왜군과 격돌하게 된다. 설민석 강사는 이렇게 얘기한다. “홀로 100여 척의 왜군에게 포위된 이순신 장군이 어떻게 싸워서 이겼는지는 밝혀낸 사람이 없다. 이건 미스터리이고 기적이다.”
영화 <명량>은 바로 이 부분을 스크린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장군과 매우 유사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순신 장군이 현실에서 해낸 1척의 대장선으로 100척의 왜군을 막아내고 결국 12척의 배로 330척을 이기는 불가능한 전투를 김한민 감독은 영화에서 그려내야 했다. 사료가 완전치 않은 만큼 김한민 감독은 스스로 이순신 장군이 돼 명량 앞바다에서의 전투를 직접 완성해야만 했다.
김한민 감독은 두려움을 이용하는 것을 이순신 장군의 가장 중요한 전략이었다고 설명한다. 영화에서 이순신 장군이 아들 회에게 말한 명량해전의 가장 중요한 전략은 ‘두려움을 이용하는 것’이다. ‘두려움이 용기로 바뀔 수만 있다면 백배 천배 용기가 배가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선 자신이 죽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1 대 100으로 싸우는 명량해전 초중반에 모험수를 던진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작전이다. 대장선이 침몰했을 거라 예상되는 장면이었지만 포화 속에서 대장선은 건재함을 드러낸다.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대장선의 위용에 백성들은 환호하고 뒤에서 겁먹고 있던 11척 배의 조선 수군도 비로소 용기를 되찾는다. 그리고 왜군은 공포에 휩싸인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비장의 전략이 제대로 먹히는 순간이다.
그리고 지루할 수 있는 1시간여의 명량해전 직전 상황들을 참아내고 비로소 명량해전 전투 신을 보고 있던 관객들도 그 장면에서 강렬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이 장면에서의 쾌감을 위해 감독은 의도적으로 영화 전반부를 다소 지루하게 끌고 간 것인지도 모른다.
승리가 확정된 뒤 배 안의 수군들은 승전의 기쁨을 나눈다. 한 수군이 묻는다. “우리가 이렇게 고생한 걸 후손들이 알아줄까?” 다른 수군이 답한다. “몰라주면 호로새끼(호래자식)들이지.”
영화는 분명 이순신 장군이 중심이지만 함께 싸운 조선 수군의 헌신과 노력, 그 수고스러움도 스크린에 잘 담겨 있다. 그냥 역사책을 통해 누구나 이순신 장군은 대단한 위인이고 명량해전은 역사에 길이 남을 전투라고 알고 있다. 아니 그렇게 외웠다. 그렇지만 영화 <명량>의 진정한 힘은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이 얼마나 힘겹게 피 흘리며 싸웠는지, 그 수고스러움을 직접 느끼게 한 것이다. 어쩌면 그 덕분에 우리는 호래자식이 될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모면했다. 적어도 1700만여 명의 <명량> 관객은 그렇게 호래자식이 될 위기를 넘겼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