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대망상일까, 아니면 진심어린 호소일까. 자신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진짜 딸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나타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리사 요한센(43). 현재 스웨덴에 거주하고 있는 그녀는 네 자녀의 엄마이자 법대를 졸업한 재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10년 넘게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그녀는 자신이야말로 진짜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이며, 현재 전 세계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로 믿고 있는 리사 마리 프레슬리(46)는 가짜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8월 16일 엘비스 프레슬리 사망 37주기를 맞아 미 연예주간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요한센의 이런 주장에 주목하면서 과연 그녀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망상인지, 아니면 한 번쯤 주목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다루었다.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그녀의 주장은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또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자신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유일한 딸이자 법적 상속녀라고 주장하고 있는 요한센은 지난 1998년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한 자서전을 출간했다. <나, 리사 마리: 엘비스 프레슬리의 진짜 딸 이야기>라는 제목의 이 책은 정식 출간되지 못한 채 현재 해적판으로 암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 책을 출판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출판사 측은 “요한센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요한센이 DNA 테스트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요한센은 출판사 측으로부터 ‘모든 진실을 말한다’는 조건으로 20만 달러(약 2억 원)의 선임료를 받았지만, DNA 검사를 원하는 출판사 측의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지난 2000년 출판사 측은 계약 불이행을 이유로 요한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며, 책 또한 출판하지 않았다. 정확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자칫 책을 출간했다간 미친 사람의 절규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요한센의 남편인 알렉산더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전처이자 요한센의 친모인) 프리실라 프레슬리도,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 측도 DNA 검사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요한센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이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사자들도 가만히 있는데 왜 출판사가 나서서 DNA 검사를 요구하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진짜와 가짜가 바뀌었으며, 또 언제 바뀌었다는 것일까. 요한센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그녀는 1968년 2월 1일 엘비스 애런 프레슬리와 프리실라 앤 불리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멤피스에 위치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저택인 그레이스랜드에서 보낸 사실을 드문드문 기억하고 있었다.
책에서 그녀는 “아버지는 나를 공주처럼 대해 주셨다. 아버지는 집안에서는 왕 그 이상이었다”라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그 시절에 대해 ‘왕이었던 아버지와 천방지축 공주였던 나의 동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장례식에서는 “아버지의 관 안에 야구 글러브를 넣어 드렸던 사실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요한센은 리사 마리가 가짜라는 증거로 “엘비스 프레슬리와 프리실라 프레슬리, 어린 시절 리사 마리는 일자형 머리선이지만 현재의 리사 마리는 V자형 머리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름도 새로 지어야 했다. 어머니는 “이제부터 너는 세리라고 불리게 될거야. 세리 로젠퀴스트야”라고 일러 주었으며, 그때부터 그녀는 ‘세리’로 살기 시작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자주 왔지만 어찌 된 일인지 시간이 지나면서는 점차 횟수가 뜸해졌다.
그렇게 ‘세리’로 살고 있던 어느 날, 그녀는 신문과 TV를 통해 자신이 리사 마리 프레슬리, 즉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젊은 여성의 사진을 봤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요한센은 “나의 안전을 위해서 그러는 거야”라고 굳게 믿었으며, 언젠가 다시 그레이스랜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를 다시 불러주는 사람은 없었으며, 엘비스 프레슬리 가족들 가운데 그녀를 찾는 사람도 없었다.
그녀가 제발로 그레이스랜드를 다시 찾은 것은 지난 1992년이었다. 당시 그녀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숙모인 델다 빅스가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고 주장했으며, 자신의 처지가 너무 억울했던 나머지 곧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자서전을 출간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녀가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자신이 친딸이라는 증거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그녀는 우선 어린 시절 리사 마리의 두상과 얼굴, 그리고 현재의 리사 마리의 두상과 얼굴을 면밀히 비교분석했다. 가령 이마의 경우 어린 시절의 리사 마리의 사진을 보면 이마가 넓고 앞짱구이며, 이마와 앞머리 사이의 경계인 머리선이 일자형이다.
하지만 성인이 된 리사 마리의 이마는 어린 시절보다 10% 이상 더 좁아졌고, 납작한 데다 또한 결정적으로 V자형 머리선을 하고 있다. 이런 V자형 머리선은 유전에 의한 것이고, 또 우성이기 때문에 양쪽 부모 누군가는 V자형 머리선을 타고나야 한다. 하지만 엘비스 프레슬리나 프리실라 프레슬리 그 누구도 V자형 머리선을 하고 있지 않다고 요한센은 주장하고 있다.
또한 요한센은 귓불 역시 어린 시절의 리사 마리는 두툼하고 둥근 데 반해, 현재의 리사 마리의 귓불은 그렇지 않다고도 주장했다.
엘비스 프레슬리, 프리실라 프레슬리 부부와 리사 마리.
이와 관련, 스웨덴의 법의학 전문가인 하칸 보글런드는 리사 마리의 2~9세 때 사진과 18~26세 때 사진 38장을 여러 차례 비교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분명히 다른 사람이다.”
현재 요한센은 엘비스 프레슬리 가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유산인 3억 달러(약 3000억 원)의 유일한 상속녀이며, 잃어버렸던 권리와 명예를 되찾기 위해 싸우겠다는 것이다. <내셔널 인콰이어러>에 따르면 현재 법원에 접수된 고소장에는 피고인이 프리실라 프레슬리로 되어 있으며, “나는 은밀하고 기이한 방법으로 아홉 살 때 지금의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바뀌었다”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요한센이 엘비스 프레슬리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1년에는 한차례 명예훼손 및 정신적 손해 배상 청구를 제기한 바 있다. 당시 그녀가 청구했던 보상액은 1억 3000만 달러(약 1300억 원)였다.
이는 프레슬리 가족의 변호인인 마티 싱어의 신랄한 비난에 따른 것이었다. 싱어가 “그녀의 책에 묘사된 내용은 좀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 리사 요한센, 그녀는 한낱 망상에 가득 찬 여자에 불과하다”라고 비꼬았던 것. 또한 싱어는 “그녀가 수년 전부터 자신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이라는 이상한 주장을 하기 시작한 후부터 엘비스 프레슬리 가족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면서 “모두들 불쾌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녀의 기행을 예로 들었다. 지난 2011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기일을 맞아 다시 한 번 그레이스랜드를 방문했던 요한센이 경비원들과의 실랑이 끝에 경호원들을 따돌리고 몰래 저택 안으로 숨어 들어갔었다는 것이다. 싱어는 “그녀는 경보장치가 울리자 도망쳤다. 감시 카메라를 확인한 결과 그녀가 저택을 무단침입한 증거가 포착됐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런 그녀의 주장과 행동에 대해서 “다분히 악의적이며, 상당히 불쾌하고 부당한 행동이다”라고 맹비난했다.
요한센의 이런 주장에 대해 리사 마리 프레슬리 본인이나 프리실라 프레슬리는 모두 함구하고 있는 상태. 어쩌면 정말 과대망상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의 헛된 주장일 수 있지만 그녀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현재 그녀의 주장을 사진과 함께 비교한 유튜브 동영상은 꾸준히 조회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녀는 자신을 믿고 지지하는 응원에 힘입어 계속해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외동딸’ 리사 마리는 누구 마이클 잭슨과도 결혼 화려한 ‘남성 편력’ 어린 시절을 엘비스의 저택인 그레이스랜드에서 보냈던 리사 마리는 1972년 부모가 별거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그레이스랜드와 프리실리가 거주하고 있던 베벌리힐스를 오가면서 자랐다. 하지만 1977년 8월 16일, 엘비스가 세상을 떠난 후부터는 줄곧 베벌리힐스에서 생활했다. 엘비스의 유일한 상속녀로서 리사 마리는 유언에 따라 25세가 되던 해인 지난 1993년 그레이스랜드의 법적인 소유주가 되었다. 리사 마리의 직업은 가수 겸 작곡가 혹은 작사가다. 지금까지 세 장의 앨범을 발매했으며, 록, 컨트리, 블루스, 포크 등 다양한 음악을 시도하고 있다. 2003년 발매한 데뷔 앨범은 빌보드200 앨범 차트 5위까지 올랐으며, 2005년 발매한 2집 앨범은 9위에 오른 바 있다. 그녀의 남성 편력은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화려하다. 지금까지 네 차례 결혼을 한 그녀는 슬하에 쌍둥이 딸을 포함해 딸 셋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리사 마리와 세 번째 남편 니컬러스 케이지. 하지만 결혼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96년 둘은 이혼했으며, 당시 이혼 사유에 대해서는 ‘타협할 수 없는 차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잭슨과의 관계에 대해 훗날 리사 마리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서 “우리는 이혼 후에도 4년간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했었다. 다시 재결합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함께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여행도 했다”고 털어 놓았다. 리사 마리의 세 번째 남편은 니컬러스 케이지였다. 2000년 만나 첫눈에 서로 사랑에 빠졌던 둘은 2002년 하와이에서 로맨틱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이런 로맨스는 오래 가지 못했다. 결혼한 지 108일 만에 둘은 갈라서고 말았다. 2006년 음반 프로듀서이자 기타리스트인 마이클 록우드와 네 번째 결혼식을 올렸던 리사 마리는 지난 2010년 쌍둥이 딸을 얻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