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애는 외국에서 골프를 배울 당시 “골프선수는 핏(fit)해야지, 팻(fat)하면 안 된다는 말이 각인됐다”며 “몸매를 유지하면서 골프 실력을 키우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2010년 두 차례 우승 이후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그동안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우승 이후 기쁨도 컸지만, 갑자기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가’ 하는 생각에 빠지면서 골프가 안 됐다. 잘 치는 선수들은 넘쳐나고, 그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는 내 자신이 위축되는 걸 느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뉴질랜드로 이민 갔다가 고2 때 한국으로 돌아온 후 힘들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KLPGA 우승으로 내가 나름 소질이 있는 선수라는 걸 알았지만, 2승을 거둔 다음부터는 ‘나의 길’에 대해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꽤 오랫동안 그 고민 속에 빠져 지냈던 것 같다.”
―우승하고 오히려 슬럼프에 빠졌다는 게 이색적으로 보인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했던 점들로 인해 한국 골프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다.
“한국어 발음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왕따도 당했고, 골프계에서도 그리 환영받지는 못했다. 마음 터놓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없었다. 그로 인해 적잖은 오해와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그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던 건, 골프로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9년에 받은 신인왕이 나에게 큰 힘을 줬다. 프로가 된 이후론 생활이 편해졌다. 옷과 골프채 등 후원을 받으며 부족함 없이 골프를 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없더라. 지원 받은 만큼 성적으로 보여줘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을 때는 스폰서가 부담으로 작용했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다 덜컥 멈추는 듯한 기분이 들었을 것 같다.
“한 번 일이 꼬이기 시작하다보니 여러 가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엄마가 암 판정을 받았고, 나 또한 장출혈로 수술을 받기도 했다. 재활 후 다시 경기에 나섰을 때는 길어진 코스의 거리가 내 발목을 잡았다. 이렇듯 우승을 못하는 이유에 대해 ‘변명’하며 보낸 시간들이 3년이나 걸렸다. 지난 3년은 내 골프인생에 ‘사춘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시기를 보낸 후 더욱 단단해져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골퍼 안신애뿐만 아니라 자연인 안신애의 삶도 아픔과 방황의 시간을 거쳐 좀 더 성숙해졌다고 본다.”
―한때 심리상담을 받았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골프는 긍정적인 생각만 해도 잘될까 말까 하는 스포츠다. 그런데 18홀을 도는 다섯 시간 동안 ‘난 왜 안 될까’ ‘소질이 없나?’ ‘포기해야 하는 건가’ 등등의 생각들에 빠지면서 자신감을 잃었다. 혼자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심리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심리치료를 받으며 내 안의 번민들, 복잡한 생각들을 필터링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주위의 시선과 루머 속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내가 듣고 싶은 얘기만 귀담아 들었고,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로 임했다. 행복은 내 마음에 있었다.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진다고 해서 그 돌을 맞을 필요도 없고, 아파할 이유도 없었다. 돌이 날아오면 피하면 되는 것이다.”
제3회 KG•이데일리 레이디스 오픈 2R에서 안신애가 생애 첫 홀인원을 성공시키며 기뻐하는 모습(왼쪽). 오른쪽(사진출처=안신애 트위터)은 걸그룹 애프터스쿨 멤버 유이(맨 왼쪽)와 찍은 기념 사진.
―안신애는 골프보다 외모에 더 신경을 쓴다는 지적도 있었다.
“만약 내가 골프를 잘하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관심을 받을 수 있었을까? 데뷔하자마자 우승을 하며 급부상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고 본다. 나도 여자이고, 내 안에는 골프도 잘하고 싶고, 예쁜 옷도 입고 싶고, 살도 안 쪘으면 좋겠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고 싶은 생각들이 차고 넘친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골프를 잘하고 싶은 바람이다. 외국에서 골프를 배우며 머리에 각인됐던 말이 골프선수는 ‘핏’(fit)해야지, ‘팻’(fat)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다. 골프가 씨름은 아니지 않나. 하체가 뚱뚱해야 힘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서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했고, 지금의 몸매를 유지하면서 골프 실력을 키우려 노력했다.”
―투어 때마다 짧은 치마를 즐겨 입는 걸로 알려졌다. 그토록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경기할 때 신경이 쓰이지 않나.
“2010년 두 차례 우승할 때는 바지만 입었었다. 그러다보니 안신애는 바지를 입어야 우승한다는 징크스가 생기더라. 그래서 징크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때부터 짧은 치마를 입었다. 물론 짧은 치마를 입으면 바지 입을 때보다 더 많은 시선을 받게 된다. 사진기자분들도 유독 노출시의 내 모습을 잡기 위해 셔터를 눌러댄다. 하지만 그로 인해 골프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어리석진 않다.”
―지난해 박유천과의 열애설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후폭풍이 상당했을 텐데, 지금은 좀 정리가 된 편인가.
“원래부터 친한 사이였다. 그런데 그분이 워낙 유명한 연예인이다 보니 사실과 다른 기사들이 부풀려져 보도됐다. 그런 내용의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제일 걱정했던 부분은 앞으로 내 골프인생에 열애설이 브레이크를 걸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이전에는 성적이 안 좋은 것과 관련해 외모와 관련된 내용이 쏟아졌다면, 앞으로는 운동선수가 운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연예인과 어울려 다닌 바람에 골프도 못한다는 비난이 더해질까봐 걱정됐다. 스캔들에 익숙지 않아서 한동안 혼란과 당혹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스캔들이 터진 이후 곧장 예정된 대회에 참가했는데, 주위에서 날 보는 시선들이 엄청났었다. 그래도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외모가 뛰어난 선수가 골프도 잘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건 안신애 프로가 그동안 루머와 비난들에 대해 강심장이 됐구나 하는 부분이다.
“난 평생 골프만 치다가 늙고 싶지 않다. 미 LPGA의 줄리 잉스터나 크리스티 커처럼 아줌마가 된 후에도 골프를 치기보단 결혼 후에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 부모님이 연세가 있으셔서 가급적 결혼을 빨리 할 생각이다. 일본이나 미국으로의 해외진출을 미룬, 아니 포기한 부분도 부모님 때문이다. 외동딸이기 때문에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게 싫다. 골퍼 안신애로 행복을 맛보았다면 여자 안신애로의 삶도 궁금하다. 그래서 내 나이에 ‘3’이란 숫자가 붙기 전에 결혼하고 싶다. 지금 우리나라 나이로 스물 다섯 살인데, 앞으로 4년 안에는 가정을 꾸리고 싶다. 그 다음에는 선수보다는 다른 영역에서 일을 했으면 한다.”
안신애의 결혼 계획이 ‘커밍아웃’처럼 들렸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결혼하고, 서른 살 즈음에 은퇴한다는 내용은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본 안신애는 예뻤다. 그리고 아직 어린 나이지만, 생각이 정리돼 있었고,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계획도 세워져 있었다. 대중의 시선을 즐기고, 프로 선수로서의 마케팅에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며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당당한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쿨하게 인정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LPGA의 박인비는 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여전히 ‘삼촌 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지만, 안신애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골퍼였다.
강원도 정선=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