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비대위원장이 후임자로 이상돈 교수와 안경환 교수 ‘투톱 카드’ 승부수를 던졌지만 당 내부의 반발로 인해 자충수를 둔 꼴이 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지난 5일 서울 용산역에서 시민들에게 귀향 인사를 하는 모습.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지난 9월 12일,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겸 원내대표)은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혁신위원장 자리를 내려놓겠다는 것이 애초 저의 생각”이었다며 사실상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후임 위원장으로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와 이상돈 중앙대 교수를 내정했다. 박 위원장은 그 이유에 대해 “외부인사 영입은 혁신과 확장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됐고 그간 많은 분들을 접촉했다”면서 “이 같은 인선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승리를 위해 갖춰야 할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생각으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추석을 전후해 사퇴와 관련한 박영선 위원장의 거취문제는 이미 예상됐다. 다만 곧바로 비대위를 이끌 후임자 내정이 이뤄졌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대목이었다. 그러자 후임자 내정 과정과 대상을 두고 당 내부에서 극심한 반발에 휩싸였다. 일단 문제의 대상은 역시 이상돈 교수 쪽이다.
알려졌다시피 이 교수는 국내를 대표하는 보수 성향의 법학자로 보수 언론을 통해 야권과 진보를 겨냥한 칼럼을 자주 게재해 온 인물이다. 물론 외부에선 그를 두고 보수 성향의 학자 중에서도 나름 중도적이고 합리적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지난 대선 박근혜 대통령의 선대위 출신이라는 점은 심각한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 대한민국 제1야당의 재건과 개혁을 위한 자리에 상대 진영의 ‘개국공신’을 앉히고자 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의 내정을 두고 일부 당내 인사를 제외하고 친노진영의 강경파는 물론 비노진영의 중도파와 온건파 모두 부정적이다. 적어도 겉으로는. 이미 친노 좌장 문재인 의원 측은 여러 언론을 통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으며, 친노 강경파를 대표하는 정청래 의원은 이 교수의 내정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9·11 테러 같은 느낌”이라고 촌평하며 “박 위원장의 원내대표 당선을 도왔지만 이 교수 영입이 계속된다면 퇴진투쟁을 계속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정동영 상임고문 역시 이날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현해 “세 번째 덜컥수(첫 번째와 두 번째는 두 번의 세월호 합의를 지칭)”라고 폄하하며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새누리당 인사를 당 대표로 영입하겠다는 말은 사람 없다고 문창극 전 주필을 총리에 내정한 박근혜 대통령과 다를 바가 없다”고 공격했다.
일단 비노진영 역시 비슷한 반응이다. 비노 중도 성향이자 차기 당권 후보인 추미애 의원 측은 “해도 너무하지 않느냐”며 “찬성하기 어려운 결정”이라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비노 온건 성향의 조경태 의원은 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조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힐난했다.
애초 후임 비대위원장에 대한 결정 과정부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박영선 비대위는 앞서 여권과의 두 차례 세월호 협상 타결을 두고 실책을 저질렀다. 그 가장 큰 원인으로 당 내부와 유족들과의 소통 부재가 지적됐다. 앞서 정동영 고문 역시 ‘세 번째 덜컥수’라 표현할 만큼 이번 결정 역시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전임 최고위원이자 3선의 중진인 조경태 의원은 “지난주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 고문단에 속한 정동영 고문 역시 방금 전 나와 통화했지만, 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소수의 당 지도부를 제외하고 당내 중진들과 고문단 등 당 내부와는 소통 없이 결정한 셈이다.
구체적인 후임자 내정 과정과 관련해선 여러 가지 설이 제기되고 있다. 일단 공동위원장으로 내정된 안경환, 이상돈 교수 모두 애초부터 위원장 후보군에 올랐다는 것이 정계 내부의 중론이다. 특히 논란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상돈 교수의 내정 과정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제기되고 있다. 언론을 통해서는 이미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한 안경환 교수와 또 다른 비대위원장직 후보였지만 이를 고사한 조국 서울대 교수가 이상돈 교수를 추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일요신문>의 취재 과정에서 또 다른 단서가 포착됐다. 김한길 전 대표의 입김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 당 내의 한 인사는 “이 교수와 친분이 있는 김한길 전 대표가 추천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김 전 대표의 친동생은 이 교수와는 같은 중앙대 교수(김누리 독문과 교수)”라며 “지난 11일, 김한길 전 대표는 측근 인사와 회동을 갖고 이에 대해서도 얘기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와 함께 문재인 의원을 견제하기 위한 비노진영의 물밑 작업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미 추석연휴가 시작되기 전, 박영선 위원장의 퇴진은 어느 정도 기정사실화됐다. 동시에 ‘문재인 비대위 조기 투입설’이 솔솔 흘러나왔다. 추석 전 새정치연합의 한 당직자는 “앞서의 실책 탓에 당 내에선 이미 ‘계파논쟁보다 (박영선 지도부의) 무능은 더 큰 죄악’이란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그래도 문 의원은 당내 최다 계파의 좌장이다. 상대 계파의 공격이 있을지언정, 지도부로서 일 자체의 추진력만 놓고 보면 적임자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다. 상당한 내홍을 감수하고서라도 문재인 의원의 비대위 조기 투입설이 제기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겉으론 비노진영 역시 이상돈 교수 내정을 두고 부정적 의사를 피력하지만, 내심 물밑으론 ‘문재인 조기 투입설’에 대한 위기감으로 인해 ‘이상돈 카드’를 관철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앞서의 ‘김한길 입김설’과도 어느 정도 맥이 통하는 대목이다.
박영선 위원장이 후임자 인선을 왜 이렇게 서둘렀는지도 의문이다. 물론 당에 있어서 리더십과 연결되는 지도부는 매우 중요하다. 지도부 공백이 길어지면, 전혀 이로울 게 없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자리란 점에서 최소한의 당내 의견 수렴 과정 역시 필수다. 그럼에도 박 위원장은 뭔가에 쫓긴 듯, 당내 의견 수렴 과정을 생략한 채 곧바로 후임자 내정을 공식화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박영선 위원장 스스로 최대한 자기 손에서 후임자 인선을 마무리 짓는 것이 향후 자신의 입지 관철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인선에 있어서 많은 과정과 손을 거치면 거칠수록, 특히 본인이 위원장직을 물러난 이후 후임자가 내정된다면 본인의 역할은 현격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렇듯 현재 박영선 위원장의 수상한(?) 후임자 내정을 두고 여러 억측이 나오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이번 결정 역시 ‘악수’가 됐다는 점이다. 박 위원장은 앞서 밝혔듯 후임자 내정의 이유를 두고 ‘혁신과 확장’을 꼽았다. 특히 ‘확장’은 다분히 이상돈 교수를 염두에 뒀다는 해석이다.
물론 이 교수의 내정은 가히 파격에 가깝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우리 당의 후보를 떨어뜨리려 불철주야 노력한 사람”이란 정청래 의원의 평처럼 무리수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진 의원은 이렇게 지적했다.
“박영선 위원장이 프레임의 확대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단순히 보수 인사를 영입한다고 외연이 확장된다는 것은 큰 오산이다. 정당이 기업과는 다르지 않나. 아무리 실력이 좋은 적임자라 해도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당론과 정체성은 공유해야 한다. 이상돈 교수의 이번 내정은 사회풍토를 잡겠다고 삼청교육대를 도입한 과거 군사정권의 극단적 발상과 다를 바 없다. 벼룩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민심 역시 다르지 않다. 지난 5일과 6일 조원씨앤아이가 진행한 추석 민심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2.7%와 30.6%는 야당 회생 조건으로 각각 ‘리더십을 가진 지도부 구성’과 ‘확고한 정강정책 확립’을 꼽았다. ‘새로운 인물 영입’과 ‘이념정당 탈피와 유연성’을 꼽은 응답자는 각각 10.5%와 9.8%에 불과했다. 민심 역시 단순한 외연의 확장보다는 리더십과 정강정책 등 당의 기본적 토대를 더 중시 여기는 셈이다.
결국 후임자로 내정된 이상돈 교수는 물론 안경환 명예교수 역시 당의 내홍이 확산됨에 따라 위원장직을 고사했다. 곧이어 박영선 위원장은 문희상, 정세균, 김한길, 박지원, 문재인 의원 등 당내 중진들과 뒤늦은 논의 끝에 이를 철회했다. 사실상 각 계파 좌장 격인 해당 중진들은 내정자들에 대해 모두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는 후문이다. 이로서 박영선 위원장의 리더십은 회복불능 수준의 치명타를 입게 됐고, 더 나아가 야당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박영선 위원장에게 있어선 위원장직은 물론 더불어 원내대표직 사퇴까지 고려되고 있는 상황이 됐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