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의원들의 활동이 저조하다는 비판 속에서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왼쪽)은 대표발의건수 부문에서, 문정림 새누리당 의원은 대표발의처리비율 부문에서 각각 1위에 올랐다. 이종현·구윤성 기자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은 각 분야의 대표성이나 전문성을 토대로 국회에 입성한다. 대다수가 초선으로 구성된 비례대표 의원들에게 정무능력보다 전문능력이 더 요구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 새누리당 당직자는 “비례대표는 지역구가 없어 의정활동에 집중할 수 있고 그래야 하는 당위성으로 선발된 것이다. 이 때문에 비례대표는 지역구 의원보다 의정활동에 더 노력해야 하는 도의적 의무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2012년 총선으로 들어와 현재까지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비례대표들은 총 48명이다. <일요신문> 분석 결과 이들이 낸 대표발의 건수는 많게는 100여 개에서 적게는 10개 미만으로 10배 넘게 차이가 났다.
대표발의수가 가장 많은 이는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다. 청년비례대표로 뽑힌 김 의원은 국방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 정보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총 110개의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두 번째는 새정치연합의 장애인 직능대표로 발탁된 최동익 의원으로 그동안 보건복지위와 국회운영위원회에서 총 105개의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세 번째로는 윤명희 새누리당 의원과 최민희 새정치연합 의원이 94개의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 다음으로는 전순옥 새정치연합 의원(61개), 김현숙 새누리당 의원(60개) 순이었다.
대표발의수가 가장 낮은 의원은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과 같은 당 소속인 김재연 의원으로 각각 3건과 7건에 그쳤다. 이렇게 저조한 이유는 구속과 소속 당의 해산심판청구 등이 큰 영향을 미친 때문으로 보인다. 이외에 홍의락(새정치연합·12건), 박창식(새누리당·13건), 백군기(새정치·17건), 임수경 진성준 은수미(이상 새정치·19건) 의원의 대표발의 건수가 20건에 미치지 못해 하위권에 머물렀다.
비례대표들의 의정활동 평가는 대표법안의 개수보다 내용과 법안처리비율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국회의원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법안은 글자 몇 개를 고치고 여러 차례 발의하는 숫자 늘리기 식 꼼수가 있을 수 있다. 법안 수보다 내용이 얼마나 전문성이 있는지 봐야 한다”고 밝혔다. 김상진 뉴코리아정책연구소장도 “법안 개수보다는 법안처리율과 내용으로 비교하는 것이 더 옳다”며 “비례대표는 항상 양면성이 있다. 비례대표 본인의 확고한 의지가 없다면 자신의 이익단체를 대변하는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법안처리비율이 가장 높은 의원은 문정림 의원(새누리·44.4%)이었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출신인 문 의원은 보건복지위와 국회운영위원회를 거치며 총 54개의 대표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처리비율 2위는 백군기 새정치연합 의원으로 41.1%였다. 3위부터는 새누리당 의원들로 최봉홍(37.8%) 이자스민(36.3%) 류지영(33%) 주영순(33%) 의원 순이었다.
비례대표 중 지금까지 제출한 대표법안이 한 건도 처리되지 않은 의원도 있었다. 새정치연합 정책위부의장인 배재정 의원과 정진후 정의당 의원, 김재연 이석기 통진당 의원이 대표법안처리 0%의 불명예를 안았다. 이외에 법안처리비율이 10%가 되지 않는 하위권 의원은 새누리당의 김상민 의원(8.3%), 새정치연합의 홍의락(8.3%), 진선미(9.5%), 장하나(9.5%) 의원이었다. 새누리당 소속의 김장실 손인춘 의원과 새정치연합 소속의 김용익 한명숙 진성준 의원도 대표법안처리비율이 10%선이었다.
비례대표 의원들의 평가에 있어 ‘전문성’도 중요한 평가 잣대다. 대부분의 비례대표들이 본인의 전공에 맞는 상임위를 선택해 활동했지만 관련 상임위를 한 번도 거치지 않은 의원도 있었다.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비례대표 명단에 IT여성기업인협회장이라는 경력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IT(정보기술)’ 관련 전문성과 다소 거리가 있는 여성가족위원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회운영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를 맡아왔다. 강 의원은 총 55개 대표법안 중 IT와 관련이 있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관련 법안을 5개 발의했다.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출신인 김현숙 새누리당 의원도 그동안 보건복지위, 여성가족위, 안전행정위, 국회운영위 등을 거쳤다. 김현숙 의원은 총 60개 대표발의법안 중 조세와 관련한 기획재정위원회 법안을 4개 발의했다.
2년간 자신의 전문성과 관련된 상임위 1개만 고집하며 한 길만 닦아온 의원들도 있다. 새누리당 소속의 이만우 의원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기획재정위에서 활동 중이다. 재향군인회 정책자문위원인 송영근 의원은 국방위에서, 대한간호협회 회장 출신인 신경림 의원은 보건복지위를 맡고 있다. 새정치연합에서는 경실련 재벌개혁위원장 출신인 홍종학 의원이 기획재정위원회를, 서울대 의대 교수였던 김용익 의원이 보건복지위를,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최민희 의원이 미방위에서 활동 중이다. 정의당 소속으로는 전국교직원노조위원장 출신인 정진후 의원과 판사를 역임한 서기호 의원이 각각 교문위와 법사위를 맡고 있다.
한편 김상진 소장은 비례대표 의원들이 활동이 저조하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에 대해 “애초에 비례대표를 뽑을 때 계파 나누기나 정치적 관련이 있는 인물들을 뽑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능력보다 정치권 줄서기 위주로 뽑히는 것”이라며 “또한 비례대표직을 지역구 의원이 되려는 발판으로 이용하려는 생각을 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