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장병원이 유령 환자, 나이롱 환자 등을 이용해 국고보조금을 편취하고 있다. 사진은 노인 진료 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일요신문 DB
어린이집을 운영했던 안 아무개 씨(여·44)는 지난 2011년 11월 부산 북구 만덕동에 요양병원을 차렸다. 안 씨가 운영한 요양병원은 월급 병원장을 두고 의사면허만 빌리는 일명 ‘사무장병원’이었다. 당초 안 씨는 폐암수술로 긴 투병생활을 해온 아버지의 요양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요양병원을 설립하기로 마음먹었다.
문제는 안 씨가 비 의료인이라는 것이었다. 의사면허가 없어 병원개업을 할 수 없었던 안 씨는 의사들만 전문적으로 연결해주는 브로커를 통해 의사 박 아무개 씨(당시 74세)를 소개받았다. 고령의 의사들은 사무장병원에 고용되면 목돈을 들여 병원을 개설하지 않고도 매달 고액의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쉽게 불법행위에 가담했다.
그런데 고령인 데다 지병까지 앓고 있던 병원장 박 씨가 지난해 사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안 씨는 또 다시 브로커를 통해 고령의 산부인과 전문의 이 아무개 씨(여·71)를 소개받았다. 이 씨를 병원장으로 내세운 안 씨는 늘 그래왔듯 실질적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관리했다.
안 씨가 수익을 올리는 주된 방법은 ‘가짜 환자’를 만들어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와 국가보조금인 의료급여비를 타내는 것이었다. 안 씨는 4인실 병실에 6명의 환자가 입원했다고 환자기록부를 엉터리로 조작하거나 25명밖에 없는 환자를 51명으로 부풀리는 수법으로 국가보조금을 편취했다. 이러한 수법으로 3년간 안 씨가 받아낸 국고보조금만도 14억 원에 달했다.
병원장 이 씨는 의사면허를 빌려주고 이 같은 불법행위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월 700만 원가량을 받았다. 하지만 병원의 자금흐름에서 ‘사무장병원’이라는 정황을 포착한 경찰에 꼬리가 잡히면서 안 씨의 그림자 경영도 막을 내렸다.
부산 북부경찰서 이세우 경위는 “안 씨의 남편은 평일에 회사로 출근하고 주말에는 병원에 입원해 환자가 되기도 했다. 현재 안 씨는 자신은 경영자가 아니라 채권자여서 병원 운영에 깊숙하게 관여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병원의 자금이 어디서 나왔는지 수익이 어디로 갔는지 자금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사무장병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부고발자의 제보가 가장 중요하지만 계좌추적으로 사무장병원을 찾아내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객관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병원사주 안 씨와 병원장 이 씨를 불구속 입건하고, 환자기록부에 허위로 등재된 이들에 대해서 보험사기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인천 강화도의 한 사무장병원 원무과에서 근무했던 A 씨(42)는 “의료행위를 할 수 없는 개인이 의사면허를 빌려 병원을 만드는 방법은 가장 흔하고 고전적인 수법”이라며 “최근에는 협동조합형식으로 병원을 설립해 건보공단의 급여보험을 받아내는 사무장병원도 생겨났다. 종교법인 경우는 비영리법인이라 병원을 세울 수 있다. 사무장병원이라고 해도 ‘종교법인의 의료선교’라고 하면 설립이 허가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환자진료나 의료행위 없이 숙식만 제공하는 ‘모텔형 사무장병원’도 등장했다. A 씨는 “버려진 모텔을 매입해 외형만 병원으로 바꾸는 사무장병원도 있다. 사주들이 고용하는 의사는 거의 의료행위가 어려울 정도의 고령의 의사들이다. 이러한 고령의 의사 면허를 빌려 영업하는 사무장병원은 의료 행위가 없는데도 민간보험금을 받아 챙긴다. 의료행위가 없는데도 보험금 챙기는 것이 보험사기지 별게 아니다”고 말했다.
사무장병원이 편법으로 타낸 국고보조금은 결과적으로 건보공단의 재정누수를 발생시킨다. 이는 국민들의 의료비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사무장병원을 ‘의료계의 암적 존재’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사무장병원을 적발하고 퇴출하기 위해서는 제보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에 사무장병원으로 의심해 볼 수 있는 사례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개설자 변경이 잦다면 사무장병원으로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월급 병원장이 새롭게 고용될 때마다 개설자 변경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또 병원장이 자주 교체되는데 직원은 계속 근무를 하고 있다면 사무장병원일 가능성이 높다. 가족이 같은 병원에서 함께 근무하는 것도 사무장병원의 특징이다. 대부분의 사무장병원이 간호조무사나 직원의 제보로 발각되는 경우가 많아 가족이나 친인척을 실장이나 관리인으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천 강화도의 사무장병원 직원이었던 앞서의 A 씨는 “사무장병원의 특징은 간호사보다 간호조무사나 남자보호사가 많다는 것이다. 또 나이가 많은 의사가 갑자기 병원을 개설했다면 사무장병원으로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 북부경찰서 이세우 경위는 “객관적인 증거를 내놔도 발뺌하는 것이 사무장병원 사주들이다. 병원 개설도 의사 명의로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됐을 시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라며 “병원자금이 어디서 나왔는지 수익이 어디로 귀속되는지 입증할 방법은 내부고발자의 제보나 계좌추적 외에는 아직 묘수가 없다. 하지만 사무장병원은 주변에 분명 소문이 나게 돼 있다. 환자들의 외출이 자유롭거나 외박이 잦다면 사무장병원으로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