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울산 계모 사건은 1심에서 각각 징역 10년과 15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지난 4월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는 칠곡 계모 임 아무개 씨(왼쪽)와 지난해 12월 호송버스에 타려다 주민들이 뿌린 물을 맞고 있는 울산 계모 박 아무개 씨. 연합뉴스
사망진단을 내린 의사는 김 양의 죽음에 의문이 생겼다. 복막염으로는 그렇게 빨리 죽음에 이를 수 없었다. 병원 측은 경찰에 변사자 신고를 했다. 신고를 받고 영안실에 도착한 경찰은 김 양의 몸을 확인하면서 크고 작은 멍을 발견했다. 김 양 몸 곳곳에는 화상자국과 봉합수술을 받은 상처들이 있었다. 국과수 부검결과 사인은 ‘외상성 복막염’과 ‘외력에 의한 장파열’이었다. 외부에서 가해진 충격이 있었던 것이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사망한 김 양의 친언니(13)였다. 김 양의 언니는 경찰조사에서 인형을 가지고 싸우다 동생의 배를 수차례 가격하고 발로 찼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심리치료를 받으며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김 양의 언니가 계모의 학대사실을 털어놓으면서 가려진 진실이 조금씩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생을 죽였다’고 말한 언니의 진술은 계모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다.
‘계단에서 밀기’ ‘청양고추 먹이기’ ‘화장실 쓰레기 입에 물기’ 등 계모 임 씨가 두 자매에게 행한 폭력과 가혹행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아버지는 두 자매가 학대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했다. 죽어가는 김 양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한 두 자매의 친 아버지도 똑같은 가해자였다.
최근 김 양의 고모와 변호사는 재판에서 임 씨의 추가범죄에 대한 진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며 변론재개를 신청했다. 임 씨는 ‘상해치사’ 외에도 김 양의 언니에게 거짓 진술을 하도록 시킨 혐의(강요, 아동복지법 위반 등)등으로 추가 기소돼 지난 8월 11일 선고를 받을 예정이었지만 이 같은 이유로 선고가 연기됐다.
실제로 공소장에 적혀있지 않은 임 씨의 가혹행위는 20가지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른 추가 증거들을 제출하려다보니 추가 기소 건의 선고까지 연기된 것이다. ‘칠곡 계모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이명숙 변호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재 20여 가지의 가혹행위 사실이 드러났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추가로 밝혀질지는 아직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추가 가혹행위 사실에 대한 심리는 오는 22일 재개할 예정이다. 이명숙 변호사는 “공소장에 적힌 것 외에 빠진 부분을 조사하면서 ‘피해자를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는 등의 추가 가혹행위가 드러났다. 계단에서 피해자를 민 횟수도 차이가 있었다. 추가 가혹행위와 관련해 9월 1일 비공개로 심리가 진행됐다. 판결이 모든 것을 말해 줄 것”이라며 “처음부터 조사를 제대로 했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고법은 계모 임 씨의 상해치사죄 부분에 대한 항소심을 진행 중이며 추가 기소 건에 대한 1심 선고가 나오는 대로 이들 사건을 병합해 심리할 계획이다.
의붓딸 이 아무개 양(당시 8세)의 머리와 가슴을 주먹과 발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1심에서 15년형을 선고받은 ‘울산 계모’ 박 아무개 씨(42)의 항소심 공판도 현재 진행 중에 있다. 박 씨는 2013년 10월 24일 “친구들과 소풍을 가고 싶다”고 말한 이 양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해 여론의 공분을 샀다.
‘칠곡 계모’에 두 자매가 학대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한 비정한 아버지 김 아무개 씨. 연합뉴스
박 씨의 폭력은 점점 가혹해졌다. 2012년 이 양은 학원에서 늦게 귀가했다는 이유로 계모 박 씨에게 폭행을 당해 허벅지 대퇴골이 골절돼 전치 10주를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이 양의 허벅지 대퇴골 골절 사진에 국민들은 경악했다. 이 양이 사망한 2013년 10월 24일 당일에도 박 씨의 폭행은 계속됐다. 박 씨는 이 양이 소풍을 가기 위해 식탁에 올려둔 현금 2300원을 훔치고 거짓말 한다는 이유로 폭행해 갈비뼈 24개 중 16개를 부러뜨렸다. 이 양은 부러진 갈비뼈가 양쪽 폐를 찔러 사망했다.
지난해 11월 21일 울산지검은 계모 박 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2014년 1월 2차 공판에서는 100개가 넘는 학대 증거들이 재판부에 제출됐다. 이어진 3차 공판에서 검찰은 살인죄 입증에 주력하며 박 씨에 대해 사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박 씨가 심폐소생술을 시도하고 119에 신고한 점을 미뤄 볼 때 살인의 고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칠곡 계모 사건 때처럼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 지난 4월 11일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지난 8월 28일 부산고법 형사합의1부(구남수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검찰은 1심 때와 마찬가지로 박 씨를 살인죄를 처벌해달라고 요청하며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성인의 폭행으로 갈비뼈 16개가 부러졌을 정도면 강한 힘으로 폭행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법의학자의 소견을 들어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다분하다고 보고 있다.
이명숙 변호사는 “울산 계모 사건의 경우 법의학자 한 분의 증언에 따르면 이미 사망한 상태에 있는 아이를 익사한 것으로 가장한 것으로 봤다. 박 씨는 피 묻은 옷을 세탁하고 증거 인멸 후 신고를 했다”며 “애초에 아이를 살릴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1심과는 분명히 다른 판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아동학대범죄 특례법 실효성 있을까 ‘출동할 상담원이 있어야…’ 두 아이의 죽음 이후 국회에서는 아동학대범죄 특례법이 통과됐다. 아동학대범죄 특례법은 오는 29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번에 시행되는 아동학대범죄 특례법은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아동보호 전문기관 직원과 경찰이 동행해 현장에 출동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또 아동학대를 범죄로 간주해 학대로 인해 아동이 사망할 경우 가해자에게 최고 무기징역까지 처할 수 있도록 했다. 만약 가해자가 부모라면 친권 상실 청구도 가능해진다. 아동학대의 사후관리와 예방을 위해 아동보호기관의 역할도 확대하도록 했다. 앞으로는 아동학대 피해가 발생할 경우 아동을 보호조치하고 사건을 관할 행정기관에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국 시군구마다 지역별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두도록 했다. 하지만 특례법 시행을 앞두고 인력과 재정 인프라 구축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법에서 정한 아동보호기관이 있는 곳은 전국 시군구 232곳 가운데 51곳에 불과하다. 피해 아동이 임시 거주할 수 있는 쉼터도 전국에 36곳에 불과하다. 아동학대에 대한 사법기능이 강화되면서 아동을 가해자로부터 격리시킬 권한은 늘어났지만 피해 아동을 수용할 수 있는 쉼터가 부족해 학대가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특례법 제정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울산의 경우만 하더라도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1곳에 불과하다. 울산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현재 6명의 상담직원이 울산광역시 전체를 관할하고 있다. 10월에 직원 2명이 늘어날 예정이다. 이 또한 울산지자체에서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세이브더칠드런 김희경 권리옹호부장은 “특례법은 아동학대 신고 직후 아동보호 전문 상담원과 경찰이 현장에 같이 출동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상담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상담원이 현장에 출동하기까지 평균 2시간이 걸린다”며 “아동보호 전문 기관도 늘리고 상담원 수를 늘려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예산이 전부 삭감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칠곡 계모 사건’과 ‘울산 계모 사건’을 담당했던 이명숙 변호사도 “인력과 재정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규정만 나온 것 같아 안타깝다. 이대로라면 아동학대범죄 특례법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