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베스트 오브 쇼’에 오른 클래식카는 1935년식 듀센버그 SJ 스피드스터(Duesenberg SJ Speedster)이다. 모델명에 등장하는 ‘스피드스터’는 ‘속도광’ 혹은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의미한다. 듀센버그는 독일 출신 엔지니어 듀센버그 형제가 미국에서 세운 자동차회사로 1920년~1930년대 미국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들이 만든 첫 번째 모델 A는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미국 자동차로는 최초로 우승을 거머쥐는 등 빼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하지만 듀센버그는 경영 미숙에 ‘독일 자동차’라는 오해가 더해지면서 판매 부진으로 고전하게 된다. 이때 듀센버그 형제에게 손길을 뻗쳐온 인물이 바로 당시 미국 자동차업계에서 혜성처럼 떠오르던 사업가 에렛 코드(Errett Lobban Cord)였다.
2007년 페블비치 콩쿠르에서 최고상을 받은 듀센버그 SJ 스피드스터는 유명 레이서 애보트 젠킨스가 ‘유성처럼 빠른’ 레이싱 기록을 세워 ‘모르몬 미티어’라는 별명이 붙었다. 작은 사진은 1930년대 젠킨스가 이 차를 몰고 있는 모습.
코드는 오번(Auburn) 자동차 사장이던 시절인 1926년 듀센버그를 인수하고, 듀센버그 형제가 마음 놓고 고성능 고급차를 만들도록 여건을 만들어준다. 1928년 이들 형제가 뉴욕 오토쇼에 내놓은 ‘듀센버그 모델 J’는 할리우드 스타들과 상류층에 큰 인기를 끌며 미국을 대표하는 ‘프레스티지 카’(최고급 자동차)로 불리게 된다. 이러한 성공에 고무받은 듀센버그가 ‘세계 최고의 자동차’를 꿈꾸며 모델 J를 업그레이드해 1932년 선보인 차가 바로 듀센버그 SJ이다.
최고출력 320마력, 최고속도 205㎞/h에 이르던 듀센버그 SJ는 당대 최고 성능의 자동차 중 하나였다. 스타일도 아름답고 독특했다. 경사진 모양의 라디에이터 그릴이 바디와 어우러져 수려한 곡선미를 연출했고, 엔진룸의 배기가스 배출장치(배기 매니폴드)를 차체 밖으로 끌어낸 획기적인 디자인이 돋보였다.
듀센버그 J와 마찬가지로 듀센버그 SJ의 경우 차체 제작과 내부 인테리어 등을 유명 코치빌더들이 담당했는데, 그 덕에 듀센버그 SJ는 같은 모델이라도 차마다 다른 개성을 보였다. 페블비치 콩쿠르 ‘최고상’에 올랐던 듀센버그 SJ 스피드스터는 애초 최고의 기록에 도전하기 위해 제작된 차이기도 했다. 일반적인 SJ 모델과는 달리 엔진 출력을 400마력까지 높이고 차체를 낮추는 등 안정적으로 높은 스피드를 낼 수 있도록 개조된 것이었다. 마치 경주용 자동차처럼 처음엔 차의 문도 따로 없었다.
실제로 유명 레이싱 드라이버이던 데이비드 애보트 젠킨스가 1935년 이 차를 몰고 시간당 평균 135.58마일(약 218㎞)의 속도로 달려 ‘24시간 스피드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 차는 ‘모르몬 미티어’(Mormon Meteor:모르몬교의 유성)라는 애칭으로 불리곤 했다. 애보트 젠킨스가 모르몬교의 성지로 불리는 솔트레이크시티(유타주) 출신으로 유성처럼 빠른 레이싱 기록을 세워 이러한 별명이 붙었던 것.
애보트 젠킨스는 SJ 스피드스터로 각종 스피드 기록에 도전한 뒤 자신의 애마로 삼았다. 차 문을 새로 만들어 달고 일부를 리모델링해 도로에서 몰고 다녔다. 젠킨스는 프로 드라이버에서 은퇴한 이후 정치가로도 이름을 얻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젠킨스는 1950년대 솔트레이크 시장을 지내던 중 갑자기 세상을 등졌는데, 그의 드라마틱한 일생과 함께 그의 애마였던 ‘모르몬 미티어’가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다.
이후 SJ 스피드스터는 몇 차례 주인이 바뀌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04년 새 주인을 맞았다. 당시 페블비치 ‘구딩’ 경매에서 미국 자동차로서는 드물게 445만 달러(약 45억 6000만 원)라는 고가에 신시내티 출신의 한 사업가에게 팔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긴 복원작업을 거쳐 우아하고 유려한 스타일의 차로 다시 탄생해, 지난 2007년 페블비치 콩쿠르에서 ‘최고의 차’라는 영예까지 안게 된 것이다.
SJ 스피드스터의 사례에서 보듯 듀센버그는 당대 최고의 자동차를 만들어냈지만 워낙 고가의 차이다 보니 판매량이 많지는 않았다. 듀센버그 J 모델과 SJ 모델을 합쳐 470여 대가 생산됐고, 그중 SJ 모델은 36대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모기업인 코드 그룹이 1937년 도산하면서 듀센버그의 자동차 생산도 중단되고 만다. 듀센버그의 시대는 결국 17년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지만, 과거의 화려했던 명성은 듀센버그 모델들을 통해 8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대로 전해진다.
이정수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