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은닉 자금’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다시 시작돼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지난 1일 대구지검은 조희팔이 고철사업자에게 투자한 ‘760억 원’의 불법성 여부에 대한 재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7월말 대구고검에서 지시한 재기수사명령에 따른 것이다. 재기수사명령이란 사건을 추가 수사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 상급기관(대구고검)이 검찰청(대구지검)에 재수사를 지시하는 것을 말한다.
앞서 대구지검은 지난 2010년과 2013년, 사건을 두 차례나 수사했지만 모두 무혐의로 종결했다. 자금 흐름에 대한 불법성이 포착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에 일각에서는 ‘부실 수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당시 검찰이 760억 원의 출처와 조성 과정, 전달 경로, 사용 내역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사건을 덮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수사에서는 잔고증명서가 제출돼 불법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라고 전했다.
조희팔 사건 피해자들은 여기에 반발해 지난 2월 대구고검에 항고장을 제출했다. 대구고검 역시 검찰이 계좌추적도 하지 않고 사건을 무혐의 종결한 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2차례 이어진 수사에 다시 재수사 결정을 내리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기에 검찰 내부에서도 이번 재수사에 대한 상당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의 핵심은 ‘760억 원’이 어떤 자금이고 어떻게 쓰였느냐는 것이다. 검찰이 조사선상에 올려놓은 사람은 총 4명으로 고철수입업체 대표 현 아무개 씨와 조희팔의 기획실장 김 아무개 씨, 대구 지역 채권자 대표와 부대표 등이다. 검찰은 관련자들을 소환하고 광범위한 계좌추적에 착수하는 한편, 최근에는 대구 중구에 있는 현 씨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수사의 핵심은 760억 원의 자금이 실제 고철 사업에 쓰였는지 파악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조희팔의 피해자들은 760억 원을 전형적인 ‘은닉 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희팔이 수익금을 고철수입사업에 투자한 것처럼 꾸몄고, 고철 업체 관계자들과 짜고 자금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피해자들의 주장대로 업체에서 고철수입사업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는 전언은 유력하게 돌고 있는 중이다.
김광준 서울고검 부장검사는 조희팔로부터 2억 7000만여 원의 뇌물을 받아 처벌됐다. 임준선 기자
순조롭게 성사된 계약은 2008년 10월 갑작스런 반전을 맞게 된다. 기획실장 김 씨가 돌연 계약을 취소한 것. 김 씨는 투자금 중 70억 원을 받아갔고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채권단에게 모두 양도한다는 계약을 서둘러 마무리했다. 계약을 취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희팔에 대한 수배가 떨어졌고, 2008년 12월 결국 중국으로 밀항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도피를 염두에 둔 계약 취소라는 정황을 포착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남은 투자금은 현 씨의 손에 주어졌지만 행방이 정확히 파악된 바가 없다. 검찰이 지난 두 차례 수사에서 확보한 잔고증명서 상에는 투자 금액 760억 원 중 120억 원은 위약금 및 세금 등의 명목으로 지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640억 원’의 행방은 오리무중에 빠진 셈이다. 조희팔 사건 피해자 김범래 씨는 “조희팔이 투자 당시 B 무역은 설립 6개월짜리 신생업체였다. 말이 투자이지 조 씨와 현 씨가 서로 짜고 사기 범죄 수익금을 빼돌렸다고 보는 게 맞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 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실제 계약 체결 후 고철수입을 위해 모스크바 현지에도 갔었고 은행 신용장도 발급했다. 당시 외환위기로 달러가치가 치솟으면서 머뭇거리는 사이에 조희팔 도피가 이뤄졌다. 계약과 절차대로 고철수입을 진행했었다”라고 반박했다.
검찰의 640억 원에 대한 전격 재수사가 이뤄진 가운데 이번 수사를 계기로 조희팔의 은닉 자금을 전면적으로 수사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높다. 하지만 검찰은 전체적인 은닉 자금 추적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대구지검 관계자는 “이번 재조사는 전면적인 수사가 아니고 단지 고철사업건과 관련해 자금 흐름만 별도 조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금액만 수조 원, 피해자들이 수만 명에 달함에도 전면 재수사에는 나서지 않는 검찰의 몸사리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조희팔 사기사건 피해자 모임 ‘바른경제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김상전 대표는 “사실 이번 재기수사명령은 조희팔 사건에 있어 핵심은 아니다. 조희팔 사건으로 피해금액만 6조 이상, 피해자는 10만 명 이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추산되는 조희팔 은닉금액만 최소 ‘수천억 원’이다. 이 중에 760억 원 은닉자금과 재수사는 일종의 해프닝으로 보면 된다. 좀 더 적극적인 수사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조희팔 사건이 발생한 지 6년째. 수천억 원에 달하는 은닉자금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피해자들의 시름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