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을 종합해보면 ‘딸에 버금가는 학력을 소지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며 자립적인 경제적 능력을 갖고 있는, 신체 건강하고 올바른 가정에서 자란 기독교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딸만 둘을 둔 것으로 알려진 이 갑부는 사실상 자신의 가업을 맡길 수 있는 ‘데릴사위’를 원했다. 따라서 장남보다는 부모 봉양이나 가계를 이어갈 부담이 덜한 차남이나 막내를 원한다는 특수조건도 붙었다.
이러한 조건에 들어맞는다면 많은 여성이 꿈꾸는 ‘완벽남’에 가까운 것이 사실. 이에 해당하는 남성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수많은 엘리트 남성들이 후보로 지원, ‘간택’을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지난 11일과 12일 이틀 동안 선우 측에 지원한 남성들은 270명 이상으로 이들은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전문직 종사자인 것으로 알려진다. 애초에 선우 측은 열흘 정도 지원자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예상외의 호응에 일찍 후보모집을 마감하게 됐다고 한다. 선우 측은 12일 “당사자는 경제력을 강조하지 않았고 회사 차원에서 소개의 장점으로 언급한 것인데 언론에 알려지는 과정에서 의도가 와전된 면이 있다”며 “현재 지원한 남성들 중에서 적합한 배우자감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판단하에 공모를 마감하게 됐고 이후 과정은 조용히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이처럼 ‘빵빵한’ 배경을 가진 의뢰인의 배우자감을 공개모집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01년 결혼정보회사 ‘비에나래’는 70대 벨기에 갑부의 신부를 공모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전 세계 60개국에 상하수도 시설과 폐기물처리설비 등을 생산해 연간 수천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벨기에 노인은 ‘절제된 동양적 신비감을 지닌 한국 여성의 자태에 매료됐다’며 공개구혼을 요청해왔다.
당시 그가 내세운 첫 번째 ‘절대조건’은 ‘40세 이하의 매력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는 여성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2세를 출산할 강한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하며 영어와 불어 스페인어 등 한 가지 언어에 능통해야 한다’는 특별조건까지 붙었다. ‘최고의 여성’을 아내로 맞겠다는 이 남성은 자신이 내세운 까다로운 조건에 걸맞게 ‘맞선 한 번에 500만 원을 지불하고 3개월 이상 교제시 별도의 사례비를 결혼회사 측에 지급하겠다’는 약속까지 내걸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이 ‘배우자 공모’는 일각에서 결혼정보회사 측의 의도된 ‘이벤트’나 고품격 회원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한 일종의 ‘광고’가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킬 만큼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당시 이 남성의 공개구혼에는 실제로 20~40대의 내로라하는 전문직 여성들을 포함, 1000여 명이 지원해 성황을 이뤘다. 다른 한편으로 생면부지의 70대 외국인 갑부의 신부감을 자처하고 나서는 이들 여성들에게는 ‘결혼을 인생역전이나 신분상승의 기회로 이용하려 한다’는 거센 비난도 뒤따랐다. 결국 이 벨기에 갑부의 ‘신부 공모’는 적합한 상대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 같은 전례가 있기 때문인지 이번 ‘데릴사윗감 공모’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 역시 그다지 곱지만은 않다. 상당수 사람들이 배우자감으로 ‘간택’될 경우를 두고 ‘로또 맞는 격’이라고 비유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실제로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번 공모에 대해 ‘비슷한 조건을 가진 이들끼리 맺어져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결혼을 ‘인생역전’이나 ‘신분상승’의 기회로 이용하려는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는 의견들이 다수 올라와 있는 실정이다.
앞서 언급한 두 사례는 분명 수많은 회원들을 보유하고 있는 결혼정보회사 입장에서도 아주 특별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물 좋은’ 회원들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이미지와 실적이 좌우되는 회사 측 입장에서 갑부 회원의 공개구혼은 일각의 비난여론을 감안한다 쳐도 분명 ‘호재’임이 분명하다.
이번에 화제가 된 데릴사위 공개모집과 관련해 회사 측은 “이번 공모는 아들처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윗감을 구하고자 하는 60대 아버지의 소망에 비롯된 것”이라며 “데릴사위에 대한 진지한 논의의 장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한두 자녀 출산으로 딸아들의 구별이 없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딸만 있는 부모들의 입장을 고려, ‘사위도 아들’이라는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이번 데릴사위 공모의 또 다른 취지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인륜지대사로 불리는 결혼이 그 숭고한 의미를 잃어버린 채 조건을 앞세우며 상업적으로 변질되어 간다는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또 ‘사랑이 전부’인 시대는 지났다지만 결혼을 ‘신분상승’이나 ‘인생역전’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이들 역시 따가운 눈총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