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을 발표하며 눈물 흘리는 가족들과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화분. 사진공동취재단 | ||
23명의 샘물교회 봉사단원 피랍 사건을 접한 국민들 역시 충격과 혼란에 빠져 들고 있다. “제발 살아서 돌아와 달라”는 안타까움과 함께 “그 위험한 지역을 정부의 만류도 뿌리치면서까지 왜 고집해 갔는가”란 원망도 섞여 나오고 있다. 이번 파견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한민족복지재단 측은 국민들에게 눈물의 사과 성명을 내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번 사태에 대한 갖가지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이 계속 확산되고 있어 또 다른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피랍자들의 생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섣부른 논란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불거지고 있는 루머와 그 실체적 진실을 추적해 본다.
1. 정부에서 가지 못하게 막았음에도 유서까지 작성하고 갔다?
한민족복지재단과 샘물교회 측이 정부의 사전 경고를 무시하고 이번 봉사단 파견을 무리하게 강행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일각에서 끊이질 않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이번 사건의 전말 시나리오가 시기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채 급속히 확산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올 3월 샘물교회 측이 총 3회 이상의 봉사활동 및 선교활동 명목으로 세운 아프가니스탄행 계획에 대해 외교부가 안전에 대한 우려와 경고를 했으나 교회 측이 이를 무시했다는 것, △외교부가 비행티켓을 강제취소하자 교회 측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까지 걸겠다고 강력히 반발하면서 결국 두 번째 티켓은 취소 못하고 경고만 했다는 것, △출국 사실을 안 외교부는 전용비행기를 보내 간곡하게 돌아오기를 부탁했으나 교회 측은 ‘유서까지 미리 남길 테니 걱정 말라’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것 등이다.
이 같은 인터넷상의 ‘설’에 대해 외교통상부 측에 정확한 확인을 요청했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외교부가 비행티켓을 취소했다거나 전용비행기를 보냈다는 등의 내용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다만 사전 경고와 주의를 준 것은 맞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 2월 한민족복지재단을 비롯한 각 단체들에게 탈레반 무장 세력들의 한국인 납치 계획 정보가 있으니 (아프간) 현지 파견을 자제해 달라는 협조공문을 보낸 적이 있으며, 5월에도 각별한 신변주의 요청과 함께 특히 남부지역의 방문은 자제해줄 것, 그리고 현지에 나가 있는 단체들도 철수를 적극 검토해줄 것을 요청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2. 봉사활동이 아니라 선교활동이 목적이었다?
이런 의혹이 확산된 계기는 샘물교회 홈페이지에서 발췌된 것으로 알려진 2건의 문건 때문이다. ‘아프간 단기 선교 지원서’와 ‘2007 샘물 여름단기선교에 관한 질문서’ 등이 그것.
일부 네티즌들은 지원서의 명칭이 ‘단기 선교’로 되어 있는 점과 질문서의 첫 문항이 ‘본인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등으로 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선교활동 등의 기독교적 색채가 탈레반을 자극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진보 기독교 신문으로 알려진 <뉴스앤조이>의 이광하 편집장 (목사)은 “선교란 좁은 의미에서 보면 기도와 전도에만 국한시킬 수도 있지만 흔히 교계에서 갖는 포괄적 의미에서의 선교에는 교인들이 행하는 모든 봉사활동을 다 포함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짧은 기간에 걸쳐 현지에서 봉사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단기 선교’라는 명칭이 붙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이번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샘물교회 봉사단원 23명(위), 아프가니스탄 피랍자들이 소속된 분당 샘물교회.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번 납치 사건의 또 다른 파장으로 국내에서는 ‘기독교인’과 ‘비(非) 기독교인’ 간의 갈등이 노출되는 양상을 빚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이 “국내 기독교인들이 이슬람 국가에서 무리하게 선교 활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현지 주민들의 반발을 초래했다”고 주장하고 나섰고, 피랍자들 중 배 목사가 먼저 살해된 것 역시 그가 ‘이교도 성직자’라는 점 때문이라는 미확인 소문이 계속 확산되고 있는 것.
특히 자신을 지난 2002~2003년에 다산 동의부대 소속 파병 군 복무자로 소개한 한 네티즌의 글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일부 국내 기독교인들이 와서 아프간의 어린이들을 과자 등으로 유혹하며 찬송가를 부르게 하는 등의 낯뜨거운 장면을 연출했다고 비난했다.
아프간을 방문한 바 있던 일부 교인들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진 사진과 글들이 집중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들이 이슬람 성전 등지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예배를 드리는 등 다른 종교의 정서를 무시하는 행동을 일삼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은 사실이 왜곡되거나 과거에 일부 교인에 의해 발생했던 일일 뿐이라는 반박의 목소리가 크다. 오히려 이 같은 일들이 마치 이번 피랍자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처럼 잘못 알려져선 안 된다는 지적도 많다.
4. 석방 조건으로 지불할 몸값이 수천억 원에 이른다?
탈레반의 협상 조건이 동료 탈레반 죄수의 석방과 함께 몸값 지불 등 두 가지로 확연히 드러나면서 일각에서는 구체적인 몸값이 얼마인지에 대한 갖가지 얘기들이 무성하다. 수천억 원에 달하는 가히 천문학적인 숫자가 될 것이라는 루머가 떠돌기도 한다.
이는 역대 외국의 인질 몸값 지불 사례에서 유추된 액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몸값은 프랑스가 2005년 6월 인질 1명을 돌려받는 조건으로 건넨 1000만 달러(약 91억 원), 최저 몸값은 이탈리아가 지난해 10월 건넨 200만 달러(약 18억 2000만 원)다. 그렇다면 현재 22명이 억류된 우리의 사정을 감안할 때 단순히 산술적으로는 최소 5000만 달러(약 455억 원)에서 최대 2억 달러(약 1820억 원)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단순한 수치상의 계산일 뿐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탈레반이 몸값 흥정을 할 때 한 명씩 따지는 경우보다는 사안 자체를 하나로 묶어서 협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 또한 일부 강경파들은 여전히 몸값보다는 동료 인질 석방 맞교환에 초점을 맞추는 양상이어서 수천억 원 설은 너무 과장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 14명은 석방되고 9명은 위험하다?
이 같은 소문은 얼마 전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된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의 메모 내용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메모에는 피랍자의 숫자를 의미하는 듯한 ‘8+6+9’와 함께 8+6 아래에는 ‘돈’과 ‘해결’이, 9 아래에는 ‘강경’과 ‘살해 가(可)’ 등의 글자가 적혀 있었던 것.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한국인 피랍자들이 모두 세 곳에 분산 수용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14명은 비교적 온건파에게 잡혀 있어 협상 가능성이 높은 반면 나머지 9명은 강경파로 인해 위험하다’는 뜻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 지난 21일 피랍사건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기 위해 들어서는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 ||
일각에서는 탈레반이 지난 25일 배 목사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8명의 인질을 석방하려다 무산시킨 시점을 기점으로 내부 강경파가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6. 탈레반은 여성 인질에게는 절대 해를 끼치지 않는다?
이번 납치 사건의 피랍자 23명 가운데 18명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분위기도 있다. 잔혹한 탈레반이지만 여성은 절대 해치지 않는다는 이슬람 율법이 그 근거로 제시됐다. 역대 납치 사례에서도 여성들을 해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 역시 계속 강조됐다. 실제 2004년 12월 프랑스인 남녀 두 명이 동시에 납치됐을 때도 탈레반은 여성을 먼저 석방시켜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안일주의를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 요르단대학의 라자이 알 칸지 교수는 2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은 이슬람인의 이름으로 행동하지만 사실은 이슬람인 척하는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그들이 이슬람교도로서 여자 인질들을 살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그들에게 있어 남녀의 차이는 없다. 사태가 장기화될 때 서방에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탈레반이 어떤 비극적인 결정을 내릴지 아무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국내 중동 전문가들도 “막다른 상황에 놓이면 탈레반의 호전성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7. 시간을 끌수록 오히려 인질의 생명은 안전하다?
한국인 피랍자들의 억류 기간이 10여 일을 넘기면서 일각에서는 ‘시간이 경과하면 할수록 오히려 인질의 생명은 안전하다’ ‘탈레반은 인질을 살해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등의 얘기들이 떠돌고 있다. 이 같은 시각을 지닌 이들은 역대 아프간 지역 탈레반 무장 세력에 의해 저질러진 납치 사건들을 그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즉 2003년 이후 외국인을 상대로 한 납치 사건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석방에 성공한 사례들은 인질 억류 기간이 평균 36.4일이었던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 반면 2005년 11월과 2006년 4월 각각 살해된 터키인과 인도인의 경우 납치 당일이나 납치 3일 만인 단기간에 바로 해를 입었다는 것.
하지만 이에 대해 근거 없는 해석이거나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 지난 2004년 희생된 고 김선일 씨의 경우 이라크 지역이긴 하지만 납치된 지 20여 일 만에 살해된 바 있다. 또한 의학전문가들은 인질들이 극도의 공포와 불안감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경우 패닉 현상을 보이는 등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겪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