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 | ||
그런 가운데 지난 8월 24일 <조선일보>가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장관급)의 ‘개입설’을 보도하자 그동안 수면 아래서 난무하던 갖가지 소문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제 신 씨 사태는 단순히 학계와 미술계를 넘어 정치권에까지 불똥을 옮기며 이 시대 최대의 스캔들로 비화될 전망이다. 과연 신정아 파문은 우리 사회를 어디로까지 끌고갈 것인가.
<조선일보>가 제기한 변 실장의 개입 의혹은 두 가지다. 변 실장이 7월초 과테말라 현지에서 동국대 전 이사인 장윤 스님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신 씨 학위 의혹 제기와 관련) 가만히 있어 주면 잘 수습하겠다”고 회유했다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귀국 직후인 7월 8일 변 실장이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장윤 스님을 직접 만나 “더 이상 (가짜 학위를) 문제 삼지 말라. 조용히 있으면 적당한 때에 동국대 이사직에 복귀하도록 하겠다”고 회유했다는 것.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변 실장은 공식적으로 보도 내용을 모두 부인했다. 24일 그는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전하면서 “과테말라 현지에서 장윤 스님에게 전화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두 번째 의혹에 대해서도 그는 “7월 초 동국대 문제와 장윤 스님이 주지로 있는 전등사 사찰 민원 등으로 인해 프라자호텔에서 장윤 스님을 만나기는 했지만 신 씨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변 실장은 왜 장윤 스님을 사적으로 접촉했을까. 이에 대해서 청와대 측은 “변 실장은 청와대 불교신자 모임인 ‘청불회’의 회장으로서 그동안 불교계 인사들을 자주 만나 여론도 듣고 민원도 수렴해 왔다”고 밝혔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자 시선은 검찰 쪽으로 쏠리고 있다. 전화 통화 등의 기본적인 사실 관계는 검찰 수사로 밝혀낼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미 서울서부지검에서 신 씨의 학력위조 사건을 수사 중이다. 서울서부지검의 한 관계자는 “(언론에서 의혹이 제기된 만큼) 일단 확인은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조만간 장윤 스님이 소환조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신문 보도대로 변 실장이 국제전화로 장윤 스님을 회유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시기는 7월 2일이나 3일경인 것으로 추정된다. 변 실장은 노 대통령을 수행, 6월 30일 과테말라를 향해 출국했다. 당시는 아직 언론을 통해 신 씨의 학력 위조 파문이 불거지기 전이었다. 하지만 미술계와 동국대에서는 이미 신 씨의 학위에 대한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던 상태였다. 장윤 스님은 지난 2월 동국대 이사회에서 신 씨의 가짜 박사 학위 및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의견은 묵살됐고, 5월 29일 그는 동국대 이사에서 해임 당했다. 변 실장의 출국 하루 전날인 6월 29일 장윤 스님은 기자 간담회에서 신 씨의 가짜 학위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일각에서는 ‘변 실장이 대통령을 수행하는 중요한 업무 중에 굳이 서둘러 국제전화까지 했을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의혹의 신빙성을 낮게 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의혹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또 다른 일각에서는 “그럴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신 씨가 광주비엔날레 예술 총감독 선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일부에서 제기되는 자신에 대한 학력 위조 의혹 이 자칫 총감독 선임에 악영향을 미칠 지도 모른다는 신 씨 측의 우려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실제 광주비엔날레재단과 광주시 측은 7월 4일 신 씨에 대한 의혹이 확산되는 분위기에도 아랑곳없이 그를 총감독으로 선임했다.
▲ 변양균 실장(왼쪽), 장윤 스님 | ||
신 씨의 박사 학위는 물론, 학사·석사 학위와 심지어 서울대 입학 전력조차 모두 가짜로 드러나면서 국민들을 경악에 빠트렸다. 신 씨는 12일 비밀리에 귀국했으나 “미국에 가서 증빙 자료를 가지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16일 다시 비밀리에 출국해 종적을 감췄다. 신용불량 상태로 호화생활을 한 것이 알려져 특정인 후원설이 힘을 얻기도 했다.
신 씨는 도피했지만 그가 남긴 상처는 심각했다. 동국대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또 다시 심각한 내홍을 겪었다. 광주비엔날레재단 측도 서둘러 신 씨의 선임을 철회했지만 국제적 망신을 감수해야 했다. 뒤늦게 학계와 미술계는 “상식을 벗어난 동국대와 광주비엔날레 측의 무조건적인 신 씨의 비호에는 반드시 숨은 배후 세력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국대 측은 “신 전 교수의 초빙은 당시 홍기삼 총장의 판단과 확신에 따라 진행된 사안이었다”고 자체 진상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본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홍 전 총장과 변 실장은 불교계에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지난 2004년 6월 불교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재가불자 하안거 논강’의 공동대표를 맡아 행사를 이끌기도 했다.
변 실장은 부산고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행정고시 출신으로 기획예산처에 오래 몸담았다. DJ 정권 시절이던 지난 2001년 민주당에 파견돼 당시 정책위의장이었던 이해찬 전 총리를 보좌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참여정부 들어 기획예산처 차관과 장관으로 고속 승진했고 지난해 7월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는 예일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예일대는 신 씨가 박사 학위 코스를 밟는다고 속인 학교이기도 하다.
그러나 변 실장은 신 씨와의 관계에 대해서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아 전시회 등에서 신 씨를 알게 됐을 뿐 개인적 친분은 없다”고 밝혔다.
이미 2001년 금호미술관 근무 시절 한 차례 허위 학력이 탄로나 ‘퇴출’당한 적이 있음에도 신 씨가 이후 오히려 더 승승장구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2005년 9월 주변의 학력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보란 듯이 동국대 조교수로 특채 채용됐다. 교수 임용의 가장 기본적인 서류인 학사와 석사 박사 과정의 성적증명서조차 제출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교수직에 올랐다. 의도적인 비호가 아니고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전언이다.
명문 사학 중에서도 유난히 정치인들의 영향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동국대. 그리고 문화 예술 행사를 주관하는 곳임에도 불구, 유독 정치인들이 많이 들끓고 있는 광주비엔날레 주변. 그곳에 신 씨가 신데렐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는 사실도 우연으로만 볼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