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정아 씨의 학력위조 논란이 권력형 비리로 옮아가고 있다. 과연 그가 석연찮게 승승장구한 배경 뒤엔 어떤 내막이 숨겨져 있는 걸까. 연합뉴스 | ||
이제 세간의 시선은 과연 이들 인사들이 신 씨와 어떤 연관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무슨 역할을 했는지에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사건의 핵심 관계자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대리인을 내세워 석연찮은 해명을 하고 있어 오히려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만약 현재 항간에 거론되고 있는 인물들이 신 씨의 행보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가짜 학위 시비에서 시작된 신정아 파문은 희대의 스캔들로 번질 전망이다.
큐레이터로서 미술계에 이름을 알리고 사회적 명망을 얻었던 신 씨는 정작 비슷한 연령대의 큐레이터들과는 거의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몇 차례의 권유에도 큐레이터들의 모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정도로 그 스스로 베일에 싸인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성향의 신 씨가 어느 날 갑자기 미술계의 중요한 자리를 꿰차며 승승장구하자 상당수 젊은 미술계 인사들은 이를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 씨는 원로작가나 고가의 미술작품을 구입해가는 ‘명품고객’들에게는 싹싹하고 상냥한 태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신 씨가 평소 이들에게 거대한 꽃바구니를 보내는가 하면 해외에 다녀올 때마다 값비싼 명품 스카프나 넥타이 등을 선물하는 장면이 주변에서 자주 목격되곤 했다는 것이다.
신 씨의 이러한 ‘권력지향적’인 면모로 보아 그가 자신의 꿈을 이루는 발판으로 삼기 위해 명망 있는 인사들과 친분을 쌓고 이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철저히 이용해왔다는 주위의 지적은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같은 신 씨의 인맥은 그가 제대로 된 검증절차조차 거치지 않은 채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으로 거론되고 있다.
30~40대의 젊은 미술인들은 현재 신 씨를 둘러싸고 흘러나오고 있는 ‘고위급 인사 개입설’에 대해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다. 한 미술계 인사는 “그녀의 집안배경 및 학위 진위 여부, 논문표절 의혹 등을 놓고 주변에서는 온갖 소문들이 끊이지 않았다. 뒤집어보면 이것은 그녀가 얼마나 불안하고 위험한 인물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녀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로만 봐도 진작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졌어야 했다. 그러나 신 씨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너무도 완벽하게 보호되어 왔다. 유력 인사들이 신 씨 같은 ‘위험한 인물’과 친분을 쌓아온 것은 석연찮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간 미술계 안팎에서는 신 씨를 두고 ‘전직 대통령의 숨겨둔 딸’ ‘재벌 회장의 사생아’ ‘거물급 관료의 애인’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김대중 정권과 현 정권의 몇몇 유력인사들, 아무개 재벌회장과 두터운 교분이 있다는 소문이 증권가 정보지 등에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신 씨 스스로도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몇몇 재벌가 안방마님들과의 친분을 여러 차례 주변에 과시해왔다는 얘기도 들린다.
최근에는 변양균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58)이 신정아 학력 시비를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최초로 신 씨의 거짓학위 의혹을 제기한 장윤스님(동국대 전 이사)이 지난 7월 초 변 실장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신 씨 문제를 더 이상 문제 삼지 말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언론의 보도 때문이다.
변 실장은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신 씨 사태 무마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신 씨는 미술과 관련된 모임에서 우연히 알게 됐을 뿐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으며 신 씨와 관련된 어떤 연락이나 부탁도 받은 사실이 없다는 것이 변 실장 측의 얘기다. 또한 7월 9일 장윤스님을 한 차례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정책 민원을 듣는 자리였을 뿐 신 씨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변 실장이 신 씨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던 당사자인 장윤스님을 만나 동국대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신정아’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 한갑수 전 이사장(왼쪽), 이종상 명예교수 | ||
변 실장과 신 씨는 직업적인 면에서나 활동분야로 볼 때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더구나 23세나 차이가 나는 두 사람 간에는 같은 세대끼리 누릴 수 있는 공감대가 있었을 가능성도 낮다. 하지만 변 실장과 신 씨 사이에는 ‘미술’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만약 변 실장과 신 씨가 각별한 친분을 맺었다면 그 매개체는 미술이었을 개연성이 크다.
실제로 변 실장은 미술 분야에 있어 전문가 못지않은 해박한 지식을 갖춘 인물로 알려진다. 부산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미술학도를 꿈꿨을 정도로 미학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으며 최근까지도 틈이 날 때마다 미술관을 찾아 작품 감상을 즐겼다고 한다. 또 공·사석에서 만난 지인들과도 미술과 관련된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일각에서는 미술관 아르바이트생으로 미술계에 첫발을 디딘 후 인생역전을 꿈꾸던 신 씨가 미술 관련 모임에서 만난 고위 관료인 변 실장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친분을 쌓아왔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신 씨가 평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감독을 꿈꿨다는 지인들의 얘기로 짐작컨대 신 씨로서는 자신을 도와줄 ‘파워 인맥’이 누구보다도 절실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대상 중 하나가 변 실장이었을까. 변 실장 측은 여전히 신 씨와 무관함을 밝히며 오히려 도가 넘은 의혹 제기에 대한 법적 대응 방침을 전하고 있다. 애초 변 실장의 신 씨 관련 비호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 장윤스님 또한 자신의 명쾌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갈지 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결국 신정아 씨 관련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의 손에 ‘진실게임’의 키가 쥐어지게 된 셈이다. 최근 검찰 관계자는 변 실장과 장윤스님에 대한 조사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런 선에서 끝날지는 의문이다. 한나라당에서는 더 윗선을 건드리고 있다.
신 씨의 동국대 교수 임용 및 파면 과정에 얽힌 의혹 못지않게 의문을 사고 있는 부분은 그의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발탁 과정이다. 신 씨는 미술계 안팎의 예상을 깨고 지난 7월 초 비엔날레 공동감독으로 선정돼 주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감독선정위원회(위원 11명)의 2차 회의(5월 22일) 당시 신 씨가 1표밖에 얻지 못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갖가지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당시 감독선정위원회에서는 최종 복수 후보 선정 방법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고 결국 한갑수 당시 광주비엔날레 재단 이사장에게 선정을 일임하는 쪽으로 의견이 정리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 우여곡절 끝에 예술감독으로 선임된 이가 바로 신 씨였다. 신 씨의 감독 발탁 과정에서 한 전 이사장과 그 주변 인맥의 막후 역할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 변양균 정책실장(왼쪽), 장윤 스님의 입장을 밝힌 승원 스님(가운데), 오영교 총장 | ||
국제적인 행사를 책임지는 예술감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이 같은 일이 가능했을까. 미술계 일각에서는 유력 인사의 개입으로 신 씨가 애초부터 ‘낙점’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당시 감독 후보에 올랐다가 탈락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누군가) 1차 후보에 포함되지도 않았던 신 씨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갔다”며 “신 씨를 감독으로 정해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심지어 일부 인사들은 자신들은 신 씨를 감독으로 뽑기 위한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신 씨를 둘러싼 ‘배후세력설’은 신 씨가 1억 400여만 원의 빚을 지고 2005년 9월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뒤 회생 절차를 밟고 있던 처지였음에도 호화 생활을 해왔다는 점과 맞물려 더욱 신빙성을 더해가고 있다. 사실상 파산상태에 있던 그가 9000만 원짜리 고급 원룸에 살면서 BMW와 벤츠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주변에 값비싼 선물공세를 펼쳤던 것은 누군가의 재정적인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BMW 차량의 경우 신 씨의 어머니가 사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매월 급여의 절반가량을 빚 갚는 데 써온 신 씨가 신용카드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급호텔 식당을 드나들고 명품선물을 돌리는 등 큰 씀씀이를 보인 부분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일각에서는 신 씨가 상류사회 인사들이나 고위 공직자들의 ‘아트 테크’ 즉 미술품에 대한 투자 등을 도와주고 일종의 ‘자문료’도 받고 인맥도 넓힐 수 있었던 게 아니냐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신 씨는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큐레이터로서 명성을 날렸고 해외를 드나들며 국내외 작가들과도 인연을 맺어왔다. 상류 인사들이 그런 신 씨에게 투자할 만한 ‘작품 추천’을 의뢰하고 신 씨가 이 과정을 통해 돈과 인맥을 얻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시각이다.
현재 신 씨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신 씨와 무관함을 강조할 뿐 시원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건의 장본인인 신 씨 또한 해외로 잠적한 채 40여 일이 넘도록 굳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일부에서는 신 씨의 비호세력이 신 씨의 해외 도피를 종용하고 현지 체류비까지 제공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내놓고 있다. 과연 신 씨의 일그러진 ‘신데렐라 신화’ 뒤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