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범죄정보과는 일종의 컨트롤타워로, 첩보의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가치 판단을 해 특수수사과 등에 이첩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경찰청. 일요신문 DB
특수수사 경력 15년의 범정과 IO A 씨는 지난 9월 첫째 주 세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감사원 직원을 만났고, 야당 국회의원 보좌관을 만났으며, 국세청 세원정보과 공무원도 만났다. 그리고 기자도 만났으니 엄밀히 말하면 일주일 근무 기간에 4명의 사람을 만났다. A 씨와 같은 IO들은 이들을 망원(網員·북한어)이라고 부른다. 망원은 쉽게 말하면 ‘정보 협조자’이다. A 씨가 이런 망원들을 만난 공통된 목적은 범죄첩보 수집이다. 이들 IO들이 상대하는 망원들을 직업별로 보면 대략 국정원 IO, 검찰 IO, 청와대 민정수석실 사회안전비서관, 주·월간지 기자, 감사원 직원, 국세청 세원정보과 직원, (대)기업 IO, 국회의원 보좌관, 좌파 언론, 개인 사업자 등이다.
경찰청 범정과는 범정1계와 범정2계로 나뉜다. 범정1계는 서무 및 첩보 수집, 범정2계는 순수 첩보 수집이다. 범정과 인원은 1계 9명, 2계 9명이고 여기에 과장과 행정관 각 1명씩을 포함해 모두 20명으로 운영된다. 이 중 순수 외근직 IO는 1계 6명, 2계 9명 모두 15명이다. 그렇다면 IO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범죄첩보를 수집하고, 이렇게 수집된 첩보들은 또 어떻게 정식 수사로 연결될까.
먼저 전국의 10만 명에 달하는 모든 경찰관들이 IO들의 초기첩보 출처가 된다. 10만 명의 모든 경찰들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부여받아 범죄정보입력시스템에 첩보를 올린다. 첩보는 일반첩보와 범죄첩보로 나뉜다. 일반 첩보는 동향 위주의 첩보로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정보를 말하며, 범죄첩보는 상대적으로 중요도와 파급력이 큰 범죄 관련 정보를 가리킨다.
경찰관들 각자에게는 모두 업무 영역과 범위에 따라 시스템에 올려야 할 첩보의 양까지 정해져 있다. 정보국 정보과 형사들은 한 달에 20건을 올리고, 지구대나 파출소 근무 경찰들은 한 달에 두 건을 입력해야 하는 식이다. 이렇기에 하루에도 수많은 첩보들이 시스템 상에 올라온다. 이렇게 올라 온 정보들을 범정1계 내근 IO들은 수시로 매의 눈으로 스캐닝 작업을 펼쳐 그 중에서도 고급 정보들을 집어내 계장에게 보고를 한다. 그 뒤 과장에게 보고가 이어지고 추가적인 첩보 수집이 필요하다 판단되는 기초첩보들이 외근 IO들에게 할당이 된다.
이때부터 외근 IO들의 피 튀기는 첩보 수집 전쟁이 시작된다. IO들은 그동안 구축해 놓은 그리고 구축중인 각계의 망원들을 활용해 할당 받은 해당 첩보의 가장 핵심을 향해 계속 돌진해 들어간다. 가장 많이 알고 가장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이나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이 작업을 IO들은 ‘근원지를 찾아 들어간다’라고 표현한다. 정보국 IO들과 달리 범정과 IO들은 출입처도 따로 없다. 업무 처리 단위도 그에 소요되는 기간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첩보가 있는 곳이면 전국 모든 곳이 그들이 찾아 가야 할 출입처고 직장이며, 가치가 있는 한 언제까지라도 최대한 많은 내용의 첩보를 수집해 내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기자가 접촉한 특수수사 경력 15년의 범정과 IO A 씨는 “기초첩보를 받게 되면 먼저 그 첩보의 최후 출처를 찾아간다. 그런데 대부분은 그 최후 출처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기 마련이다. ‘누구한테 들었다’, ‘어디서 들었다’, ‘나도 들어서 아는 내용이라 많이 모르고 나한테 말해 준 그 사람이 더 많이 알고 있다’라는 식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곳들을 찾아가고, 거기서 알려 준 또 다른 곳들을 다시 찾아 가는 식이다. 그렇게 정보가 축적되기도 하고 점차 핵심 정보에 접근해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뇌물수수 혐의로 처벌받은 김광준 전 서울고검 부장검사(왼쪽)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이 일어난 장소. 두 사건 모두 범정과 IO가 수사를 주도했다. 임준선 기자
여러 망원들을 거칠수록 어떤 하나의 첩보에 대한 세부 내용들은 풍성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모든 첩보들이 활용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외근 IO들이 기초 첩보를 바탕으로 외부에서 수확해 온 첩보들을 갖고 내부 IO들은 정식 수사로 연결될 수 있는지 여부를 따지게 된다. 이것이 자료파악 단계다. 진술 신빙성, 범죄 구성 요건 성립 여부, 폐쇄회로(CC)TV 등 증거 자료 확보 여부, 공소시효 소멸 여부 등이 이 단계에서 이뤄진다. 직접증거뿐 아니라 정황증거, 전문증거 등 각종 증거들을 제대로 챙기고 처벌 요건을 확인하며 기소 가능 여부를 살펴본 이후 검찰에 내사 착수보고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첩보는 비로소 생명으로서의 수사의 단계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결과물만 보면 쉽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들은 사안 하나하나를 발로 뛰며 직접 확인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경찰청 범정과 IO들의 이 같은 활약으로 희대의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 사건, 10억 원대의 뇌물을 받아 7년의 실형을 선고 받은 김광준 전 서울고검 부장검사 사건, 성 접대를 받아 물의를 일으킨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사건 등이 세상에 민낯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들 경찰청 범정과 IO들의 고충은 뭘까. 여러 고충들 중에서도 가장 큰 애로사항은 비직제화 조직원으로서의 소외감이다. 앞서의 IO A 씨는 “국회 안행위에서는 통과가 됐는데 기획재정부 문턱을 아직 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예산이 부족하다. 정보국 IO들은 수사비가 월 120만 원 정도인데 우리는 60만~8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결국 사람 장사고 이에 따라 망 관리가 주요 업무다 보니, 망원들을 만나 늘 밥 먹고 술 마시는 것이 일인데 몇 명 만나고 나면 돈이 부족해지기 일쑤다. 또 대검찰청 범정과는 들어가면 무조건 승진인데 우리는 직제화가 안 돼 있고 기반 구축이 안 돼 있어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첩보 압박감도 빼 놓을 수 없는 어려움이다. A 씨는 이에 대해 “내사를 위한 수사 자료를 수집하다보니 ‘만들어 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늘 안고 산다. 법원의 영장 없이 첩보를 수집해야 하니 설득과 회유, 압박 등을 통하는 수밖에 없고 이렇다 보니 개인의 역량에 좌우되는 일이다. 어떻게 보면 기자와도 비슷한 일을 하고 고민을 하며 산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