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의 세 주인공들.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지난 53년 간통죄가 처음 제정된 이후 50여 년간 법조계 및 사회 각계에서는 ‘존속’ 의견과 ‘폐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왔다. 간통죄 폐지 문제가 심각하게 고려될 때마다 위헌 여부 판단의 당사자인 헌법재판소는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90년과 93년, 2001년 세 차례에 걸쳐 위헌심판이 제기되자 간통죄 처벌 규정인 형법 241조에 대해 ‘합헌’ 결론을 내리면서 존폐 시비에 종지부를 찍어왔다.
그러나 간통죄는 개인 윤리 문제에 속한다는 폐지론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설득력을 얻고 실제 간통죄의 기소율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추세가 나타나면서 간통죄 존속을 놓고 또 다시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간통죄가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배경 그리고 간통과 관련한 각종 실태와 간통죄 폐지 여부에 대한 전망 등을 살펴봤다.
최근 간통죄 존폐 논쟁이 불붙은 데엔 서울북부지법 도진기 판사가 지난 9월 9일 간통죄를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형법 제241조의 위헌 여부를 놓고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것이 계기로 작용했다.
도 판사는 40대 유부남인 직장인 J 씨와 30대 미혼 여성 K 씨가 성관계를 갖다가 간통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심리하던 중 “간통은 계약상 ‘성적(性的) 성실의무’ 위반이고 도덕적으로는 배신행위지만 형법상 범죄로 처벌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권을 훼손하고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재판 속개를 중단하고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 판단을 요청했다. 말 그대로 ‘법이 이불 속까지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도 판사에 이어 경주지원 이상호 판사도 지난 10일 간통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하면서 파문은 더욱 커졌다. 지난 6월 간통죄로 기소된 또다른 K 씨의 사건을 심리하다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을 내린 이 판사 역시 제청 결정문을 통해 “간통 행위는 민사상 제재로 충분하고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은 철저하게 구별돼야 한다”며 간통죄에 위헌 소지가 있음을 지적했다.
간통죄에 대한 현직 판사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90년 부산지법의 김백영 판사(현 변호사)가 간통죄 위헌심판 제청 결정을 내린 것이 첫 사례.
당시 김 판사는 간통죄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남녀 두 사람의 영장 발부를 아예 정지하고 대신 헌법재판소에 위헌 심판을 제청한 바 있다. 이후 대법원이 ‘간통죄는 위헌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례가 있음에도 이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위헌심판을 제청했다’는 이유로 김 판사에게 사표를 종용했을 만큼 당시에는 ‘간통죄가 필요하다’는 보수적인 성향의 의견이 대세였다.
사실 김 판사의 간통죄 위헌심판 제청이 있을 당시 검찰과 법무부는 형법개정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간통죄 폐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시절 법조계 및 국민 대다수의 법의식은 ‘간통에 대한 형사처벌을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러한 여론에 떠밀려 간통죄 폐지를 추진하던 법무부도 94년 사법공청위원회에서 결국 간통죄를 존속키로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2000년 이후 이 같은 보수적 흐름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났다. 개인의 사생활에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고 처벌의 실효성도 없다고 보는 시각이 점점 확산되면서 ‘폐지론’이 힘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지난 2001년 간통죄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가 ‘진지하게 간통죄 폐지 고민을 할 때’라는 점을 판시를 통해 언급하면서 폐지론에 대한 법적인 공론화 필요성이 크게 부각됐다.
결국 지난 2005년에는 염동연 의원(대통합민주신당) 등 국회의원 10명이 ‘간통죄 삭제’ 형법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면서 입법 심의 과정에서 폐지 논의가 이뤄졌고 간통죄 폐지론은 더욱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됐다.
간통죄 폐지론자들은 폐지해야 할 이유 중 하나로 ‘국가 형벌로써의 처단 기능 약화’라는 문제를 지목하고 있다. ‘잠재 간통 혐의자’를 가늠해볼 수 있는 불륜 남녀 비율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크게 늘고 있는 실태와 맞물려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불륜을 경험한 기혼 남녀의 비율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부 매체나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불륜을 경험한 기혼자들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례로 지난 91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실시한 ‘간통의 실태와 의식에 관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기혼 남성들의 불륜 경험은 5명 중의 1명꼴인 20.2%, 여성은 2.9%로 나타났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현재 불륜을 경험한 기혼자의 수치는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지난 6월 SBS의 심리상담 프로그램인 <천인야화>가 기혼 남성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27%가 불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학계에서는 대체로 기혼 남성 중 60% 이상이 결혼 이후 이성과 교제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라이브채널 ‘올리브’가 지난 6월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기혼 여성 응답자 614명 가운데 13%(81명)가 외도를 한 적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한 여성 포털 사이트 ‘젝시인러브’가 지난 8월 초부터 한 달여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기혼 여성 응답자 중 29%가 ‘과거에 불륜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지금 외도를 하고 있다’는 답변도 12%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기혼 응답자의 43%가 불륜 경험이 있는 셈이다.
한편 지난 3월 한 재혼정보회사가 기혼 남성 324명, 기혼 여성 390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는 전통적 도덕관을 뒤흔들 만한 조사결과가 나와 충격을 줬다. ‘만약 본인이 (현재) 불륜 관계를 맺고 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설문에 남성의 44.4%, 여성의 45.5%가 ‘현 부부관계와 불륜관계를 동시에 유지한다’고 답했다. 또한 남성의 34.6%, 여성의 31.8%는 ‘현재 배우자와 이혼하고 불륜 상대와 결혼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결과는 기혼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 사이에서도 외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의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온라인상에서는 기혼 남녀들의 만남을 알선하는 카페의 수가 크게 불어나고 있으며 실제 이들 카페에서 활동하는 회원 수만도 수십만 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진다.
형사 정책적으로 간통에 대한 형벌 적용의 필요성이 점점 약해진다는 점도 ‘폐지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간통 혐의로 고소된 피의자의 실형 선고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일요신문>이 대검찰청 범죄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05년 간통 사건으로 입건된 7575명 중 실제 기소된 피의자는 1196명에 그쳤다. 기소율이 다른 범죄보다 훨씬 낮은 15.7%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특히 간통 혐의 입건자 8917명 중 1459명이 기소돼 16.3%의 기소율을 보인 2004년과 비교해 봐도 더 낮아진 수치다.
해마다 불륜이 느는 추세임에도 간통 입건자의 수는 오히려 점차 줄어드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법조인들은 간통에 대한 일회성 형사적 처벌보다는 이혼소송 등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삼아 실익을 챙기는 사례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