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영화 제목이 아니다. 요즘 본인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여의도 정가의 핵심 아이콘이 돼버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흩어진 여권의 미래권력 후보군을 당내로 집결시키며 나온 이야기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정몽준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도 적합한 직책을 맡겨 곧 당으로 불러들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빼고 여권 내 차기 잠룡으로 불리는 인사들이 모두 여의도로 속속 귀환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임기 2년차 하반기, 레임덕이 회자하기에는 이른 시기임에도. 정가의 한 소식통은 이런 해석을 내렸다.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이 김무성 대표(왼쪽), 이완구 원내대표(오른쪽)와 함께 9월 25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혁신위 추가 인선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무성 대표의 보수혁신특별위원회는 어찌 보면 ‘신의 한 수’일 수 있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정치 쇄신, 당 혁신 등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현재 세월호 정국에선 다소 생뚱맞은 소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음 총선까지 큰 선거가 하나도 없다고 볼 때 표심을 사로잡을 이슈는 어떤 변화밖에 없는 것이다. 봐라, 당 혁신위를 만들고 난 뒤 당이 조용해졌다. 내분이 없다. 잡음이 없다.”
김무성의 혁신위 구성으로 이제 여의도에서는 그의 대권욕은 공식화됐다고 본다. “판을 만들어 여러 사람이 당으로 향하게 만드는 게 나의 책임”이라고 한 김 대표의 속내를 두고 갑론을박이 여럿인 가운데 한 정치권 인사는 이런 말을 했다.
“혁신위원장에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앉혔을지 몰라도, 혁신위원은 강석훈 의원을 빼고 모두 ‘무대 사람들’이다. 거기에 홍준표 경남지사, 원희룡 제주지사를 고문위원으로 앉혔고, 나경원 의원까지 불러들였다. 한마디로 다 ‘링’ 위로 불러 모았다. 가둬놓았다고 표현해도 좋을 듯하다. 여기서 어떤 성과가 나오면 김무성 덕일 수 있고, 개혁에 실패하면 김문수 탓일 수 있는 구도다. 홍준표·원희룡 지사는 훈수나 두면서 분탕질할 수 있는 인사들이다. 지역 일꾼까지 깡그리 당내로 불러들여 잠룡인지 잡룡인지 거르는 키질을 김 대표가 혁신위를 통해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무성으로선 꽃놀이패다. 계란 한 판이 와장창 깨질 수 있다. 또 무대 밑으로 모아 하향평준화하면 다 고만고만해진다.”
정치권 호사가들은 “김 대표가 당 혁신위의 ‘혁신 실패’도 손해볼 것은 없다고 보는 것 같다”면서 “그것이 김 대표에겐 오히려 이익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당직자 출신의 한 의원 보좌관은 “혹여 보수개혁이 국민적 공감대를 불러 성공할 경우 말 그대로 ‘문무(김문수·김무성) 합작품’이라는 말이 나올 텐데 김 대표로선 김 전 지사가 뜨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며 “김 전 지사를 위원장으로 위촉했지만 혁신위원이나 자문위원 등의 인사를 김 대표가 주도하거나 중간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선 혁신위원장으로 거론됐던 유승민 의원에게 그 자리가 돌아가지 않은 이유가 유 의원이 “혁신위를 맡게 되면 혁신위 인사에서부터 모두 제가 하겠다”는 뜻을 김 대표에게 전달했기 때문이란 말도 돈다. 정치권 동향에 밝은 한 기관 관계자의 관측이다.
“이런 조합으로는 혁신에 대한 단일안이 나오기 어렵다.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거들고 네 편 내 편 할 경우 모두 구태 인물로 찍히게 된다. 이때 김 대표가 교통정리를 하거나 뭔가 해결사 같은 역할을 하게 되면 본인이 가장 부각될 수 있다. 그게 바로 ‘큰 인물론’이다.”
김 대표의 속내가 어떻든 그의 구상대로만 흘러가진 않을 것으로 보는 측도 있다. 우선은 김문수 전 지사와 홍준표 경남지사가 녹록지 않은 상대다. 경북 영천 출신인 김 지사는 노동운동을 하고 3선 국회의원에 재선 지사를 지냈다. 당내 세력이 없다는 것을 빼면 약점이 별로 없다. 이번 혁신위원장 수락 전에도 그의 주변부에서 김 대표 밑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만류했지만 결과를 만들어내겠다며 정면돌파를 선택했다고 전해진다.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을 김 지사는 이번 6개월간의 보수혁신 프로젝트가 정치적 생명과 직결된다. 홍 지사는 현재 거론되는 잠룡 중 당 대표를 ‘쟁취’한 유일한 인물이다. 정몽준 전 의원도 대표 출신이지만 공석을 매운 케이스다. 박희태, 황우여 전 대표는 옹립됐다. ‘모래시계 검사’ 이미지로 대중성을 갖춘 그가 경남지사로 변방에 머물러 있기보다 중앙을 기웃거릴 기회를 단번에 잡았다는 평가도 있다.
반면 김 대표는 영남권 5선이지만 모험이 없었던 정치인으로, 귀족·재벌 출신 이미지에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평가에 상도동계 막내라는 한계가 있다. 일각에선 문재인과 비교해 김 대표가 곧 그 한계를 실감할 것이라 내다보기도 한다.
집권 여당이 이렇게 미래권력의 놀이터로 재편되고 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조우했다. 정치권에선 둘의 만남이 의도적이라 보는 쪽과 정치적 뜻이 없다고 보는 쪽으로 갈린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스타일을 잘 아는 인사들은 후자 쪽에 힘을 싣는다.
“박 대통령은 후계자를 미리 선정하는 스타일도, 사람을 키우는 스타일도 아니다. 국내 실정을 잘 모르는 외교부 출신을 단지 인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외에서 통할 것이란 까닭에서 대통령을 만들 수 없는 노릇”이라며, 한 박근혜 후보 대선 캠프 출신 인사는 “정치는 모름지기 세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보수혁신특위는 일단 성공작이다. 주류 진영이었던 친박계가 대거 소외되면서 ‘구걸정치’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한 친박계 의원은 전·현직 지사들이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서병수 부산시장이나 유정복 인천시장은 왜 안 되는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있다”고 불쾌해 했다고 한다. 결국 친박은 김 대표가 거둬들이지 않으면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쪽박 신세로 전락한 셈이다.
다소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여권의 전략기획 쪽 관계자는 “그간 당과 정치 혁신안 내용이 좋지 않아서 이 모양이 아니다. 혁신은 의지와 실천의 문제”라며 “모두가 혁신 앞으로 집결해도 모자랄 판에 자기 이해를 끼워 넣는 순간 구태를 반복할 것이다. 그런데 벌써 그런 의도들이 보인다”고 쓴소리를 했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