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 건물.
5억 원을 쓰면 당선되고, 3억 원을 쓰면 낙선한다는 지역 단위 조합장 선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조합장 선거를 ‘경운기 선거’라 부르기도 한다. 선거 당일만 되면, 출마자가 직접 경운기를 동원해 유권자인 조합원들을 투표장소로 실어 나르는 모습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는 조합장 선거의 금권선거와 부정선거로서의 면모를 강조한 비유다.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다. 한 시골 지역의 군수, 의원, 학교장, 경찰서장, 소방서장, 사단장, 언론사장 그리고 조합장 등 기관장들이 한 식당에 모여 고스톱을 친다면 응당 그날 밥값은 조합장이 낸다는 뼈있는 농담이다. 한 지역의 금융을 담당하는 터라 자연스레 ‘돈줄’을 쥐게 된 조합장의 막강한 금권을 두고 나온 말이다. 여기에 조합을 꾸리는 ‘인사권’ 역시 조합장이 보유한 막강한 힘의 밑바탕이 된다.
이러한 배경 탓에 전국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치러졌던 조합장 선거 직후엔 당선자들의 부정선거 의혹과 여기서 비롯된 낙선자들의 고소·고발 등 법적 분쟁이 심심찮게 발생했다. 심지어 2년 전 전남 장흥에선 조합원들을 상대로 돈 봉투를 살포한 의혹을 받던 현직 조합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지난 2012년, 농협·수협·산림조합법 등 법령 개정을 통해 개별적으로 치러지던 조합장 선거를 2015년 3월 11일부로 동시에 치르기로 결정했다. 비용절감도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앞서 말한 부정선거 등에서 비롯된 선거 관리의 효율성 측면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동시 선거를 치름에 따라 선거 관리 위탁은 전적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맡게 된다. 이전 개별 선거 시절에는 각 단위별 선관위에 ‘단순 위탁’ 하는 형태였지만, 이젠 무조건 선관위가 의무적으로 개입한다. 조합장 선거 관리와 조사에 따른 처벌 등 모든 것이 이제 중앙선관위에 귀속된 셈이다. 이는 지난 8월부터 시행하는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 따른다. 해당 법령에 따라 치러지는 선거이기에 그 의미와 수준은 공직선거와 별다를 바 없게 됐다.
내년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최근 농협중앙회 전남지역본부가 공명선거 결의대회를 가졌다. 사진제공=농협중앙회 전남지역본부
선거는 내년 3월 11일에 치르지만, 선거 레이스는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별도의 예비후보 등록은 없지만, 이미 현직을 포함한 지방 곳곳의 후보자들은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선관위는 해당 법령에 따라 지난 9월 21일부터 후보자들의 기부행위 일체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경북 영천에서 출마를 타진하고 있는 한 후보자는 “현재 조합원들을 두루 만나 (출마에 대해) 상의하고 있다. 나 이외에도 몇몇 후보들은 벌써부터 선거 공보물과 관련해 알아보고 있다고 하니 이미 선거는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선거 초반 출마를 타진하고 있는 후보자들의 눈치싸움이나 분위기는 여타 공직선거와 다를 바 없다”고 귀띔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전과 달리 판이 커진 전국동시 조합장 선거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내년 선거를 한마디로 총선을 앞둔 거대한 ‘표밭’의 향방으로 인지하고 있다.
영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한 국회의원실 관계자는 “우리처럼 촌락을 중심으로 지역구를 두고 있는 의원의 경우, 내년 조합장 선거는 그야말로 초미의 관심사”라며 “한 조합당 유권자가 적게는 1000명에서 많게는 1만 명에 이른다. 그런 조합이 지역 내 10여 개가 있다고 치자. 이건 국회의원 선거의 당락을 좌우할 어마어마한 표밭이다. 조합장 관리가 곧 표밭 관리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건물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최근 조합법 개정안을 발의한 황주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전남 장흥·강진·영암) 역시 <일요신문>과 만나 “우리 지역 내에서만 25개의 조합이 동시선거에 임한다”며 “지역구를 관리하는 의원 입장에서 당연히 관심이 가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앞서의 의원실 관계자는 더 나아가 “솔직히 우리 입장에선 선거 이전부터 관리 아닌 관리도 필요하다”며 “어떤 인물이 조합장으로 당선되느냐는 무척 중요한 문제다. 되도록 의원과 유대관계가 깊은 후보자가 당선되는 것이 표밭 관리 입장에서도 유리하지 않겠나. 선거에 직접 관여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부터 (당선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현직을 중심으로 좋은 관계를 맺어둔다”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부합하는 또 다른 시각도 있다. 전국적인 주목도가 높아짐에 따라 정치 입문을 노리는 후보생들이 그 발판으로서 조합장 선거에 나서게 될 가능성이 높게 관측되고 있다. 당선만 된다면, 응당 지역 사회에서 수천 명의 조합원을 무기로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규정상 조합장은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공직선거 개입이 불가하지만, 기회만 된다면 위에 선을 댈 여지도 많다. 낙선한다 하더라도 선거판을 경험하며 얼굴도 알릴 수 있다. 2년 후 총선까지 전국단위 선거도 없다. 정치 후보생으로서는 도전해 볼 만한 선거인 셈이다.
정치컨설턴트 이재관 마레컴 대표는 “이전부터 조합장들은 지역의 유력 인사였다. 이 때문에 이따금씩 몇몇 조합장 출신 인사들이 공직선거에 도전하기도 했다”며 “그런데 선거판 자체가 커짐에 따라 주목도와 의미가 월등히 상승했다. 정치신인으로서는 조합원 자격만 잘 갖춘다면 하나의 발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중앙선관위 ‘발 등에 불’ 1366곳 통째로 맡으니 부담백배 내년에 동시 선거를 치를 농협·수협·산림조합은 총 1366개에 달한다.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버금가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여기에 9월 황주홍 새정치연합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70여 선거구가 추가된다. 황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내년 동시선거 예외 대상인 ‘신규조합과 통폐합조합’ 역시 선거대상에 포함하는 취지다. 경기도선관위의 도내 농협조합장 대상 교육 모습. 사진제공=경기도선관위 이에 따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중앙선관위다. 선관위 관계자는 “우리도 (공직선거를 제외하고) 사실상 처음 치르는 초대형 위탁선거다. 솔직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이전에도 각 단위별로 조합장 선거를 위탁받아 치르긴 했지만, 이번엔 관련법 제정에 따라 우리가 의무적으로 관여하게 됐다. 형식은 위탁이지만, 그만큼 책임감이 커졌다. 현재 각 지역별로 내부 교육과 후보자 교육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관위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우려스러운 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일단 법령을 통한 선거 방법의 제한사항은 있지만, 공직선거와 달리 별도의 세부지침은 없다. 특히 선거운동 자금 제한액에 관한 규정은 전혀 없다. 금권선거를 방지하는 세부적인 선거관리가 이뤄질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선관위 관계자는 “새롭게 시행하는 관련법 규정에 따라 선거 후보자는 운동원을 둘 수 없고 공보, 벽보, 명함 배부에 따른 운동만 가능하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으론 현재의 규정 자체가 현직에 지나치게 유리하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출마를 앞두고 있는 한 후보자는 “제한액은 둘째 치고, 현직이 아닌 후보자 입장에선 현재 규정상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며 “그 넓은 지역을 혼자 돌아다니며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하다못해 유세차량도 이용하기 어렵다. 현직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국회 농림위 소속의 황주홍 의원은 이와 함께 선관위의 선거관리에 있어 이른바 ‘가짜 조합원 색출’을 강조하기도 했다. 선거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선거인 명부에 관한 사안이다. 황 의원은 “이전 조합원 선거에서 금권선거, 부정선거 등 다른 문제도 많았지만, 무자격 조합원이 특정후보에 의해 동원된 사례가 많았다”며 “선관위는 이에 대한 방안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
선거시장 ‘특수’로 들썩 1000억 규모…“벌써 출마자 리스트 돈다” 예년에는 없었던 내년 전국동시 조합장 선거는 정계 입장에선 ‘표밭’이지만, 선거시장에 있어선 한마디로 ‘돈밭’이다. 2년 후 총선까지 큰 선거가 없는 이상, 내년 조합장 선거는 이른바 업자들에게 있어선 혹독한 춘궁기에 맞이하는 귀한 먹을거리인 셈이다. 일단 최소한의 선거비용을 기준으로 잡아보자. 기초위원 후보들의 경우 공보물 제작에 보통 500만 원이 든다고 한다. 내년 조합장 선거구는 총 1366개다. 여기에 대략 한 선거구당 평균 5명의 후보가 나선다고 가정한다면 약 350억 원대의 시장이 형성된다. 하지만 이는 가장 기본적인 공보물 제작액만을 기준으로 한 최소한의 계산이다. 당연히 부수적인 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 개정안 통과에 따라 선거구 자체도 늘 수 있다. 여기에 예비후보 제도가 없기 때문에 선거 막판까지 후보자 난립도 일어날 수 있다. 이를 감안한다면 최대 1000억 원대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미 이를 선점하기 위한 업체들의 경쟁 역시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선거인명부 작성과 후보자 등록은 내년 2월께다. 아직 문의하는 후보자들은 그리 많지 않지만, 업체들 사이에서 당선이 유력한 현직 조합장들의 리스트를 비롯해 예상 출마자 명단을 확보하기 위해 벌써부터 정보가 공유되고 있다”며 “우리 입장에선 적잖은 시장이기 때문에 업체들 사이에서 곧 경쟁이 불붙을 소지가 높다”고 내다봤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