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속 장 씨의 모습. 범행 후 피가 묻은 헝겊으로 오른손을 감싼 채 아파트 단지를 태연히 빠져나가고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확인한 현장은 너무나도 참혹했다. 권 씨의 집에서 흉기에 수차례 찔려 숨진 채 발견된 피해자는 다름 아닌 권 씨의 부모였다. 경찰은 전날 밤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는 이웃주민들의 진술을 토대로 엘리베이터와 아파트 인근 폐쇄회로(CC)TV 확인에 나섰다.
경찰은 용의자를 추적하던 중 CCTV에서 의문의 남성을 발견했다.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는 시간 즈음의 엘리베이터 CCTV 화면에서 한 남성이 공구통을 들고 있는 것이 발견됐다. 화면 속 남성은 권 씨의 추락직후 피 묻은 수건으로 손을 감싸고 아파트를 빠져 나가던 남성과 같은 인물이었다.
4시간 후 인근의 한 빌라에서 체포된 범인은 놀랍게도 권 씨의 전 남자친구 장 아무개 씨(24)였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달서경찰서 형사팀 관계자는 “권 씨의 진술과 CCTV를 토대로 비교적 빨리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다”며 “피해자의 어머니 두개골이 칼에 깊숙이 찔렸는데 그때 다쳤는지 장 씨의 손에도 피가 많이 나고 있는 상태였다. 장 씨는 권 씨 부부를 살해한 현장에서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술을 구입했다. 체포 당시 장 씨의 방안에서 구입한 후 아직 뜯지 않은 식칼과 술병이 발견됐다. 구입한 식칼의 용도는 무엇인지 끝내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 씨는 어째서 전 여자친구의 부모님에게 잔혹한 칼부림을 한 것일까. 올해 1월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나 연인으로 발전했다는 권 씨와 장 씨. 권 씨와 장 씨는 2달간의 짧은 만남 끝에 연인 관계를 정리했다고 한다. 권 씨와 장 씨가 교제한 시간은 불과 2개월 남짓. 기자는 그 짧은 시간동안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두 사람이 다녔던 대구의 D 대학교 캠퍼스를 찾았다.
끔찍한 사건이 지나간 지 4개월째, 권 씨와 장 씨가 다녔던 D 대학교 캠퍼스는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D 대학교에서 만난 장 씨의 지인 A 씨(25)는 “장 씨는 대학교 동아리 총연합회 회장이었다. 1월에는 학교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인사도 싹싹하게 잘해서 주변에서 평이 좋았다. 지금도 그 예의바른 모습의 장 씨가 사건의 장본인 장 씨와 동일인인지 믿지 못하고 있다”며 “학교행사에 적극적이었던 장 씨가 3월 초 동아리 연합회 회장직을 돌연 사퇴하겠다고 했다. 이후 4월부터는 학교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장 씨 후배 B 씨(22)도 “장 씨는 군 복무를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직접 학비를 마련해 복학한 성실한 선배 이미지였다”며 “알려진 것처럼 ‘술만 마시면 돌변해 폭력을 일삼는 사람’까지는 아니었다”고 기억했다.
딸의 폭행 사실을 알게 된 권 씨의 부모도 장 씨의 부모를 찾아가 책임을 묻겠다며 따졌다. 장 씨 부모는 고소를 하겠다는 권 씨 부모를 말린 다음 아들에게는 학교를 휴학할 것을 요구했다. 결국 제대 후 학교에 복학했던 장 씨는 부모의 요구에 동아리 연합회 회장직을 사퇴하고 휴학을 했다. 하지만 휴학을 하고 나서도 장 씨는 권 씨의 주변을 계속해서 맴돌았다. 이유는 권 씨의 동아리 탈퇴를 종용하기 위해서였다. 동아리에 자신과 관련한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 권 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 씨의 동아리에 대한 집착은 남달랐다고 한다. 달서경찰서 관계자는 “사건 당시 장 씨는 권 씨를 9시간 이상 감금했었다. 부모님을 살려야 하니 119에 신고하자는 권 씨에게 장 씨는 계속해서 동아리를 탈퇴하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며 “잠시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출은 했지만 권 씨는 오른쪽 팔과 양쪽 골반을 크게 다쳐 평생 장애를 안고 살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쌓아온 인간관계와 동아리에서의 권위가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 여자친구 탓이라고 생각했던 장 씨는 결국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지난 18일 있었던 장 씨의 1심 선고공판에서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 제1형사부는 장 씨에게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다. 초범에게 사형이 선고된 이례적인 판결에 다시 한 번 세간의 관심이 모아졌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장 씨가 사건 범행에 대한 자각과 인식, 죄의식이 낮은 것으로 보여 사회에 복귀한다면 다시 살인을 저지를 위험성이 매우 높다”며 “범행 준비과정이 구체적이고 계획적이었고, 권 씨와 피해자 유족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힌 점 등을 고려해 피고인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고 동일한 범행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형 선고가 불가피하다”라고 밝혔다.
대구지법 이종길 공보판사는 “현행법 상 가석방이나 사면 등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종신형은 도입돼 있지 않아 인간의 생명을 부정하는 범죄와 이 같은 범죄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형 선고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18일 1심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장 씨는 지난 22일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대구=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