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현은 열아홉에 입단 5년차. 이동훈은 열일곱에 입단 4년차. 박창명은 나이는 스물셋으로 기대치는 떨어지지만, 입단 8개월에 단은 초단. 이동훈은 타이틀 도전 최연소 부문에서 5위의 기록이다. 1등은 이창호 9단. 열세 살 때 제28기 최고위전에서 도전자가 되었고 제8기 KBS바둑왕전에서 결승에 올라가 최고위전에서는 실패했고 바둑왕전에서는 성공했다. 최고위전에서는 이듬해 또 도전자가 되어 스승 조훈현 9단의 것을 넘겨받으면서 한국 바둑 패자교대(覇者交代)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그게 벌써 20여 년 전이다.
2, 3, 4등은 박영훈 박정환 송태곤 9단. 박영훈은 2001년 열여섯 살의 2단으로 제6기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결승에 올라갔고 타이틀을 차지해. 최연소 타이틀 획득 부문에서 1971년 시즌 서봉수 9단의 명인 우승과 타이 기록을 세웠다.
박정환 9단도 16세 때 2009년 제4기 원익배 십단전에서 결승에 진출하고 우승했다. 송태곤 9단도 16세 때 2002년 제4기 박카스배에서 결승에 올라가 타이틀을 차지했다. 세 사람 모두 16세인 것은 같은데 개월수에서 조금씩 앞서거니뒤서거니한 것.
이세돌 9단은 28일에 있을 구리 9단과의 10번기 제8국을 두러 26일 중국으로 떠난다. 명인전 바둑을 전후해 이 9단을 만난 사람들의 얘기로는 “이 9단이 본인이 요즘 컨디션이 최악이라고 토로하더라”는 것. “대국이 원체 많은 데다가 하루 걸러 한국 중국을 왔다 갔다 하느라고 그럴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10번기의 중압감이 클 것이다. 구리 9단과는 우정이 깊은데, 전부 아니면 전무의 승부를 해야 하는 것도 맘 편할 리가 없을 것이다.” 이 9단의 팬들은 이 9단에게 “술 담배를 끊으라”고들 계속 권하고 있다. “기러기 아빠를 빨리 면했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운 소리도 자주, 여러 곳에서 들린다.
이동훈이 박영훈이나 박정환에게도 이길지 어떨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일이다. “박영훈 9단이 들으면 섭섭해 할지 모르지만, 박 9단과는 5 대 5, 박정환 9단과는 아무래도 박정환이 조금이라도 낫지 않을까. 6 대 4 정도?”라고 점치는 사람들이 많다. “지각변동, 판도변화, 새바람,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면 이동훈이 누구와 만나는 게 좋은지…^^ 승부사는 상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지만…”
이세돌 9단의 컨디션 여부와 상관없이 나현 이동훈 박창명 등 새얼굴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은 “요즘 상황의 연출이기도 하다”는 분석도 있다. 둘러보면 그렇다. 한쪽에서는 없어지는 기전도 있지만 다른 쪽에서는 기존의 KB바둑리그에, 퓨처스리그, 렛츠런배, 국수산맥, 시니어국수전 같은 새로운 기전들이 줄을 잇고 있다. 게다가 그것들 대부분이 속전속결을 선호하고 있다. 예전처럼 1년 단위로 느긋하게 진행되는 게 아니라, 몇 개월에서 빠르면 몇 주 이내에, 예선부터 결승까지 한달음에 끝내자는 식이다. 누차 말하는 것이지만 중국리그의 영향도 크다. 전장이 다양해지고 스피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세력 분산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물론 타이틀이 제일 좋지만 여의치 않으면 중국리그가 있으니까.
아무튼 나현이나 박창명이나 이동훈 중에서 누구 한 사람 새로운 타이틀 홀더가 나와 주기를 바란다. 한 번만 물꼬가 터지면 시대가 바뀌지 않을까.
이광구 객원기자
이세돌 ‘대마 사활’ 대착각 이세돌-이동훈의 명인전 준결승 1국은 이세돌 9단의 착각이 빚은 단명국이었다. 중반에 큰 바꿔치기가 있었다. 이 9단의 중앙 백 세력권에 이동훈이 뛰어들었다. 이 9단은 공격을 퍼붓다가 초반에 숙제로 남겨졌던 좌상귀 생사패를 결행했고, 중앙 흑말의 생사를 팻감으로 동원했다. 이동훈은 이 9단의 팻감을 듣지 않았다. 들으면 한이 없었고, 좌상귀 전체도 생사가 걸려 있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이동훈은 좌상귀를 살리고 겸해서, 잡혀있던 흑돌들도 구출했다. 흑돌을 잡고 있던 백돌들을 거꾸로 잡았으니까 전과가 컸다. 대신 중앙 삭감부대는 백의 포로가 되었다. 그래서 바둑은 다시 거기서부터였는데, 우상귀와 중앙이 얽히면서 중앙의 흑말이 움직이는 빌미가 생겼고, 마지막 순간에 이 9단이 흑 대마의 사활을 착각한 것. <1도>가 사건의 현장이다. 중앙은 백의 관할이었는데, 흑의 삭감부대가 백 세력을 지우며 탈출에 성공하고 있다. 흑1로 연결하는 장면이다. 이래서는 백의 집부족이 완연하다. 이 9단은 좌상귀 일대 흑을 향해 백2를 던졌다. 노리고 노리던 곳. 흑은 이 패를 지면 이 일대가 전멸이다. <2도> 흑1로 따낼 때 중앙 백2가 팻감. 방금 말했듯 흑은 이 팻감을 들어줄 수가 없다. 흑은 3에서 5로 계속 때려내고, 백은 4로 끼워 중앙 흑을 잡은 후 6으로 하변을 정리했다. 흑은 7로 중앙을 견제하고 9로 상변을 차지했다. 백은 10으로 우상귀를 깎는 척하고는 흑11로 보강하기를 기다려…. <3도> 백1, 3으로 나와 끊어 중앙을 부풀렸는데, 이게 흑에게 빌미를 제공한 화근이었다. 흑이 4, 6으로 몰고 이을 때 백은 7쪽을 수비하면서 중앙을 통으로 다 차지했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그러나 흑은…. <4도> 흑1, 3을 찾아놓고 있었다. 흑 대마는 너무 간단히 살았다. 백의 착각이었다. 천하의 이세돌 9단이, 이렇게 쉬운 사활도 착각할 때가 있는 것인지. <5도> 흑1로 그냥 따내는 것은 백2로 그만이고, <4도> 흑3 다음 <6도>처럼 백1로 들이대고 3으로 끌어내 잡으러가는 것은? 흑4로 백 두 점을 따내 이번에는 거꾸로 그만이다. 백5로 3 자리를 먹여쳐야 하는데, 흑6으로 단수치며 비집고 나가는 수가 있다. [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