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유가령 누드사진(왼쪽)과 2006년 종흔동 도촬 사진을 게재한 홍콩 잡지들이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종흔동은 2008년 진관희 스캔들로 또 다시 고통을 겪었다.
‘진관희 커넥션’의 첫 피해자였던 종흔동이 이 사건에 유난히 민감했다면, 이미 그녀는 2년 전에 사진 때문에 큰 고통을 받은 바 있었기 때문이다. 채탁연과 함께 ‘트윈스’의 멤버로 큰 인기를 끌던 종흔동은 2006년 여름 말레이시아의 겐팅 하이랜드 지역에서 대규모 콘서트를 열었다. 스테이지마다 다른 의상을 선보였던 그녀는, 하나의 무대가 끝나면 재빨리 탈의실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는데, 이때 무대 뒤에 몰래 숨어든 파파라치는 그녀가 옷 갈아입는 장면을 도촬했고, 이 사진은 8월 22일 홍콩의 타블로이드 주간지 <이지 파인더>의 표지를 장식한다. ‘세미 누드’라곤 하지만 그녀의 벗은 등과 브래지어 끈 정도가 드러난, 어떻게 보면 수영복 화보보다도 약한 수준의 노출이었지만, 이 일은 홍콩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여파는 예상 외로 컸다. 성룡, 유덕화, 임달화, 오언조, 장학우, 관지림 등 홍콩을 대표하는 엔터테이너들은 ‘사생활과 품위’(Privacy and dignity)라는 이름을 내건 기자회견을 열었고, 해당 매체에 대한 보이콧에 들어갔다. 당국의 미디어 규제 담당 공무원은 1700여 통의 항의 메일을 받았고, 법원에서는 이 일에 대해 외설죄를 적용했다. <이지 파인더>의 발행사인 넥스트 미디어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외설죄에 적용되는 사진인지 알기 위해 당국에 심의를 넣어도 답변서가 너무 늦게 오기에, 속도가 생명인 매체 속성상 할 수 없이 일단 사진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들은 외설 판정에 대해 항소했지만 법원은 11월 1일에 기각하며 “여성의 성을 팔아먹으려 고도로 계산된, 타락하고 역겨운 행위”라고 강하게 못 박았다. 결국 <이지 파인더> 측은 종흔동에게 공식 사과를 했고, 네거티브 필름 전부를 건넸다.
이 사건이 지나친 경쟁 속에서 선정주의의 극을 달리는, 연예인의 사생활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홍콩의 연예 저널을 보여준다면, 2002년에 있었던 사건은 좀 더 위협적이다. 시간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가위 감독이 <아비정전>을 촬영하던 시기, 최근 <적인걸> 시리즈의 측천무후 캐릭터로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는 유가령은 당시 ‘루루’ 역을 맡아 톡톡 튀는 개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건이 일어났다. 촬영 기간에 그녀가 몇 시간 동안 행방불명된 것이다. 이유는 납치였고, 힘든 모습으로 돌아온 유가령은 어디서 어떤 일이 있는지 전혀 말하지 않았다. 긴 세월 동안 연인이었고 2008년 결혼식을 올린 양조위에게도, 그녀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2002년 10월 30일, 납치 사건이 일어난 지 12년이나 지난 시점, 연예 주간지 <이스트 위크>에 유가령의 누드 사진이 실렸다. 얼핏 봐도 강제로 찍힌 것이 분명한 이 사진엔, 상반신을 노출한 유가령이 수치심을 느끼는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이후 그녀는 결국 이 일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녀를 납치한 사람들은 삼합회의 조직원들이었고, 네 명의 남자가 끌고 갔다는 것. 자신들이 뒷돈을 대는 영화 출연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납치, 보복과 함께 경고와 협조 강요의 의미로 그런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매니저들이 ‘보험용’으로 신인 여배우나 여가수의 섹스 비디오를 찍어 놓는다면, 한때 한국 사회에서 괴담처럼 돌았던 이야기들을 연상시키는 스토리다.
탈의실 몰카 피해자 종흔동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2002년 유가령의 사진 노출 때도 성룡을 중심으로 한 홍콩 엔터테이너들은 연예 저널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 비판하며 강력한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유가령은 “이 일이 미디어의 윤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울 수 있다면, 내가 겪는 고통을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이스트 위크>는 2002년 11월에 폐간되는 듯 보였지만 다음해 복간되었다. 이 잡지의 발간인은 5개월형을 받아 복역했다.
2002년 유가령 누드 사진 폭로 사건, 2006년의 종흔동 도촬 사건, 2008년 진관희 스캔들…. 21세기 홍콩 연예계를 뒤흔든 굵직한 사건은 모두 여배우의 벗은 몸에 대한 대중적 관음증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여기엔 옐로 저널리즘과 인터넷 시대의 익명성이 있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