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스테로이드 복용 문제는 먼 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일부 운동선수들이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는 일반 헬스클럽에도 스테로이드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한다. 특히 이들 스테로이드 오남용자 중에는 청소년들도 포함돼 있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단시간 내에 ‘몸짱’이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스테로이드. 하지만 그 후유증은 막심하다. 전문가들은 스테로이드가 마약보다 더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금지된 약물’ 스테로이드는 과연 우리 주변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와 있는 걸까.
지난 1월 30일 부산경남본부세관은 스테로이드 11만 2000정이 밀수되는 현장을 급습했다. 시가로 1억 7000만 원이나 되는 이 스테로이드 알약을 밀수한 이들은 전직 국가대표 보디빌딩 선수들이었다. 이들은 동남아와 유럽에 개설된 불법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스테로이드를 다량으로 구입해 편지봉투에 담아서 국내로 들어오려다 적발됐다.
부산경남본부세관의 신은호 과장은 이번 밀수 정보를 “미국 마약수사청이 알려주었다”라고 전했다. 그는 “미국에서 스테로이드는 마약으로 분류된다”며 “(밀반입자들이) 세관을 통과하기 위해 마약을 운반하듯 편지봉투나 아이들 초콜릿처럼 위장해 들여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발신인 주소를 거짓으로 적어서 국내에 들여오기도 한다. 스테로이드가 배달된 주소지를 급습하면 ‘자신은 전혀 모르는 물건이다’라고 발뺌을 하는 식이다. 또 소량을 조금씩 들여오는 경우도 많아서 단속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스테로이드는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구입 가능한 약품이다. 스테로이드는 일종의 호르몬제로 아토피를 포함해 여러 질환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스테로이드의 또 하나의 기능은 근육을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특히 단기간에 근력과 근육을 키우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테로이드가 의사처방 없이 불법적으로 유통되고 복용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몸짱’이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스테로이드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대한보디빌딩협회 창용찬 이사는 “스테로이드가 주로 유통되는 곳은 헬스클럽으로 여겨진다”고 말한다. 그는 “일부이긴 하지만 헬스클럽 코치들이 고객들에게 단기간에 근육을 키워주겠다고 하면서 스테로이드를 추천하는 일이 있다”고 실태를 전했다.
국내 일부 보디빌딩 선수들이 스테로이드 복용을 하는 경우도 있다. 창 이사는 “작년 한 해 동안 도핑테스트에서 5~6건을 적발했다”며 “스테로이드 복용 사실이 적발되면 2년 동안 선수 자격을 박탈했으나 최근에는 영구 제명을 하는 것으로 강력하게 제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번 밀수 사건에서 붙잡힌 전 국가대표 보디빌딩 선수들 중에는 협회로부터 영구제명된 이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창 이사는 스테로이드를 한 번 복용하기 시작하면 좀처럼 끊기 힘들다고 전한다.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면 운동이 별로 힘들지도 않을뿐더러 금세 근육이 생기게 된다. 쉬운 길을 한 번 접하면 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결국 다시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게 되고 나중엔 끊을 수 없게 된다.”
금지 약물의 유혹에 빠지면 짧은 시간에 ‘몸짱’을 만들 수 있지만 그 대가는 혹독하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보디빌딩 선수들이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케이스가 허다하다. 미국에서는 청소년 운동선수들이 스테로이드 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강북삼성병원 재활의학과 이용택 교수는 “헬스클럽에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다 응급실에 실려 온 케이스도 종종 있다”고 밝혔다. 과연 스테로이드의 오남용이 우리 인체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걸까. 이 교수의 설명이다.
“호르몬제를 인위적으로 투여하면 우리 몸이 정상적인 호르몬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장기복용을 할 경우 뇌하수체 기능이 떨어져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피부가 약해지고 얼굴이 붓고 혈관이 가늘어지게 돼 이로 인한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스테로이드는 남성호르몬제이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2차 성징이 생길 수 있는데 우선 고환 기능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여성이 스테로이드를 복용할 경우에는 더 큰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또 병원균에 쉽게 감염될 수 있고 각종 장기들이 손상되기도 한다. 오랫동안 복용을 하면 혼수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있고 이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사망할 수도 있다. 응급실에 실려 오는 환자는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 교수는 스테로이드의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의 100% 부작용이 일어난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스테로이드에 중독성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복용하면 갑자기 근육이 커지는데 약을 먹지 않으면 오히려 더 빨리 근육이 수축된다. 따라서 한번 복용하면 장기 복용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대한보디빌딩협회 창 이사는 “마약은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키지만 스테로이드는 신체에 직접적인 손상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이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겉모습만 보기 좋아지는 것에 현혹되어 계속 복용한다. 그래서 어쩌면 마약보다 위험한 게 스테로이드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청소년들이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스테로이드는 남성호르몬제이기 때문에 성장기의 청소년들이 복용하면 일반적인 부작용 외에 성장판이 일찍 닫히는 일까지 겪게 된다. 자신들의 우상인 연예인들이나 운동선수들처럼 ‘몸짱’이 되고 싶어 스테로이드를 복용하지만 결국 제대로 성장하지도 못하게 되는 셈이다.
창 이사는 “이번 적발이 오히려 잘된 일이다”고 말했다. 그동안 음성적으로 유통돼오던 스테로이드가 이번 기회에 사회문제화돼 국내에서도 마약처럼 단속 대상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대부분의 운동선수들이 순수한 땀과 노력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스테로이드 문제가 공론화돼서 해결방안을 찾았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류인홍 기자 ledh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