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대표에 패한 서청원 최고위원. 친박 의원들 사이 ‘탈박’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좌장도 눈에 띄지 않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얼마 전 한 친박 의원은 씁쓸한 일을 겪었다. 동료 의원들과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이들 중 몇몇이 갑작스레 약속을 취소한 뒤 김무성 대표 라인으로 분류되는 중진 의원이 주최한 행사에 참여했던 것이다. 해당 의원실 관계자는 “급히 볼 일이 있다며 다음에 보자고 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자리에서 밥을 먹고 있더라”며 “그래도 정권을 탄생시킨 개국공신들인데 이제는 친박끼리 밥을 먹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 된 것 같아 조금은 서글펐다”고 귀띔했다.
홍준표 경남지사 발언도 화제를 모았다. 홍 지사는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친박이라는 계파는 정권 초기 반짝했다가 지난 6·4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와해가 돼버렸다”고 주장했다. 홍 지사는 “정권 출범하고 난 뒤에 친박의 중심이 되는 인물도 없고, 또 친박 전체를 끌어갈 만한 동력도 없다보니까 정권 초기인데도 주류인 친박이 전당대회에서 당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홍 지사 말에 친박은 불쾌해하면서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친박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 분석이다. 당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김무성 대표로의 힘 쏠림 현상이 친박 내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주요 당직에 비박계 인사를 발탁하고 보수혁신특별위원회 대표로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임명하는 등 사실상 친박을 배제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김 대표는 ‘문무합작(김문수+김무성)’을 통해 차기 총선, 더 나아가 대선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데 주력할 것”이라면서 “어느 정도 친정체제가 구축되면 본격적으로 친박 해체에 나설 가능성이 유력하다. 여의도 주변에서 벌써부터 2016년 총선에서 친박이 대학살을 당할 것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친박 핵심 의원들은 앉아서 당하고만은 있을 수 없다며 대책 마련에 나서는 한편, 김 대표 독주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선봉은 친박계 좌장 서청원 최고위원이 나섰다. 전당대회 후 말을 아껴왔던 서 최고위원은 최근 잇달아 라디오 방송에 출연, 혁신위 인선과 관련해 “최고위원들과 협의를 하고 추천을 받는 등의 절차를 밟았어야 했는데 분명히 잘못됐다. 이렇게 운영하면 안 된다”며 김 대표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서 최고위원은 “어떤 개혁을 할지 지켜볼 것이다. 당내 큰 불화를 가져오는 그런 위원회가 되지 않길 바란다”며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친박 핵심들이 세 결집에 나서는 듯한 움직임도 관심거리다. 이들은 ‘국가경쟁력강화포럼’ 활동을 재개하며 반격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11월 중순 유기준·윤상현·홍문종 의원 등 친박계가 만든 이 포럼은 7월 전당대회와 재·보궐 선거, 세월호 정국 등이 겹치면서 잠시 주춤했었다. 이들은 친박계 의원을 추가로 영입하는 등 몸집 불리기에도 나선다는 전략이다. 포럼 소속 홍문종 의원은 조만간 친박 의원을 주축으로 한 별도의 통일·경제 연구 모임을 결성할 것으로도 알려졌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친박이 돌파구를 마련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룬다. 우선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좌장’이 눈에 띄지 않는다. 서 최고위원의 경우 전당대회에서 김 대표에게 패한 후 정치적 타격을 입었고, 7·30 재보선에서 당선된 이정현 최고위원은 친박을 아우르기엔 아직 ‘체급’이 낮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박근혜 정부 초기 원내대표를 맡았던 최경환 의원의 경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라는 점에서 당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친박에 대선주자가 없다는 게 약점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윤호석 정치평론가는 “비박의 경우 김무성 대표를 비롯해 김문수 위원장 등 대선주자들이 있다. 그런데 친박은 박 대통령 이후 잠룡이 없다. 결국 정치는 인물 싸움이라는 측면에서 향후 당 주도권은 대선주자가 있는 비박계가 유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점쳤다. 이는 몇몇 친박 의원들이 외부에서 유력 인사들을 영입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맞물리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 ‘탈박’ 현상 가속화는 친박 핵심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지난 총선에서 친박 몫으로 공천을 받아 당선된 초선 의원들 중에서 “나는 무대(김무성)계”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친박 핵심 의원실 관계자는 “김 대표 힘이 워낙 세지면서 세력의 균형추가 급격하게 기울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대놓고 친박이라고 할 의원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친박 해체는) 시간문제라는 말이 많다”면서 “지금은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도 위기를 뚫고나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