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성기노 취재2팀장, 박민정 기자, 서윤심 기자]
눈만 뜨면 새로운 걸그룹이 생겨나는 탓에 설문대상에 포함시킬 10팀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선 인지도가 높아 몰표를 받을 수 있는 걸그룹 2세대인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은 투표에서 제외시켰다. 이후 팬클럽 규모, 음악프로그램 순위,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등을 바탕으로 최근 크게 주목을 받았거나 떠오르는 신인으로 거론되는 10팀(씨스타, 걸스데이, 미쓰에이, 에이핑크, 포미닛, 시크릿, 레인보우, AOA, 스피카, 나인뮤지스)을 선정했다.
“가장 좋아하는 걸그룹은 누구입니까.”
3050 아저씨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그룹은 씨스타였다. 응답자 중 37.1%가 씨스타가 가장 좋다고 답했는데 모든 연령층에서 고른 득표율을 보였다. MBC 예능프로그램 ‘진짜사나이’로 뜬 혜리가 소속된 걸스데이(2위 19.7%)와도 상당한 격차를 보여 ‘대세’임을 인정받았다.
3050 삼촌팬이 가장 좋아하는 걸그룹으로 꼽은 씨스타(37.1%). 2위 걸스데이(19.7%)와도 상당한 격차를 보여 대세임을 입증했다. 구윤성 기자
씨스타의 인기 원천은 뛰어난 가창력과 따라올 수 없는 섹시함에 있었다. 가장 가창력이 뛰어난 걸그룹을 묻는 질문에서도 씨스타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4.5%를 기록한 것. 씨스타는 올 여름 ‘TOUCH MY BODY’에 이어 ‘I Swear’를 잇달아 발매해 음원차트를 장악했으며 특히 멤버 효린과 소유의 개인 활동 곡들이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가창력이 뛰어난 걸그룹 1위로도 선정된 것으로 해석된다. 가창력 부분에서만큼은 씨스타를 제외한 나머지 걸그룹(걸스데이 11.7%, 미쓰에이 8.4%, 포미닛 5.8%, 에이핑크 4.9%, 스피카 4.6% 순)은 비슷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섹시함 역시 씨스타의 압승이었다. 요즘 걸그룹들은 대부분 섹시를 콘셉트로 잡고 대담한 댄스로 승부를 내는 경우가 많다. ‘섹시’가 남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고전적이지만 가장 확실한 마케팅 전략이기 때문이다. ‘섹시’가 걸그룹의 인기도를 좌우하는 일종의 척도가 되었다. 여론조사 결과 씨스타는 걸그룹 인기도의 주요기준인 ‘섹시’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걸스데이. 연합뉴스
그렇다고 씨스타의 완벽한 독주는 아니었다. 걸스데이는 유일하게 씨스타의 아성을 위협하는 걸그룹으로, 이번 조사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다. 가장 예쁜 외모의 걸그룹을 뽑은 조사에서 걸스데이(23.6%)는 씨스타(2위 18.8%)를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최근 MBC <진짜 사나이>에 출연해 섹시댄스와 애교로 남자들의 애간장을 태운 혜리, <우리 결혼 했어요>에서 상큼하면서도 털털한 매력을 내뿜고 있는 유라 등 예능 프로그램을 종횡무진하며 아저씨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덕분이다. 다만 30대에서는 걸스데이(15.4%)가 씨스타(24.8%)와 에이핑크(18.0%)보다 낮은 순위를 기록, ‘젊은 아저씨’를 사로잡기엔 역부족임이 드러났다.
MBC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에 출연한 걸스데이 혜리가 퇴소식 앙탈 애교로 큰 화제를 낳았다. 사진출처=MBC ‘진짜사나이’ 여군특집 캡처
남자 아이돌에게 대시를 많이 받았을 것 같은 걸그룹 역시 걸스데이(23.6%)였다. 가요계에서 열애설은 걸그룹의 무덤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걸스데이는 16살 나이차를 극복하고 가수 토니 안과 교제했던 혜리와 축구선수 손흥민과 좋은 감정을 키워가고 있다는 민아까지, 걸스데이는 열애설로 크는 그룹이라는 말이 따라다닐 정도로 자주 구설수에 올랐다. 유명 연예인들이 인기가 시들해질 때쯤 가끔 열애설을 터뜨려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전략처럼 걸스데이는 열애설을 인기 마케팅의 한 포인트로 잡았다고 할 수 있다.
특별취재팀
과천·여의도 현장 투표 해프닝 “너 땜에 소주도 갈아타…” 효린 투표 후 ‘인증샷’ <일요신문>은 걸그룹 인기도 조사에서 여론조사에만 의존하지 않고 현장의 목소리도 직접 들어보았다. 온라인 서베이가 대면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중년남성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도 함께 담아보았다. 과천의 공무원들과 여의도 증권맨들에게 걸그룹에 대한 인기도를 조사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걸그룹의 사진을 보자마자 삼삼오오 모여 즉석 ‘평가회’가 벌어졌고, 급기야 직장인들의 유일한 낙이라는 점심시간마저 뒤로 미루고 줄을 서서 투표에 참여하는 열의도 보여주었다. 지난 1일 서울 여의도와 경기 정부과천청사 주변에서 진행된 걸그룹 인기도 설문조사는 점심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600여명 분의 스티커가 동이 났을 정도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현장 투표는 경기 정부과천청사 주변과 서울 여의도에서 진행됐다. 지난 1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투표는 불과 2시간도 지나지 않아 600여 명이 참여해 걸그룹의 폭발적인 인기를 실감케 했다. 진행은 온라인 여론조사처럼 10개 걸그룹을 대상으로 ‘가장 좋아하는 걸그룹’ ‘가장 가창력이 뛰어난 걸그룹’ ‘가장 예쁜 걸그룹’ ‘가장 섹시한 걸그룹’ ‘남자아이돌에게 가장 많은 대시를 받았을 것 같은 걸그룹’에 스티커를 붙이는 방식이었다. 시작부터 몰려드는 아저씨들로 현장은 북새통을 이뤘지만 마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방불케 하는 진지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거 은근히 고민하게 되네.” 스티커 5장을 들고 고민하던 한 40대 증권맨의 중얼거림에 주변사람들 모두 일제히 고개를 끄덕거리다 서로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뭐라고” “일도 이렇게 열심히는 안 한다” “마누라 보면 죽겠다” “아이고 어렵다”는 등의 온갖 탄식도 흘러나왔다. 자신의 걸그룹 최신정보를 은근히 자랑하는 아저씨들도 있었다. 정오가 지나자 ‘가장 좋아하는 걸그룹’은 씨스타와 걸스데이의 양자대결 구도가 펼쳐졌다. “대세는 혜리다. ‘아앙’ 한 방이면 다 쓰러진다”며 질문불문 걸스데이에 몰표를 던지고 떠난 30대 공무원에 이어 “노래 잘 하고 몸매 죽이고 뭘 더 바라냐”며 씨스타 열혈팬을 자처한 50대 증권맨까지 팬들의 기싸움도 팽팽했다. 결과는 씨스타(34.4%)의 승리. 여의도에서는 두 걸그룹의 인기가 비슷했으나 과천 공무원들은 걸스데이(38.4%)보다 씨스타(61.6%)를 택했다. 걸스데이의 저력은 ‘가장 예쁜 걸그룹’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총 214표를 얻은 걸스데이(36.8%)는 2등인 에이핑크(19.3%)와도 상당한 격차를 보이며 걸그룹 최고 미모를 뽐냈다. 흰머리가 희끗한 한 40대 증권맨은 “다른 걸그룹은 아무도 모르는데 걸스데이는 안다. 옆트임 치마 입고 손가락으로 쓱 쓸어 올리면 절로 침이 넘어간다. 못 생긴 멤버가 없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반면 좋아하는 걸그룹 조사에서 유일하게 200표를 넘긴 씨스타는 고작 12.9%를 얻어 3등으로 밀려났다. 여론조사와 현장조사의 차이가 여기에서 발견됐다. “내가 씨스타를 좋아하긴 하지만 외모가 아닌 건 안다”며 걸스데이를 찍은 40대 공무원의 한숨이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미모에서 밀린 씨스타의 자존심은 섹시함과 가창력에서 회복했다. 가장 섹시한 걸그룹을 묻는 질문에 씨스타는 44%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걸스데이와 AOA가 10.2%, 9.8%로 뒤를 이었으나 씨스타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빨리 밥 먹으러 가자”는 직장동료들의 성화를 뿌리치고 여론조사에 참여한 한 증권사 대리는 “효린이 소주 들고 춤추는 거 보고 반했다. 못생겼는데 섹시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효린이 때문에 소주도 갈아탔다”며 투표 ‘인증샷’까지 찍은 뒤 자리를 떴다. 가창력 역시 씨스타의 독주였다. 과천 193표, 여의도 156표로 몰표를 받으며 전체 응답자의 74%의 지지를 받으며 당당히 1등을 차지한 것. 2위 미쓰에이가 4.9%에 그친 것에 비하면 엄청난 득표율이었다. 모든 질문에서 상위권을 기록하던 걸스데이는 가창력에서 만큼은 하위권(6위)으로 밀려났다. 남자아이돌에게 대시를 많이 받았을 것 같은 걸그룹을 묻는 질문은 아저씨들을 괴롭게 했다. 여사원들에게 이사님이라 불리는 한 증권맨은 기자가 고민하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나도 어릴 땐 얼굴만 봤던 거 같은데 나이를 먹으니 진짜 예쁜 게 뭔지 알겠더라고. 하하하.” 장고 끝에 ‘이사님’은 결국 걸스데이에게 한 표를 던졌다. “내가 씨스타 팬이긴 하지만 남자아이돌 타입은 아냐”라는 단호한 평가와 함께 말이다. 결과도 41.4%의 선택을 받은 걸스데이가 1등을 차지했다. 씨스타도 2위에 이름을 올리며 겨우 체면을 차렸지만 득표수는 걸스데이의 3분의 1도 미치지 못하는 12%에 그쳤다. 크고 작은 소란 속에 준비해간 600여명 분의 스티커는 점심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동이 나고 말았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30대 공무원은 “AOA에게 꼭 투표를 해야 한다”며 비상용으로 챙겨왔던 스티커를 모아 투표를 하기도 했다. “초아가 너무 좋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던 그는 “우리 AOA 좀 잘 써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오늘 처음 웃었다. 간만에 재밌다”며 동료와 점심을 먹으러 가던 공무원, “엄청 적극적이구만. 일을 그렇게 해라”며 여자동료의 구박에도 꿋꿋하게 스티커 5장을 모두 붙이던 증권맨, 걸그룹 앞에서는 체면도 없던 부장 과장 이사 팀장님들까지. 걸그룹은 아저씨들의 진정한 오아시스였다. [박]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