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상당히 유치한 영화다. 홍콩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주윤발이 출연하고 요즘 홍콩에서 제일 잘 나가는 배우 가운데 한 명인 사정봉이 출연하는 영화지만, 이 영화는 요즘이 아닌 80~90년대 홍콩 영화에 더 가깝다. 당시 홍콩 영화에 자주 등장한 장르인 도박을 소재로 한 영화인 데다 영화의 정서와 연출 방식, 그리고 배우의 연기까지 모두 80~90년대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당시의 유치한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 든 데다 당시 분위기를 더욱 배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더 유치하게 만든 경향이 짙다.
<도신-정전자> <지존무상> 등의 영화를 통해 80~90년대 최고의 도박 영화를 여러 편 만든 왕정 감독에 대한 오마쥬로 보이는 장면도 자주 등장하는 데, 알고 보니 이 영화의 감독 역시 왕정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를 오마주한 영화다. 아니 2014년의 왕정이 20여 년 전의 왕정을 오마주한 영화랄까. 홍콩 원제 <賭城風雲>, 영어 제목은 <From Vegas to Macau>, 그리고 한국 개봉 제목은 <주윤발의 도성풍운>이다. 러닝타임은 94 분.
왕정 감독이 연출한 <도신-정전자> 시리즈와 <지존무상> <지존계상> 등은 홍콩 영화를 대표하는 도박 영화다. 과거의 그는 비장함이 묻어나면서도 코믹하고, 도박이라는 소재를 활용해 극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도박이 소재인 만큼 도박을 활용해 스토리를 풀어나가며 반전까지 선보인 당시 왕정 감독의 영화는 지금 봐도 손색이 없는 명작이다.
다만 이번 <주윤발의 도성풍운>은 그 정도 수준에 범접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빼어는 도박 실력을 갖춘 주윤발이 등장하지만 그가 한 판 승부로 적들과 대결하는 구도는 아니다. 대신 카드를 무기로 활용해 적들을 제압한다. 이 영화에서 도박은 영화의 중심이 아닌 하나의 소재로 쓰일 뿐이다.
대신 영화는 코미디에 집중한다. 조금은 유치한 설정의 코미디도 많지만 이는 홍콩 영화 특유의 유치함이다. 그러다 보니 홍콩 영화 마니아들은 옛 생각에 젖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길 수 있는 영화지만 그런 홍콩 영화 본연의 코미디를 유치하다고 여기는 관객들에겐 이번에도 역시 유치함에 한숨을 내쉴 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에선 <도신-정전자>에서 초콜릿을 좋아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도신 주윤발이 등장해 큰 웃음을 준다. <도신-정전자>의 주윤발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큰 웃음을 터트리겠지만 모르는 이들에겐 ‘저건 또 뭐야?’라는 반응을 유발할 뿐이다. 따라서 평소 홍콩 영화에 열광했던 기억이 있고 80~90년대 홍콩 영화 전성기에 향수를 가진 이들 입장에선 유치함마저 추억으로 받아들이며 즐길 수 있는 영화겠지만, 당시의 정서를 모르는 이들에겐 너무 유치한 3류 코미디로 여겨질 지도 모르는 영화다.
@ 줄거리
벤츠(허소웅 분)와 그의 아들 쿨(사정봉 분), 쿨의 사촌인 칼(두문택 분) 등은 ‘암흑계의 로빈후드’ 내지는 ‘정의의 사도’로 불린다. 악덕 사채업자 등을 혼내줘 그들에게 고통 받는 이들을 돕는 일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번 돈은 쿨의 어머니 병원비로 사용하고 있다.
마법의 손이라 불리는 도박계의 신, 켄(주윤발 분)은 벤츠와 오랜 친구 관계다. 오랜 미국 생황을 정리하고 마카오로 온 켄은 자신의 생일 파티에 벤츠와 그의 가족을 초대한다. 그 과정에서 켄의 딸은 쿨에게 호감을 보인다.
켄의 생일파티를 다녀온 벤츠 가족은 커다란 위기에 직면한다. 쿨과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는 다른 형인 라이오넬 때문이다. 라이오넬은 세계 최대 자금세탁 조직의 보스 고 회장에게 침투해 있는 경찰 스파이다. 고 회장의 범죄를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를 입수한 라이오넬은 스파이라는 사실이 들통 나지만 겨우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결정적인 증거를 의붓아버지인 벤츠의 집에 몰래 숨기지만 결국 고 회장 일행에게 붙잡혀 죽고 만다.
고 회장 측은 증거를 찾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그 과정에서 라이오델이 의붓아버지인 벤츠의 집에 들fms 정황을 포착한다. 그러자 증거를 되찾기 위하 벤츠를 붙잡아 심한 고문을 가한다. 이 과정에서 벤츠는 결국 정신병까지 얻게 된다.
결국 켄이 나선다. 오랜 친구 벤츠를 위해 나선 켄은 그의 아들 쿨, 그리고 조카 칼 등과 함께 고 회장과의 한 판 승부를 준비한다. 그 뒤에는 고 회장을 잡기 위해 나선 중국 경찰과 홍콩 경찰, 그리고 마카오 경찰도 있다. 과연 이들은 고 회장을 잡을 수 있을까.
@ 배틀M이 추천 ‘초이스 기준’ : 홍콩 영화 마니아라면 클릭
이 영화는 절대적으로 홍콩 영화 마니아에게만 추천한다. 왕정 감독의 팬이라면 더욱 그렇다. 다만 과거 전성기 시절의 홍콩 영화를 기대하면 안 된다. 왕정 감독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다소 많이 허접하고 유치하기도 하다. 다만 과거 홍콩 영화를 떠올리며 킬링타임용으로 보기엔 그냥저냥 재밌게 볼 만한 영화다. 학창시절 홍콩 영화 마니아였던 필자는 매우 재밌게 봤다. 영화도 영화지만 추억을 되살릴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었기 때문이다.
@ 배틀M 추천 ‘다운로드 가격’ : 1000 원
앞서 언급했듯이 80~90년대 홍콩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다운로드 가격도 0다. 나중에 언젠가 케이블 채널에서 공짜로 볼 기회가 있더라고 한 번쯤 볼만 하다고 추천하기 어려운 수준의 영화다. 다만 과거 홍콩 영화를 좋아했던 마니아라면 1000원 정도의 값어치는 충분히 갖고 있는 영화라고 추천할 만하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