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27일 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 참가자들이 청계광장에 모여있다. 10대 위주였던 시위 참가자들이 20~30대로 바뀌면서 국민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특히 주말인 지난달 31일에는 청와대 진출을 시도하며 밤샘시위를 벌이는 시민들과 물대포를 동원한 경찰이 충돌, 많은 부상자와 연행자를 낳기도 했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정부 여당도 성난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한 묘안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러나 당초 당국이 배후설 음모설 등을 내세우며 어설픈 대응을 하는 과정에서 사태를 키웠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고개를 들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은 “정부가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입을 모은다.
<일요신문>은 촛불시위의 실상을 알아보기 위해 시위현장에서 직접 시민의 소리를 들어보았다.
누가 불 지폈나
촛불문화제가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정부는 시위가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문화제는 인정하되 거리 시위에는 강경 대처한다”는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만 반복했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한술 더 떠 “숫자가 얼마가 되든 불법시위자는 모두 구속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또 경찰은 “몇몇 단체들이 선동한다”며 배후를 찾기 위해 수사망을 좁혀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 양상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참가자 수는 늘어나기 시작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선전홍보팀 김진일 씨(35)는 “자발적인 시위에 경찰이 구시대적 대응을 함으로써 촛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와 경찰은 촛불집회가 괴담과 선동에 의해 정치성을 띤 시위로 번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과거의 폭력적인 시위대 진압 동영상인 일명 ‘백골단 동영상’이 최근 촛불시위 진압상황인 양 인터넷에 올려진 것을 두고 최근 시위가 선동에 의한 것임을 반증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경찰관계자는 또 “재수생으로부터 시작된 ‘5·17 동맹 휴업’ 문자 메시지도 촛불집회가 괴담 때문에 번지고 있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괴담이 시민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정부와 경찰 측 주장에 대해 국민대책회의 관계자는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그런 괴담은 촛불시위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이 거리로 진출한 것은 15일 넘게 촛불을 들고 목소리를 냈지만 이것으로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고 시위자들이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첫 가두시위가 시작된 5월 25일의 상황은 경찰의 주장과는 많이 달랐다. 국민대책회의는 9시 30분경 촛불문화제를 끝내고 철수했으나 시민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당시 시위에 참가한 회사원 박 아무개 씨(39)는 “문화제가 끝나고 시민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누군가 “시청으로 가자!”고 외쳤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따로 지휘부가 없었기 때문에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서 행진을 했다. 경찰이 시위대를 막지 못한 것은 그렇게 제각각으로 행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후 다음날 새벽 경찰의 전격 연행이 시작되자 시민들이 더욱 분노하게 됐다는 게 참가자들의 주장이다.
결국 이날 이후 거리 시위는 매일 벌어졌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숫자는 줄지 않았으며 정부가 ‘장관 고시’를 한 이후 더욱 늘어났다.
진화하는 시위
시위 참가자들은 보수 언론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보도를 하고 있다며 질타하고 있다. 시위대는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청계광장 바로 옆의 <동아일보> 사옥을 향해 “불 꺼라!”라고 연호하기도 했다. 또 인터넷에서는 <조선일보>에 게재된 광고주들의 명단을 공개하면서 불매운동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 지난 31일 밤 경찰 연행 과정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실신해 구급차로 이송되고 있다. 아래쪽은 1일 새벽 효자로에서 물대포를 쏘는 경찰과 대치 중인 촛불시위 참가자들. 연합뉴스. | ||
보수적인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대응은 문화제나 시위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잘 나타내주는 대목이다.
경찰의 연행에 대한 시위자들의 대응도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스스로 연행을 당하는가 하면 경찰 호송차로 연행되어 경찰서에서 다음날 조사받는 과정까지를 “경찰이 제공하는 국민을 위한 무박 2일 닭장투어”라고 패러디하기도 한다.
수원에서 온 중년의 참가자는 스스로 경찰 호송 버스에 올라타며 “이 시대가 이걸 원한다면 가야지 뭐”라고 얘기한 후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또 인터넷에는 경찰에 연행되었을 때 민주화변호사협회에 전화를 걸거나 묵비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등의 ‘체포 매뉴얼’이 돌아다니기도 한다. 국민대책회의 관계자는 “시민들은 경찰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의 행위가 당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시위 현장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기도 한다. 시민단체의 인터넷 방송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인터넷 생중계를 하는 시민 참가자들도 많다. 또 인터넷 게시판이나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현장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경찰도 달라진 시위 양상 때문에 난감할 때가 많다. 배후 조직을 밝히기 위해 연행한 시위 참가자들에게 경찰이 “어느 단체 소속이냐, 다음 아고라냐? 디시인사이드냐?”라고 묻기도 한다는 것. 이와 같은 질문을 받은 시위 참가자들은 ‘다음 아고라’를 단체라고 할 수 있는지 갸웃거리다 실소를 금치 못한다고 한다.
새로운 풍속도
‘장관 고시’가 발표된 5월 29일. 이날은 3만~4만 명(경찰 추산은 1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서울광장에 운집했다. 문화제가 끝나자 을지로 쪽으로 행진이 시작되었다. 따로 지휘부가 없는 시위대는 경찰버스가 길목을 막지 않는 곳이면 어디든 누비고 다녔다.
처음 문화제는 10대가 주도했다. 이날도 곳곳에서 여고생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서울 목동에서 온 여고생 강 아무개 양(17)은 “학교에서 시위에 참가하지 말라고 하지만 교과서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적혀 있다”라며 자신의 입장을 당당하게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시위 자체보다는 일상에서 벗어난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청소년들도 더러 있다. 경기도 일산에서 왔다는 손 아무개 양(15)은 “쇠고기협상에 반대하지만 사람들 보러 나온 점도 있다. 거리를 마음껏 활보하니까 신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