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에서 교회 장로로 일하며 신앙 활동에 매진해 온 조 아무개 씨(52)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전주 A교회를 중심으로 선교 사업에 매진하면서 기독청장년면려회(CE) 회장 후보로 출마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교회가 진행하는 연주회 등 각종 사업에 발벗고 뛰어드는 열의도 보였다.
2008년에는 사단법인 한민족세계선교원이 주최하고 한민대학교 등이 주관한 ‘국제 할렐루야드 대회’ 사무국장을 맡아 행사를 치러내기도 했다. 구소련을 해체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83)와 인기 아이돌 그룹이 참석하는 등 상당한 규모를 자랑한 행사였다.
문제는 내세울 만한 학력도, 기술도 없던 그가 호구지책에는 무심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특별한 직장 없이 일용직 등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 왔다. 부인과 두 딸을 가진 가장이었던 그는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할 돈을 마련해야 했다. 문제는 그 방법이 ‘사기’였다는 데에 있었다.
여러 해 동안 선교 활동에 매진해 왔던 그는 남을 홀리게 하는 ‘말솜씨’만큼은 부족하지 않았다. 교회 내에서 상당한 신망을 얻고 있던 조 씨는 지난 2007년 같은 교회 소속으로 알고 지내던 교인에게 접근했다.
“현대자동차에 내가 잘 알고 있는 분이 계신데, 댁의 아들을 취업시켜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지. 근데 그러려면 인사비가 좀 필요한데….”
그렇다고 조 씨가 실제로 현대차에 아는 사람이 있다거나,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취업을 시켜줄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피해자 남 아무개 씨는 같은 해 10월 조 씨에게 “취업을 꼭 시켜달라”는 부탁과 함께 현금 5500만 원을 건넸다.
세치 혀로 순식간에 수천만 원의 목돈을 만지게 된 조 씨는 ‘이거다’ 싶었다. 2년 뒤인 2009년, 조 씨는 취업을 앞둔 아들을 둔 지인 진 아무개 씨(여)에게 접근해 “힘 있는 사람에게 부탁해 당신 아들이 D 중학교 교사로 채용될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1억 원을 요구했다. 진 씨가 의심하자 “만약 취직되지 않으면 그깟 돈 모두 돌려주겠다”며 호언장담했다. 조 씨의 사탕발림에 넘어간 진씨는 7000만 원을 건넸지만 당연히 취업이 됐을 리 없다.
조 씨의 행적은 점점 더 과감해지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이 접하기 어려운 ‘윗선’을 알고 있다는 거드름만으로 사람들이 술술 넘어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이듬해 조 씨는 자신이 살던 전라북도의 가장 ‘높은 분’을 내세워 비슷한 사기를 쳤다. 2010년 8월 조 씨는 전북 전주시 한 음식점에서 피해자 문 아무개 씨를 만나 “전북도청 비서실에 내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 도청 9급 별정직에 아들을 취직시켜 주겠다”고 말해 3000만 원을 받아냈다. 취업이 되지 않아 항의를 받자 되레 “외교부장관 딸 특채사건 때문에 특채가 쉽지 않다”며 2000만 원을 더 줘야 취업이 가능하다고 또 한번 사기를 치기도 했다.
수차례 사기를 치면서 고소를 당한 조 씨는 결국 사기죄로 재판을 받게 됐다. 2013년 두 건의 사기로 재판을 받게 된 조 씨는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전주를 떠나 경기도 부천으로 이사를 온 조 씨는 또 한 번의 사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실 준비랄 것도 없이, 그저 만난 사람을 눈앞에서 속여넘기기만 하면 되는 수준의 사기였다.
지금껏 남들을 취업시켜주겠다며 돈을 뜯어냈던 조 씨는 ‘이럴 바엔 내가 직접 취업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열심히 취업을 준비했지만 이력도, 학력도, 나이도 내세울 것이 없던 조 씨로서는 정상적으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자신이 없었다.
조 씨는 2013년 7월 인터넷을 검색해 대우건설 사장실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전화를 걸었다.
“나는 청와대 총무비서관 이재만입니다. 조 장로를 보낼 테니 취업을 시켜주시면 좋겠습니다. 내일 3시에 보내겠습니다”고 말했다. 태연한 연기에 속아넘어간 박영식 당시 대우건설 사장은 다음날 자신을 찾아온 조 씨를 만나 면접을 봤다. 조 씨는 한국신학대학에서 학·석사를 따고 한민대학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고 속였다.
대우그룹 해체 후 기업의 생사를 위해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대우건설로서는 비선 실세로 알려진 이 비서관(실제로는 조 씨)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회사 지분 50.75%를 차지하고 있는 대우건설은 사실상 ‘정부 소유’라는 인식이 널리 퍼진 회사다.
이런 이유로 조 씨는 별 어려움 없이 손쉽게 대우건설 사무직종 부장급으로 채용됐다. 대기업이 얼마나 권력의 눈치를 보는지 알 수 있는 황당한 대목이다. 자세한 조사도 하지 않고 오로지 ‘이재만’이라는 이름 석 자에 대기업의 공신력이 무장해제당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조직 생활에 어려움을 겪은 조 씨는 맡은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데다 회사로부터도 ‘실세의 추천으로 왔는데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눈치를 받았다. 결국 회사의 간접적 압박을 받은 조 씨는 이듬해인 올해 7월 사표를 내고 회사를 나왔다.
조 씨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이같은 방식이 통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 이번에는 공기업인 KT를 두드려보기로 했다. 조 씨는 8월 휴대전화로 KT 회장실에 전화를 걸었다. 황창규 KT 회장과 통화한 조 씨는 같은 방식으로 취업을 요청했다. 이번에는 범죄의 완벽성을 기하기 위해 주변을 수소문해 이재만 비서관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낸 뒤 이와 비슷한 번호로 휴대전화를 개통해 사용하기까지 했다.
조 씨는 “나는 VIP(박근혜 대통령)의 대통령 선거 때 비선조직으로 활동한 사람”이라며 “10여 년 전부터 VIP를 도와왔고 본인 집에도 방문한 적이 있다. 지금도 VIP를 한 달에 1~2번 면담하고 직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정부 산하기관 기관장이나 감사로도 갈 수 있지만, 회사에 취업하고 싶어 KT로 온 것”이라고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조 씨의 사기 행각은 이를 수상히 여긴 황 회장이 취업절차를 진행하는 한편 청와대 비서실에 조 씨의 신분확인을 하면서 끝을 맺었다. “조 씨를 모른다”는 청와대 답변을 받은 KT는 조 씨를 청와대에 신고했고, 결국 지난달 17일 경찰에 체포돼 구속됐다.
경찰에서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2부(임관혁 부장검사)는 지난 1일 청와대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사칭해 대우건설과 KT에서 취업을 시도한 혐의(업무방해)로 조 씨(52)를 구속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사기를 친 것은 맞는데, 월급을 받으면서 일을 했으니 돈만 가로챈 사기라고는 볼 수 없다”며 사기죄 대신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이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조 씨의 사기가 권력에 민감한 재계와 이를 이용한 정치권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 촌극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비선 조직인 이른바 ‘만만회’(박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씨, 이재만 비서관, 비공식 비서실장으로 알려진 정윤회 씨) 중 하나인 이 비서관의 이름을 대자 굴지의 기업들이 제대로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알아서 ‘줄’을 선 것이다.
단순 사기범의 범행이 청와대 비난으로 확산되는 지경에 이르자 경찰과 검찰은 사태 확산을 수습하는 데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은 곧장 “조 씨는 이 비서관과 일면식도 없다”고 해명했고 검찰은 “그냥 단순한 사기꾼 얘기일 뿐이다. 공직자 사칭 사기사건일 뿐인데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했다.
조정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