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공안부 수사관들은 레스토랑 점원, 도로 공사 인부, 연인 등으로 위장해 다른 나라 정보기관원을 추적한다. 사진은 영화 <스파이>의 한 장면.
도쿄 오다이바에서 열린 기술 전시회. 최첨단 기술을 선보이고, 해외 판로도 개척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기술자 A는 바이어들을 상대로 자사 제품 설명에 열을 올렸다. 이때 견학을 온 중국인 남성이 A에게 말을 건넨다. “저는 무역업에 종사하는 사람입니다. 정말 대단한 기술이군요. 꼭 우리나라 기업에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다시 중국인 남성을 만난 A는 자신이 중심이 돼 개발한 상품의 비화를 들려줬다. 그러자 중국인 남성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평소 회사 처우에 불만이 많았던 A는 모처럼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나 뿌듯해졌다. “상품 설명서를 가져가도 될까요?” 한껏 들뜬 A는 잠시 머뭇거리다 “좋습니다. 이미 공개된 것이니…”라고 대답해버린다. 남성은 답례로 백화점 상품권을 내밀었다. 안 그래도 생활비에 쪼들렸던 A는 ‘소액이니 괜찮겠지’하며 별 의심 없이 받는다.
친목이 더 두터워지고 사례금액은 점점 올라갔다. 어느 순간 A는 ‘그가 산업스파이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지만, 남성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중일 양국의 우호를 다지는 일이에요. 민간차원의 이러한 교류가 중요합니다. 다음엔 내가 당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가져오겠습니다.” A의 마음속에서 어렴풋한 죄책감이 사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A는 미공개 제품 설계도까지 제공하기 이른다.
위의 사례처럼 모르는 사이 중국으로 핵심기술을 유출당하는 일본기업이 늘고 있다. 이와 관련, <주간겐다이>는 “최근 중국 정보기관이 주력하는 분야가 바로 산업스파이”라고 보도했다. 물론 국가적 기밀정보를 노리는 첩보원도 존재하나 항공 및 로켓 기술, 신칸센, 원전 등의 관련기업에도 중국 정보기관이 활발하게 공작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물과 공기를 정화하는 환경기술이나 야채공장 같은 최신 농업기술을 보유한 기업도 ‘노림의 대상’이 된다. 특히 이러한 기술은 산업보안 시스템이 미비한 중소기업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핵심기술을 훔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실정이다.
<주간겐다이>는 “중국의 목적은 이렇게 훔친 핵심기술을 자국의 기술로 홍보해 아프리카나 중남미 등 특허권리 의식이 낮은 개발도상국에 싸게 파는 것”이라면서 “최근 중국은 자금과 기술 제공을 앞세워 아프리카 국가들의 대형 공공사업을 계속 따내고 있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만약 신칸센과 원전 기술을 중국이 확보하면 무엇이 가능할까. 우선 신칸센을 화물로 이용해 우라늄 광산과 원전을 묶는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 건설에서 운영까지 돈을 전부 벌어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자원이 풍부한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더욱 커지게 된다. 이미 중국은 아프리카 최대 우라늄 광산인 나미비아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통계에 의하면, 중국 정부가 전 세계에 깔아놓은 첩보원의 숫자는 무려 1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중국 첩보망의 최대 특징은 정보기관 소속 직원뿐만 아니라 민간인 보조요원들까지 활약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중국인 첩보원 소탕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가령 러시아의 대외정보국(SVR)은 정치, 경제 등 담당이 나누어져 있고 전문 첩보원이 프로젝트를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 따라서 주의 깊게 살피면 포착이 가능하다. 그러나 중국은 일반인을 대거 활용해 거의 모든 곳에서 막대한 정보를 모은다. 오죽하면 중국 정보기관의 수법을 무엇이든 빨아들인다는 의미로 ‘청소기’에 비유할까. 게다가 친분을 내세우고, 금전 계약관계가 노출되지 않으므로 이를 파악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본에서 이들을 감시하고 쫓는 곳이 바로 경시청 공안부 외사과다. 동기들 중에서 성적이 가장 뛰어난 10%가 공안부 연수를 받으며, 그 가운데서도 단 10%만이 실제 공안부에 배속된다. ‘외사1과’가 러시아를, ‘외사2과’가 중국과 북한을, 그리고 ‘외사3과’가 국제 테러 대책을 담당한다. 수사 활동의 기본이 되는 것은 행동 확인. 다시 말해 감시 활동이다.
공안부 수사관들은 레스토랑 점원이나 도로 공사 인부 때로는 연인으로 위장해가며 몇 달 혹은 몇 년간 타국의 정보기관원을 추적하고, 비밀 정보교환의 증거를 잡는다. 상대를 미행하거나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는 건 기본. 만약 그가 휴대전화로 통화를 한다면 번호까지 보고 있다. 첩보원들 세계에서는 ‘공안에게 한번 찍히면 발가벗겨진다’라는 말이 떠돌 정도다.
하지만 상대방이 외국 정보기관의 전문 첩보원일 땐 행동 확보가 쉽지 않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미행당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체크포인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위에는 항상 ‘방위(防衛)’라 불리는 동료가 미행자를 체크하고 있거나, 일부러 종이를 떨어뜨려 누군가 줍는지를 확인한다. 일종의 스파이들의 점검 기술이다. 더욱이 진술이 진보함에 따라 첩보원이 직접 접선하지 않아도, 블루투스 통신을 이용한다거나 문서를 심층 암호화하여 숨기는 기술 ‘스테가노그래피’가 활용되기 시작해 첩보 활동의 증거를 잡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공안부 역시 다양한 첨단기술로 맞불을 놓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얼굴 인식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것이다. 최근 공안부는 공항과 공공 교통기관에 요주의 인물이 다닐 경우 경고를 발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시행 중이다.
화제의 책 <하이노리>의 저자 다케우치는 “경제대국 일본에는 산업스파이는 물론 자위대 정보를 취하려는 간첩들이 활동한다. 또 외교에서는 미국과의 견고한 동맹으로 인해 일본을 통해 미국의 군사정보를 얻으려는 세계 각국의 스파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회는 첩보원에 대한 경계 태세가 매우 낮다. 일본은 스파이들의 천국인 셈이다”고 전하며 “방첩의식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