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진회’에 가입한 청소년들은 평생 어둠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조폭을 다룬 영화 <비열한 거리>의 한 장면. | ||
정부에서는 특별대책을 마련하고 학교와의 협의를 통해 지속적인 단속을 하겠다고 몇 차례 밝혔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다는 지적도 들린다. 이러는 사이에 우리의 아이들이 더욱더 폭력에 물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웬만한 유흥업소들마다 소위 ‘뒤’를 봐주는 ‘주먹’들이 버티고 있다. 그리고 자금세탁 및 회전의 일환으로 유흥업소를 직접 운영하는 조폭도 있다. 이런 점에서 스카우트된 주니어 조폭들 역시 제대로 인정만 받게 되면 이들 유흥업소에서 비선의 ‘과장님’으로 불리게 된다. 어른들의 세계를 그대로 모방해 갈수록 조직화·정예화되고 있는 학교폭력, 이른바 ‘주니어 조폭’들의 실상을 취재했다.
이제 그들은 ‘주니어 조폭’이라고 부를 만하다. 나이는 어리지만 그들의 행동강령은 성인 조폭들과 꼭 닮아있다. 경찰이 한 중학생 폭력조직을 수사한 결과 그들에게는 놀라운 행동강령이 있었다. 조폭들의 행동강령이야 약간의 상상력만 동원하면 뻔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지만 문제는 그들이 이제 중학생, 고등학생이라는 점에 있다. 그들은 싸움을 ‘전쟁’이라고 불렀다. 아직 청소년들이 내뱉기에는 비정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고 선배가 이를 ‘지시’하면 무조건 복종해서 싸움에 앞장서야 한다. 선배들의 경쟁 상대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기습공격’도 마다해서는 안 된다.
또한 몸가짐 역시 ‘철저하게 처세하라’고 규정해 놓고 있다. 만약 조직을 이탈하고자 할 때에는 만만치 않은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 일인당 20대씩, 총 150여 대에 이르는 선배들의 몽둥이 찜질을 감당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상층부’에서는 조직원 관리를 위해서 용돈을 지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들은 성인 폭력배들이 운영하고 있는 장례식 등지에서 심부름을 한 후 용돈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근과 채찍이 적절히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일진회를 필두로 한 청소년 폭력조직은 애초에 초등학생들에서부터 시작된다. 중·고등학교 ‘선배(?)’들은 초등학생들 중에서 싸움을 잘하는 학생들을 눈여겨 봐두었다가 중학교에 들어오면 일진회의 가입을 권유하게 된다는 것.
물론 이때에는 회유와 함께 ‘우리말을 들어야지만 학교생활이 편할 것’이라는 온갖 협박도 곁들여진다. 또한 이들은 끊임없이 왕따를 조장하면서 폭력적인 분위기를 조장, 일반학생과 폭력학생을 구분지어서 그들이 스스로 우월감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물론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신고를 하면 당연히 ‘보복폭행’이 따른다. 심지어 전학을 가도 그 학교에까지 가서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성인들 못지않은 집요함을 보여준다.
더욱 놀라운 점은 폭력 사실 등이 밝혀져서 해당 폭력학생이 퇴학을 당한 후에도 그 학생은 여전히 학교 내에 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폭력 학생들을 조종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역시 감옥에 가더라도 여전히 조폭들을 지배하고 있는 성인 조폭들의 세계와 그대로 닮아있다. 한마디로 어릴 때부터 성인 조폭의 축소판 문화를 배워 충실한 하나의 조직폭력배로 성장한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이들 주니어들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해서 점점 더 조직화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일진회끼리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어 하나의 단일한 온라인 공동체를 만드는가 하면 조직원 자체를 온라인으로 뽑기도 한다. 특히 이들은 어른들보다 인터넷에 더 능하기 때문에 성인들이 이들 커뮤니티에 접근하기는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지금은 은퇴한 전 조직폭력배 A 씨는 학생들이 성인 조폭들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은 나이가 어려서 멋모르고 날뛰지만 실제 조폭 조직원들이 보는 그들은 그저 단순한 ‘칼받이’에 불과하다. 알아서 크면 성인 조폭의 조직원이 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뒤를 돌봐주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어린 학생들의 영웅심이 가장 큰 문제다. 그리고 그것을 부추기는 것은 어른들과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한 예로 많은 영화들이 조폭을 하나의 흥밋거리로 다루고 있다. 비록 영화의 결론은 ‘권선징악’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영화 속에서 때때로 그려지는 순간 순간의 이미지는 의리가 있고 남자답다. 따라서 아직은 판단력이 미흡한 청소년들이 봤을 때 그들은 두려움 없이 살아가는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A 씨는 자신이 볼 때 학교나 국가가 내놓는 대책이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물론 학교에서 내놓는 대책이라는 것이 그럴 듯하기는 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현실에서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그것으로 보복폭력을 예방할 수도 없고 폭력 자체를 뿌리 뽑지도 못한다. 아무리 ‘피해를 당한 학생은 신고하라’고 선생들이 이야기를 해도 방과 후에 어두운 골목길에서 ‘신고하면 죽는다’라는 협박을 들으면서 또다시 폭행을 당하는 학생들이 신고하기는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학교는 학생이 전학을 가 버리면 그만이지만 오히려 주니어 조폭들은 끝까지 쫓아가 보복을 감행하기 때문에 제도적인 면만 가지고 근본적인 해결을 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실제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미 2004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후 경찰청과 교육부 이하 5개 부처는 공동으로 담화문까지 발표했었다. 학교폭력을 매년 5%씩 줄이겠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그 후 경찰청은 자체 조사를 통해 학교폭력이 위축되었으며 가해학생이 줄어드는 등 그 실효성이 입증되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해학생의 수 자체는 전국적으로 줄어들었을지 모르지만 피해학생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해학생은 줄었지만 피해학생이 늘었다는 것은 현재 주니어 조폭의 양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보다 적은 숫자가 똘똘 뭉쳐, 즉 조직화·정예화돼 더 많은 피해학생을 양산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니어 조폭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단순히 학창 시절의 문제만은 아니다. 청소년 시기에 조폭에 관련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성인이 되어서도 조폭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결손가정의 자녀들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지기 이전에 이미 세상에 대한 비관과 포기를 먼저 배움으로써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조폭문화에 자연스럽게 젖어들 수밖에 없다고 한다.
물론 학생들도 처음에는 일진회에 가입하면서 나름대로의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왕따당하는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부모님에게도 죄송스러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직 조폭문화에 완전히 물들지 않은 학생이라면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죄책감이자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다. 하지만 일단 학교와 가정으로부터 낙오되었다는 생각이 깊어지고 조폭문화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이러한 죄책감은 줄어든다고 한다.
그나마 학교가 이들의 보호막이 되어주면 나을 수 있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 체계가 완전하게 자리를 잡은 탓에 학생들 간의 서열화가 정착되었고,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평가도 성적 위주로 될 수밖에 없다. 교사들도 폭력서클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부족하다. 심지어 어떤 교사들은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학교에서 아이들이 이 사회의 온갖 악한 면을 다 배우고 있다”고 토로할 정도다.
하지만 교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일단 자신들의 학교가 문제시되면 학교 이미지에 먹칠을 하게 되는데 이는 교사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철저히 피하려고 한다는 것.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런 문제가 발생하면 쉬쉬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그것을 ‘까발려서’ 철저하게 뿌리 뽑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일단 사건이 노출되면 언론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언론에서 떠들기 시작하면 연이어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나게 된다.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이러나 저러나 피곤하고 힘들긴 마찬가지인 셈이다.
학교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단지 학교와 학생들의 문제로만 보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성인조폭들과의 연계라는 점에서 국내 조폭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성인들의 문화 자체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폭의 문제가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라고 하지만 이렇게 계속해서 방치했다가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너무 어두워질 뿐만 아니라 이는 대한민국의 미래와도 연관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구성모 헤이맨뉴스 대표 heymantoday@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