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고등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이사가 참고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감청영장에 불응하겠다”고 다시 한번 못 박았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정의당 서기호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검찰이 수사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의혹 제기를 가장한 근거 없는 폭로성 발언 △국가적 대형사건 발생 시, 사실 관계를 왜곡해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음모설 △공직자의 인격과 사생활에 대한 악의적이고 부당한 중상·비방 등의 항목이다. 지난달 16일 국무회의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어섰다”는 발언 뒤 긴급히 검찰 회의가 열린 점을 감안할 때, 방점은 세 번째에 찍혀 있다는 추정은 무리가 아니다.
검찰의 더 큰 무리수는 초법적 대응이다. 당시 회의에서 검찰은 “포털사와 핫라인을 구축해 실시간으로 유언비어, 명예훼손 관련 글을 포털사에 삭제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법적으로 온라인상 글 삭제는 포털 사이트나 검찰에서 임의적으로 하지 못한다. 정보통신망법상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포털에 시정요구를 하도록 되어 있다. 만약 검찰이 실제로 핫라인을 구축해 게시글에 대한 삭제를 요구하고, 포털이 이에 응한다면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다.
포털, 메신저 이용자들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건 검색어 색출이다. 검찰은 “유언비어, 명예훼손의 주요 타깃으로 지목된 논제를 입력·검색하겠다”는 방침을 알렸다. 또 “공적인 인물들이 2차 피해가 우려돼 고소를 주저하거나 피해확산이 우려되는 경우 고소·고발 없이도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이기에 피해 당사자의 처벌의지가 없다면 처벌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정치인, 유명인 등의 피해는 검찰이 알아서 나서서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서 의원은 “특정 검색어를 가지고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여 처벌하겠다는 것은 검찰 스스로 사법부임을 포기하고 정권의 호위무사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검찰은 논란이 커지자 지난 15일 다시 회의를 소집했다. 이날 열린 ‘사이버명예훼손 범죄 관련 유관기관 실무회의’에는 정부 관계기관만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검찰은 “사찰하려는 게 아니다”고 해명하면서도, 실시간 온라인 게시판 모니터링은 지속하겠다고 고집했다.
‘사이버 막걸리 보안법’ 논란 확대 속에 포털, 메신저 업계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음카카오 이석우 대표는 지난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달 7일 이후 감청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고 있으며, 향후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또 향후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초강수를 뒀다. 일각에서는 “실정법을 무시한 황당한 대책”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16일 서울고검 국감에서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대책 문건을 들고 질의하고 있다. 이에 앞서 서 의원은 검찰과 포털 간의 회의 내용을 처음으로 폭로했다.
16일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 대표는 이날 발언에 대해 여당의원들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영장불응은 불법임에도 이를 공공연히 밝혀 사법체계를 무시했다는 점에서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오해가 있었다면 사과한다”면서도 “지금까지는 수사기관에 협조하는 의무를 더 중요하다고 보고 보관된 메시지를 수사기관에 제공했다. 하지만 이제 법을 엄격히 해석, 감청영장에 불응하기로 결론 내렸다”고 못 박았다.
실제 법리상 ‘감청’의 범위는 현재 혹은 미래의 대화 내용으로 한정된다. 따라서 과거 대화내용만을 저장하는 모바일 메신저는 감청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소극적 범위의 해석을 적용하겠다는 말이다.
검찰의 사찰 범위에 든 건 카카오톡뿐이 아니다. 네이버 ‘밴드’와 통신사 내비게이션까지 털어 봤다는 주장이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은 지난해 철도노조 파업에 참가했던 노조원이 받은 ‘통신사실확인 자료제공요청 집행사실 통지’를 공개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가 발행한 이 통지서에 따르면 검찰은 노조원의 통화내역뿐만 아니라, 밴드 대화 상대방의 가입자 정보와 대화내용까지 요구했다.
이에 대해 네이버 밴드를 운영하고 있는 캠프모바일에서는 “조사 대상자의 로그기록만 제공했다. 대화 상대방의 정보와 대화내용은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정 의원은 “경찰이 유병언 일가 검거를 위해 유 씨의 조력자와 5회 이상 통화한 사람 430명에 대해 3개월간의 내비게이션 목적지 검색 목록을 조회했다”고 발표했다. 송치골, 송치재휴게소, 송치골가든 등 3개 키워드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던 불특정 다수의 일반 국민 모두에 대해서도 4월 19일부터 7월까지의 검색기록을 요구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사이버 공안정국’ 논란이 확대되자 진보 시민단체들은 “검열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8개 단체는 15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과 경찰은 카카오톡을 비롯한 메신저, 사이버 정보에 대한 압수수색 현황을 공개하고, 사이버 공안기구를 당장 해체하라”고 촉구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