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이 한 마디에 ‘유신의 기억’을 되살려본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대통령과 정치가 풍자와 개그의 소재로 빈번하게 쓰이는 미국 등의 나라와 달리 대통령 언급을 금기의 대상처럼 발표한 까닭이다.
소설을 현실로 확대해석해 징역을 살게 된 이도 있었다. 1981년 군 입대를 앞두고 있던 한 대학생이 입대 전 용돈이나 벌 요량으로 무협소설을 쓴 게 문제가 된 적도 있다. 소설의 제목은 <무림파천황>. 내용은 강북무림과 강남무림이 전쟁을 벌이는 게 요지다. 여기서 문제가 됐다. 강북 무림이 “남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이 남성은 징역 2년 형을 선고 받았다.
1970년에는 홧김에 한 말이 화가 된 경우도 있었다. 쪽방촌에 살던 김 아무개 씨는 철거반원들을 향해 “이 김일성이보다 못한 놈들아”라고 외쳤다. 김 씨는 ‘나쁜 김일성보다 더 나쁜 행위를 하고 있다’는 취지에서 말했지만 법원은 “북괴에서는 대한민국보다 나은 행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발언이며, 그곳에 가서 살아보겠다는 의사도 내포하는 것으로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또 88년 5월 <한겨레>의 보도에는 산에서 허공에 대고 정부 비판을 했다가 징역을 살게 된 사람의 얘기도 나온다. 88년 사면된 이복진 씨는 84년 7월 산에 갔다가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혼자 정부에 대한 불평을 했다. 이를 어떻게 알았는지 이 씨는 국보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살고, 정신분열증환자로 몰려 치료감호결정을 받아 2년 2개월 동안 교도소에 수감됐다.
한국의 중앙정보부 운영실태를 고발한 70년대 중반 한 외신은 “중정이 심지어 택시 운전자에게 손님들의 대화를 도청하도록 요구한다. 중정 요원은 교회 설교에도 비밀리에 참석해 목사의 설교를 듣고 정치적 언급이 있으면 적어 목사들을 협박한다”고 묘사했다.
술자리 도감청은 90년대까지 이어졌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안기부는 5년간 ‘미림’으로 알려진 특수도청팀을 가동해 현장 도청을 하기도 했다. 정계, 재계 등 핵심 인사들이 자주 드나드는 술집과 밥집에 도청장치를 달고 밤새 도청을 했다는 증언이 2005년경 뒤늦게 나왔다. 이들은 또 식당, 술집의 지배인과 종업원 등을 포섭해 감청 방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온라인상의 사찰이 빈번하게 이뤄졌다. 언론자유를 연구하는 사 아무개 박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PD수첩 사태 때 정부 비판적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가 댓글이 삭제되고, 사찰당하는 느낌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그 후로 비교적 보안이 보장된다는 G메일(외국계정)로 옮겨가고 가입할 때 명의도 영어이름을 썼다. 카카오톡도 쓰지 않고 페이스북만 겨우 사용한다”고 말했다. 사 박사는 “최근 들어 유신시대로 회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도자들의 마인드가 변해야 표현자유가 보장되지 않겠느냐”며 씁쓸해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