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앙숙인 두 나라가 있었다. 두 나라의 불화가 컸는데 오직 위대한 영웅만이 그들을 하나로 만들 수 있다고 전해졌다. 한 왕국에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허영 많고 탐욕스런 왕이 통치해 백성들은 항상 불만이었다. 그래서 부자인 이웃 왕국 부러워했다. 이웃 왕국 ‘무어’에는 다양한 문화와 진귀한 생명체들이 살았는데 그들은 통치자가 따로 필요 없었다. 서로 믿었기 때문이다.’
영화 <말레피센트>의 프롤로그다. 사실 ‘말레피센트’는 동화에 등장하는 마녀의 이름이다. 그 동화는 바로 우리에겐 <잠자는 숲속의 공주>로 알려진 <Sleeping Beauty>다.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던 이 동화에서 말레피센트는 막 태어난 공주에게 저주를 내리는 악녀다. ‘16살 되는 생일날, 공주가 물레 바늘에 찔려 영원히 잠들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저주를.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역대 최고의 악녀 캐릭터 말레피센트를 디즈니가 이번엔 실사 영화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선악이 극명한 원작 동화와 애니메이션에선 ‘악’의 자리에 서 있던 조연 말레피센트가 이번엔 주인공이다. 그리고 동화나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 영화인 터라 이 영화에선 선과 악을 극명하게 구분할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러하듯, 이 사람 입장에서 보면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지만 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 사람이 더 나쁜 사람일 수 있다. 각자의 사연이 얽히고설킨 곳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애니메이션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실사 영화 <말레피센트> 사이의 가장 커다란 차이다. 최근 몇 년 새 한국 영화계도 <방자전> <마담 뺑덕> 등의 영화를 통해 고전 비틀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 두 편은 모두 파격적인 베드신을 활용해 확실한 성인용 버전의 고전 동화를 만들어 낸 데 반해 <말레피센트>는 여전히 아이들이 놓아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즐겁게 볼 수 있으며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 볼 기회를 제공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어 제목은 <Maleficent>, 러닝타임은 97분이다.
이 영화는 ‘편견’에 대해 얘기한다. 원작 동화에선 악녀로 그려진 말레피센트지만 우린 그를 그냥 ‘악’으로 여길 뿐 그가 그런 참혹한 저주를 내릴 수밖에 없다는 속사정을 알려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는 세상이 악이라고 무조건 규정해 버린 존재들에 대한 우리의 편견일 지로 모른다.
또 인간의 욕심과 전쟁에 대해 얘기하고 있기도 하다. 부유한 무어 왕국을 차지하려는 인간의 욕심이 전쟁을 불렀으며 말레피센트에 대한 복수심은 결국 참혹한 저주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영화 <말리피펜트>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바로 평화다. 결국 이 영화의 결론은 서로 앙숙이던 두 왕국인 한 명의 영웅을 통해 하나의 왕국이 되는 것이다. 편견과 차별을 뛰어 넘고 욕심을 버리고 서로를 믿는 세상에서 진정한 평화가 구현된 것.
아쉬운 부분은 말레피센트 역할인 안젤리나 졸리의 분장이 너무 무시무시해 흥행 성적이 기대만큼 좋진 못했다는 점이다. 동화를 소재로 한 영화인 터라 가족 관객들이 극장을 많이 찾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무시무시한 분장의 안젤리나 졸 리가 등장하는 포스터를 본 아이들이 너무 무서워해서 극장 흥행 수입이 기대에는 조금 못 미쳤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어느 정도의 흥행은 기록했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겨울왕국>보다 훨씬 흥행 동력이 탄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전세계적인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진 못했다. 말레피센트의 무서운 분장 때문이지만 영화를 직접 보면 그가 무섭긴커녕 얼마나 사랑스러운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말레피센트의 무서운 분장으로 인해 캐스팅 과정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아역 배우들 역시 말레피센트로 분장한 안젤리나 졸리를 너무 무서워 해 오로라 공주의 아역을 맡을 배우를 찾기가 힘겨웠던 것. 결국 아무리 무서운 분장을 해도 그를 무서워하지 않는 안젤리나 졸리의 딸 비비언이 오로라 공주의 아역 역할을 맡았다.
이젠 집에서 관람할 수 있게 됐는데 아이들과 함께 봐도 충분히 좋은 영화가 아닐까 추천한다. 기왕이면 애니메이션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실사 영화 <말레피센트>를 같이 보길, 그래서 두 영화의 차이점을 두고 아이와 대화한다면 아이들의 상상력과 사고력이 훨씬 향상되지 않을까.
@ 줄거리
기본적으로 말레피센트는 악녀가 아니다. 본래 무어의 요정으로 태어난 소녀 말레피센트는 어린 시절 무어 왕국에 몰래 온 소년 스테판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진정한 사랑이라 믿을 만큼 서로를 깊게 사랑한다. 그렇지만 서로 앙숙인 두 나라에 사는 터라 차츰 성인이 돼 가면서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조금씩 식어간다.
성인이 된 말레피센트는 무어 왕국을 수호하는 강력한 요정이 된다. 문제는 인간들의 ‘탐욕’이다. 평화롭고 부유한 무어 왕국을 대상으로 인간들의 왕국은 전쟁을 시작한다. 그리고 말레피센트는 무어 왕국의 수호자로 이들과 맞선다. 전투에서 결국 무어 왕국이 승리하고 말레피센트는 인간 왕국의 왕에게 치명적인 부상까지 입힌다.
‘탐욕’에 이어 인간들은 ‘복수’라는 한계를 드러낸다. 전쟁에 패하고 자신을 큰 부상까지 당해 격분한 왕이 말레피센트에게 복수를 하는 이와 자신의 딸을 결혼시켜 왕의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선언한 것. 이에 왕국의 말단 직원이던 스테판은 오랜만에 무어 왕국을 찾아가 말레피센트를 만난다. 언젠가부터 자신을 찾아오지 않은 스테판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던 말레피센트는 결국 그를 용서한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다시금 로맨틱한 데이트를 이어간다. 말레피센트가 스테판이 건넨 수면제를 탄 물을 마시고 잠들기 전까지는.
애니메이션 <잠자는 숲속의 공주>
말레피센트를 죽이려던 스테판은 결국 그에게 칼을 찌르진 못한다. 대신 말레피센트의 날개를 자른 뒤 이를 가지고 인간 왕국으로 돌아간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말레피센트는 날개가 잘려버린 자신의 모습에 분노한다. 그렇게 예쁜 날개를 휘날리며 무어 왕국을 날아다니던 요정 말레피센트는 마녀 모습의 악녀가 된다. 그 역시 스테판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스테판은 공주와 결혼해 인간 왕국의 왕이 되고 예쁜 딸까지 얻게 되지만 바로 그 때 말레피센트가 찾아와 막 태어난 스테판의 딸 오로라 공주에게 저주를 건다. ‘16살 되는 생일날, 공주가 물레 바늘에 찔려 영원히 잠들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저주를. 스테판 왕이 무릎을 꿇고 애원하자 말레피센트는 한 가지 단서를 단다. ‘진정한 사랑의 키스를 받으면 영원한 잠에서 깨어날 수 있다’고. 그렇지만 이것은 불가능한 단서다. 이미 말레피센트는 스테판을 통해 진정한 사랑 따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테판 왕이 절망한 까닭 역시 마찬가지다. 그 역시 말레피센트를 통해 진정한 사랑이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사실 여기까지는 원작 내용을 조금 비틀고 놓은 것에 불과하다. 알려지지 않은 말레피센트의 사연이 소개됐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로라 공주의 성장과정부터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복수심에 불타 저주를 걸고 자신의 저주가 스테판을 얼마나 힘겹게 만드는 지를 직접 보기 위해 말레피센트는 스테판이 몰래 숨겨서 키우고 있는 오로라 공주의 주위를 맴돈다. 스테판이 오로라 공주의 양육을 맡긴 세 명의 꼬마 요정은 양육에 별다른 재능을 보이지 못한 터라 오로라 공주는 매번 위기에 내몰린다. 그리고 말레피센트가 몰래 오로라 공주를 위기에서 구해낸다. 오로라 공주가 16살까지 무탈하게 자라야만 저주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저주가 실현되길 바라는 마음에 오로라 공주를 돕는 어정쩡한 상황이 거듭 연출되는 것. 그렇지만 이런 과정을 겪으며 말레피센트는 아무런 죄도 없는 오로라 공주를 불쌍하게 여기게 되며 점정 정이 쌓여 간다. 그리고 오로라 공주는 보이지 않게 늘 자신을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알게 된다. 그리고 그를 자신의 수호천사라고 믿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무시무시한 저주를 건 게 바로 그라는 사실은 전혀 모른채.
결국 말레피센트는 자신이 건 저주를 풀어주려 하지만 처음 저주를 걸 때 한 무시무시한 말이 걸림돌이 된다. ‘이 저주는 세상의 종말까지 가며 그 어떤 힘도 바꾸지 못한다’고 선언한 터라 그 역시 저주를 풀어줄 수가 없는 것.
결국 오로라 공주는 16번째 생일을 맞이한다. 동화처럼 다른 나라의 왕자도 등장하지만 그리 신통해 보이진 않는다. 과연 오로라 공주는 영원한 잠에 빠져들까, 그렇지만 누가 그에게 진정한 사랑의 키스를 해줄까, 아니 세상에 진정한 사랑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 배틀M이 추천 ‘초이스 기준’ :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 그 이상을 알고 싶다면 클릭
사실 이 영화의 원작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의 동화다. 이를 바탕으로 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본 이들도 꽤 많을 터이다. 그렇지만 <말레피센트>를 직접 본다면 같은 동화를 원작으로 한 실사 영화가 원작을 이렇게 바꿔놓을 수도 있구나 깜짝 놀랄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자 한다면 강력 추천이다. 특히 아이들과 먼저 애니메이션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본 뒤 실사 영화 <말레피센트>를 보며 그 차이점에 대해 아이들과 대화한다면 교육적인 부분에서도 큰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12세 이상 관람가이니 초등학교 고학년에만 해당된다. 또 열두 살은 넘어야 두 영화의 차이점에 대해 부모와 원활한 대화가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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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 대한 탄탄한 재해석, 안젤리나 졸라의 빼어난 연기력, 그리고 엘르 패닝의 귀여운 모습까지 이 영화는 장점이 참 많다. 또한 컴퓨터그래픽(CG)을 활용해 만들어 낸 무어 왕국의 모습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동화 속 세계보다 훨씬 멋지게 그려졌다. 자연스럽게 관객들을 100분가량의 러닝타임 동안 동화 세계에 깊숙이 빠져들 게 만드는 빼어는 매력을 갖춘 영화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