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김무성 대표가 김태호 최고위원 사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 최고의 행동을 두고 김무성 대표체제 흔들기라는 관측을 포함, 다양한 해석이 돌고 있다. 이종현 기자
‘개헌’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김 대표가 너무 일찍 연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부류에선 이런 얘기들을 한다. 친박계 3선 국회의원의 말을 들어보자.
“박근혜 정부 집권 2년차다. 아무리 미래권력이라지만 지금은 싸움이 불가능한 시기다. 차기 주자로서 한 자릿수의 김 대표 지지율과 50%대의 박 대통령 지지율만 비교해도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다. 지금은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 동정 여론이 훨씬 크다. 까불면 죽는 시기인데 (김 대표의) 낮은 포복이 아쉽다. 그나마 공무원연금개혁을 대표발의하겠다고 바로 꼬리를 내린 김 대표가 정치를 좀 아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다.”
박 대통령 제1의 무기는 고정지지층이 단단한 지지율이다.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40%대의 지지율에 덤비려면 김 대표가 보다 대중성을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낀 여론조사에서는 그나마 있던 지지율도 곤두박질치는 형편이다. 여의도 정가를 살펴보는 기관의 한 관계자는 ‘훼방꾼으로서의 대통령’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 특유의 정치 환경상 대통령은 차기를 만들 수는 없지만 특정인을 안 되게 할 수는 있다. 과거 정부에서 그런 대표적인 예들이 많지 않은가. 노태우 전 대통령은 박찬종 씨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건 씨에게 고춧가루를 뿌렸다. 대표적으로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이회창 씨가 싫어서 이인제 씨를 내보냈다. 이런 결과들이 현재권력을 힘을 말해준다.”
박 대통령이 김 대표 흠집 내기에 나서거나, 제3의 인물을 띄워 주는 식으로 차기 주자군을 교통정리한다면 김 대표로선 대권 가시밭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또 경찰, 검찰, 국정원으로 하여금 사정정국을 통해 공포정치를 펼친다면 그나마 김 대표 밑으로 모였던 의원들도 발을 뺄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어쭙잖게 칼(개헌)을 빼들어 김 대표가 이 고생을 한다는 동정론도 적지 않았다.
김태호 최고위원의 생뚱맞은 사퇴를 두고도 여러 추측과 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를 두고 김무성 대표체제 흔들기의 서막이라고 이야기한 여권 인사는 “사퇴의 명분이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김 최고위원이 다시 돌아올 일은 없다. 그런데 이런 사퇴가 도미노로 이어진다면 김 대표체제는 와해할 수밖에 없다”며 “친박에서 어떻게 나올 것인지를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여당 지도부 속에는 서청원, 김을동, 이정현 최고위원이 친박계로 분류된다.
반대로 힘의 균형추가 국회로 기울었다는 말도 적지는 않다. 김 대표가 승기를 잡고 있다고 보는 부류다. ‘무성대장군’ 김 대표의 제1무기는 ‘직선제의 힘’이다. 박근혜 정부 초반 독자적인 힘으로 친박계가 결집해서 민 서청원 최고위원을 큰 표 차로 이겼다. 친박의 힘을 빌려온 전임 황우여 교육부 장관과는 다른 존재감이란 얘기다. 또 이명박 정부 말미 전당대회에서 친박계가 전폭적으로 지지한 유승민 의원은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패했다. 전당대회에서는 계파의 결집도 중요하지만 후보의 인물평이나 이미지가 당락의 주요 원인이라는 뜻이다.
지난 대선 당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한 박근혜 당선인과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를 두고 정치권 한 인사는 “할 말은 하고 있다는 현재의 이미지에, 19대 총선에 불출마한 뒤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에 다시 들어가 정권창출에 힘을 보탠 선당후사의 이미지까지 김 대표가 갖고 있다. 재벌가여서 재산이 있는데 사정기관의 압박이 통하겠느냐는 말도 나온다”며 “두 번의 박근혜 캠프 좌장으로서 그 역시 박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쥐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현재 새누리당은 “친김이냐 비김이냐라는 말이 나와야 할 정도로 세력개편이 이뤄진 셈”이라고 말한 한 초선 의원은 “존재감 없는 대통령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오랜 정치생활을 해 온 김 대표는 알 수도 있다는 말들을 한다. 그가 쥔 권력이 이를 말해준다”고 했다. 이야기인즉, 잠룡으로 불리는 김문수 당 혁신특위위원장, 홍준표 경남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모두 비박계다. 새누리당에서 친박색을 벗겨내는 ‘합종의 시대’가 열렸다는 말이다.
또 사정기관으로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정권이 바뀌면서 구속되는 것을 지켜봤다. 그 학습효과가 없겠느냐는 말도 있다. 박 대통령에게 기관들이 납작 엎드려 맹목적인 충성을 맹세하지 못할 것이란 이야기다. 원내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이런 말도 했다.
“박 대통령이 ‘개헌은 블랙홀’이라고 한 것은 개헌을 하면 경제활성화를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무리 경제를 일으켜도 개헌론 때문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다는 우려를 이야기한 것이다. 권력누수란 자기 말을 듣지 않고 예의에 어긋나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인데 그건 이미 시작됐다. 지금 두 사람이 전략적 제휴를 이루지 않는다면 둘 다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일각에선 김 대표를 흔드는 청와대의 툴도, 만약 김 대표가 대권욕을 버린다면 허사가 될 것이라 말한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말한 김 대표가 총리직으로 방향을 선회할 경우 청와대도 어찌해 볼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김 대표 곁에서 오래 지켜본 한 여권 관계자는 “무대(김 대표)는 그만한 강수를 둘 수 있는 사람”이라며 “‘개헌 이야기는 실수’라며 일종의 항복선언을 했는데 며칠 뒤 청와대 고위 인사가 기자들 앞에서 김 대표를 망신 줬다. 김 대표도 참고만 있진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 대표가 당무감사를 통해 지역위원장 물갈이에 나서는 것도 일종의 줄세우기, 군기잡기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김 대표를 향한 친박의 항쟁도 현재로선 무력하다. 대표적 친박계인 홍문종 의원이 김 대표의 ‘개헌 봇물’ 언급을 “정치적 타임스케줄에 따라 이야기한 것으로 주요 정치 이슈를 선점하려는 것”이라고 겨눴지만 후방지원은 없었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