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 재보궐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정계를 은퇴한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부인과 함께 전라남도 강진 백련사 인근의 흙집에서 칩거하고 있다.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현재 새정치연합 주변을 떠도는 분당 시나리오의 실체는 대략 이렇다. 새정치연합의 가장 큰 지분을 형성 중인 친노계를 상대로 당권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한 비노계 진영에서 호남을 거점으로 한 ‘신민주당’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이 중심에는 비노계 현역모임인 ‘민집모(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 그리고 정동영 고문을 비롯해 중도개혁 성향 전·현직 의원모임인 ‘구당구국’ 모임이 있다.
호남 신당설이 흥미를 끄는 또 다른 이유는 지난 6·4 지방선거 과정에서 호남 지역 무소속 기초단체장이 대거 당선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소속 당선은 그만큼 새정치연합이 더는 호남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일종의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이들 무소속 단체장들은 재선을 위해 복당보다 신당을 통한 경쟁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신당이 안착할 수 없다. 호남 신당이 폭발력과 지속력을 가지려면 각 지역마다 거물급 정치인들이 앞장 설 필요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를 토대로 꾸준히 거론되는 것이 과거 열린우리당의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모델과 같은 정동영 고문의 ‘뚝심’, 안철수 의원의 ‘관심’, 손학규 전 고문의 ‘변심’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정동영 고문은 여전히 전라북도에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다. 전북은 전국 8개 도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 권리당원 수가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정 고문은 다음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원중심의 정당체제의 강화를 통해 세 대결을 물밑 구상 중이지만 과거와 같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좀체 나타나지 않는다.
지난 대선 호남에서 많은 지지를 얻던 안철수 의원의 참여도 필수다. 하지만 이미 신당 창당 노력이 한 차례 좌절된 안철수 의원 측이 분당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안 의원이 공들여 당선시킨 윤장현 광주시장의 평가가 좋지 않다는 것도 운신의 폭을 좁힌다.
지난 7월 31일 손학규 상임고문이 재보궐선거에서 패한 후 정계은퇴를 선언, 기자회견을 통해 밝히고 있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안 의원의 한 측근은 최근 사석에서 “당분간 지역구·의정 활동에 집중한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탈당은 고려 대상이 아니고, 전당대회 나가라는 압박이 상당하지만 이 역시 결정된 바 없다”고 당 잔류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손학규 전 고문이 참여한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6·4 지방선거 이후 손학규-안철수 측은 운명공동체로 뭉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최근 안철수 의원실에 손학규 측 인사가 들어와 일하기 시작했다는 점, 그리고 현재 손 전 고문의 ‘정치적 업무(주로 손 전 고문을 찾는 약속 거절하기)’를 도맡은 이가 과거 민주당 시·도당 조직국장을 지내고, 이후 ‘정책네트워크 내일’ 조직실행위원 등을 지낸 인물이라는 점도 눈여겨볼만한 대목이다.
결국 야권 재편의 키는 손학규 전 고문이 쥔 셈이다. 이에 앞서 손 전 고문이 지난 7월 은퇴 기자회견 이후 강진의 한 토굴에 기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야권 일각에서는 “완전한 은퇴가 아닌 언젠가 다시 복귀하기 위한 ‘정치적 퍼포먼스’가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기도 했다.
손 전 고문 측 한 인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그런 의심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라며 “손 전 고문은 정치적 쇼를 할 줄 모르는 분이다. 고집도 워낙 세 참모의 조언도 먹히지 않을 때가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비노계 한 고참 당직자는 “정치인의 은퇴 약속을 쉽게 믿을 수 있겠느냐. 당장은 은퇴를 밝힌 지 석 달도 되지 않아 정치적 언급을 피하고 있지만 자서전 발간 등을 이후로 입장을 내 놓을 것으로 본다”며 “1년 6개월(20대 총선 전후)이 적당하리라고 본다”고 구체적인 시기를 덧붙였다.
<일요신문>은 손 전 고문의 이야기를 직접 듣기 위해 지난 22일 무작정 강진을 찾았다. 실제 다산 정약용 선생처럼 초야에 묻혀 은거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몇 차례 수소문 끝에 만난 손 전 고문은 “지금 묵언수행 중입니다. 취재에는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는 말과 함께 취재진에게 뽕잎차를 대접했다. 기자는 손 전 고문과 함께 툇마루에 앉아 강진만에 땅거미가 내려앉는 장면만 하염없이 바라봐야 했다.
전남 강진=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