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5월 청와대 경호실 사격장에서 사격을 해보는 노무현 대통령. | ||
노 대통령의 강경 발언 뒤 열린우리당과 청와대도 조선 동아의 보도 행태에 대해 일제히 비난의 포문을 열었다. 여권 일부에서는 조선 동아 등 일부 신문에 대해 ‘취재를 거부하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등 격앙된 모습이다.
이에 대해 해당 언론사들은 “터무니없는 비판”이라며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예봉을 감출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나라당 또한 “대통령의 발언은 위기 정국을 탈출하기 위한 정략적 발상”이라며 청와대의 ‘오버’를 비난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정치권 일부에서는 청와대가 행정수도 이전 논란을 매개로 국론을 또 다시 ‘친노’와 ‘반노’로 양분해 정국의 주도권을 쥐려 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를 동력으로 삼아 DJ정부 때부터 오랜 숙원이었던 언론개혁을 강하게 추진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와 보수언론을 대표하는 ‘조동’의 전면전 배경을 따라가 봤다.
시계를 잠시 거꾸로 돌려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DJ정부는 출범 4년째를 맞고 있었지만 여소야대의 정국 속에서 야당과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보수언론도 DJ정부의 정책에 ‘우호적’이진 않았다. 정국의 주도권을 잡고 정권 재창출을 이루기 위해서는 승부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2001년 1월11일, 김대중 대통령은 드디어 ‘칼’을 빼들었다. 그는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계와 학계, 시민단체, 국회가 합심해서 투명하고 공정한 언론개혁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 대통령의 언급 이후 국세청은 2월8일부터 4백여 명의 조사 인력을 투입해 총 23개 중앙 언론사를 대상으로 법인세 세무조사를 전격 실시했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지금.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 2001년의 DJ정부 때처럼 보수세력·보수언론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노 대통령의 첫 포문은 행정수도 논란과 관련한 것이었다. 그는 “행정수도 반대 여론을 만드는 일부 언론의 음모를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운동 내지 퇴진운동으로 느끼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일제히 ‘조동’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 김재홍 의원은 “탄핵방송 파문에 이어 신행정수도 건설 문제에서 보듯 특정 언론과 정파가 주고받기식으로 정치적 사안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키워나가는 ‘거울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언론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열린우리당 의원은 “장복심 의원 소동 때처럼 일부 보수언론이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이슈를 제기하면 한나라당이 약속이나 한 듯이 받아먹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최근에는 해당 기자들을 출입 정지시켜야 한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고 말했다.
▲ 지난 2001년 2월8일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위해 국세청 직원들이 조선일보사에 들이닥치고 있다. | ||
참여정부가 이처럼 보수언론에 대해 강한 반감을 피력하는 상황은 지난 2001년 DJ가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사 세무조사를 ‘암시’했을 때와 비슷한 양상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야당과 보수언론의 비판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강한 정부, 강한 여당론’을 내세워 야당과 언론에 대한 전면전을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근 대언론 강경 발언도 당시와 비슷한 상황 인식에서 온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탄핵 사태 등 온갖 어려움을 뚫고 본격적인 개혁에 착수하려고 했지만 초반부터 야당과 ‘조동’의 반발이 생각보다 심했던 것. 대통령이 최근 여러 차례 국정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DJ는 그 돌파구를 언론사 세무조사를 통해 찾았다. 노 대통령이 똑같은 방법을 선택하지는 않겠지만 이에 대한 생각이 없을 수 없다. 최근 정치권 일부에서 여권이 DJ정부 때처럼 언론개혁 ‘출정가’를 울리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에 대해 야당에서는 여권의 숨은 ‘발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나라당 문광위원인 박형준 의원은 “최근 청와대의 강경책을 이해할 수가 없다. 끊임없이 국론 분열과 정쟁을 만들어서 도대체 누구에게 이득이 있는가.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빌미로 해서 여권이 충분히 언론개혁을 치고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예상했다.
정치권의 ‘예감’뿐만 아니라 언론개혁과 관련한 ‘이상징후’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전국 신문사 지국의 75%가 신문판매고시를 위반했다고 발표한 것도 언론사 입장에서는 그 배경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안이다.
공정위는 “앞으로 시장이 정상화될 때까지 수시로 직권조사를 벌일 방침”이라고 벼르고 있다. 더구나 강철규 공정위원장은 지난 2001년 김대중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으면서 신문고시 부활을 주도한 인물이다.
최근 실시되고 있는 국민지주(국민일보 재단)의 법인세 세무조사도 언론개혁과 관련해 범상치 않는 대목이다. 국민일보측에서는 “과거의 세무조사 형식이 아니라 큰 신경은 쓰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그 배경에도 언론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언론사주의 소유지분 제한 문제도 최근 여권의 강경 기류와 관련하여 전격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조선 동아 등 메이저 신문 사주들의 영향력은 크게 감소될 전망이다. 하지만 사유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높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여권으로서도 이 카드는 모험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언론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다. 열린우리당 문광위원인 A의원도 이에 대해 “최근 청와대와 여권의 대 언론 강경책을 언론 개혁 신호탄으로 보는 것은 비약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주면 좋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야권에서는 이런 청와대의 대언론 강경 기류에 대해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박형준 의원은 이에 대해 “지난번 탄핵 사태처럼 친노·반노로 전선을 갈라서 결국 친노 세력을 결집시키려는 전형적인 정략으로 본다. 최근 지지율 하락에 따른 여권의 숨겨진 전략이라고 본다”고 규정했다.
그는 또한 “청와대 정책실장까지 나서서 청와대가 총력전을 하듯이 달려들고 있는데 도대체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가자는 것인지 이해를 못하겠다. 이것을 빌미로 해서 충분히 언론개혁을 치고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언론 개혁에 관한 정권의 순수성에 대해서 국민이 이미 그 저의를 의심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여권의 의도대로만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노 대통령이 사분오열 된 ‘친노’ 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해 ‘호루라기’를 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정현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이에 대해 “국가 중대사인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내부 결속용으로 쓸 수 있나.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격이다”라며 노 대통령을 공격했다.
한편 ‘청언전쟁’은 앞으로 정치권에서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강도높은 전면전의 양상을 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제 청와대와 조동의 대립은 그 도를 넘어선 느낌이다. 여권이 언론사 세무조사 등 속 보이는 강공책을 쓰기는 힘들겠지만 이번 만큼은 확실하게 왜곡된 언론 문제에 대해 손을 봐야된다는 공감대가 여권 내부에 폭넓게 형성되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권의 이런 강공책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지난 DJ정부 때도 세무조사 방망이까지 휘둘렀지만 정작 언론 개혁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론 분열과 국력 낭비만 초래할 가능성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