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삼양식품은 ‘라멘 에스’를 개점하면서 “분식전문점에서 봉지면 그대로를 끓여 제공하는 라면메뉴와 차별화 될 수 있도록 라면요리의 고급화를 선도한다”며 “삼양식품의 라면 개발 노하우를 바탕으로 고급스러우면서 완성도 높은 메뉴로 고객만족을 위한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라면’을 일본 발음인 ‘라멘’으로 표기했다.
이를 두고 여론 일각에서 “라면을 왜 굳이 라멘으로 표기하나. 한국어 표현이 없는 것도 아니고 번역하기 어색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라는 내용의 지적이 제기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삼양식품이 라면을 일본 단어인 ‘라멘’(ラーメン)으로 표기한 것에 대해 심리적 불편함을 느낀 것이다.
이같은 ‘불편함’은 표면적으로는 라면이 일본 고유의 음식이라 하기에도 다소 어폐가 있을 수 있다는 일각의 시각에서 출발한다.
고유 음식이란 그 민족이 처한 지리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따라 오랫동안 형성되고 발전한 음식을 뜻한다. 이 기준에서 볼 때 라면은 일본 고유의 음식으로 분류하기 어렵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평이다.
실제로 라면은 중국의 ‘납면’을 기원으로 한 면 요리로서 면과 국물, 그 위에 돼지고기, 파, 삶은 달걀 등을 올려 먹는 음식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중국 요리로 분류하기도 한다.
사진= 한국 최초의 라면 ‘삼양라면’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유형의 분말 스프가 따로 들어있는 인스턴트 라면의 경우 1961년 대만계 일본인 안도 모모후쿠가 처음 개발한 것은 맞다. 그러나 불과 약 2년 후인 1963년 9월 15일 국내에서도 삼양식품이 인스턴트 라면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삼양식품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의 식량난 타개를 목적으로, 주식인 쌀을 대체해 쉽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식품을 공급하려는 취지에서 라면을 만들었다.
‘라면’이 한국음식사에서 의미 있게 다뤄질만한 이유가 바로 라면이 생산되게 된 이런 배경 때문이다.
삼양식품이 라멘 에스의 주요 메뉴로 선보인 두부라면 ‘미스터 토푸’도 덩달아 도마 위에 올랐다. ‘두부 라면’을 지칭하는 메뉴인 ‘미스터 토푸’에서 토푸는 두부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토부’(とうふ)를 그대로 표기한 것이다.
두부의 발상지를 두고 한국이 중국과 자웅을 다툴 정도로 두부는 우리 역사에서 사실상 고유 음식으로 자리 잡은 음식 중 하나다.
때문에 삼양식품이 출시한 두부라면 ‘미스터 토푸’를 두고 여론 일각에서는 “두부라는 우리말을 두고 일본식으로 굳이 표기하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며 “라면을 고급화한다면서 만든 음식점 이름이 ‘라멘에스’에, 메뉴는 ‘토푸’라니…자국문화에 자부심이 없어 보여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삼양식품에 대해서도 네티즌 일부는 “우리나라 대표 라면을 생산한 삼양식품이 고급화 된 라면 1호점 내면서 라멘, 토푸라고 하다니 한국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처럼 한 유명 기업이 라면을 일본식 발음인 ‘라멘’으로 표기한 것을 두고 여론 일각이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게 된 사회심리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 전문가’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라면을 일본 발음으로 표기해 고급화한다고 했을 때와 김치를 고급화한다고 했을 때 한국 사람들은 어느 것에 대해서 더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운을 뗐다.
황 교수는 “일본 인스턴트 라면을 한국식으로 개발해 한국의 삼양라면, 한국식 1호 라면으로 자리잡았다면, 이젠 새로운 뭔가를 선도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일본 라면을 고급화한다’는 단순한 식으로 나가는 건 삼양식품이 한국 사회에서 존경받는 기업으로 발전하는 데에서 방향을 잘못 잡은 건 아닌 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황 교수는 “한국 소비자의 마음에선 아마도 이럴 것이다. 이제 우리의 라면이 우리가 가난하고 먹을 거 없었을 때에 먹었던 라면에 머무른 단계를 지나왔듯이, 이를 기점으로 우리만의 상표로서 거듭나 한류의 첨병으로 나가길 더 기대할 것”이라며 “기업이 굳이 일본식을 가지고 오지 않아도 우리만의 것으로 고급화를 이루고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을 때 그 기업은 우리 국민에게 존경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