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저녁이면 성남의 뒷골목을 산책한다고 했다. 감옥에서는 봄비가 내릴 때 담벼락 밑에 나있는 민들레를 보면서 걷고 싶어도 그게 불가능했었다고 말했다. 지나가다 말다툼을 하는 부부를 보면서도 그는 웃었다고 했다. ‘빠삐용’ 같이 독방에 갇혀 혼자 벽만 바라보면 싸울 대상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걸 그들은 모른다는 것이다. 그가 평생소원이라고 하던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를 함께 먹고 헤어졌다.
얼마 후 그가 내게 전화를 걸어 다시 감옥으로 가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배들의 범죄에 잘못 휘말려 버렸다는 것이다. 악마의 발톱에 잡히면 그 운명에서 벗어나기가 정말 힘든 것 같다.
교도소가 변신 중이라는 기사를 봤다. 법무부가 공개한 최신식 교도소의 모습이었다. 높은 담과 감시탑 철조망이 없어지고 주황색 벽돌로 지은 나지막한 건물이 마치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학교 같다. 녹지공원과 테니스장을 만들어 인근 주민에게 개방한다고 했다. 교도소의 외형적 변신만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영혼도 변화시켰으면 좋겠다.
최신 시설을 자랑하는 교도소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재소자에게 감방 안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를 지내느냐고 물었다. 틈만 나면 범죄 얘기를 수군거리거나 동료 중 어리석은 사람을 ‘왕따’로 만들면서 괴롭히는 인종들이 많다고 전했다. 최신 시설은 수감자의 내면을 변화시키지는 않는 것이다.
얼마 전 교도소에서 초청을 받아 강당에 모인 400명의 재소자 앞에서 말을 할 기회가 있었다. 소장은 재소자들의 눈에서 나오는 800개의 레이저 빔을 한번 받아 보라고 했다. 각오를 하고 그들 앞에 서서 “여러분은 지금 왜 여기에 있습니까?”라고 첫마디를 떼었다. 갑자기 교도소의 강당 전체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팔짱을 낀 채 나를 노려보는 눈길들이 있었다.
그들은 먼저 죄를 인식하고 참회해야 했다. 세례요한이 그리고 예수가 한 첫마디였다. 흔히들 ‘세상이 더 나쁜데 뭐, 남들이 다하는데 뭐’로 자신의 죄의식을 마비시켰다. 밑바닥 인심에 배치되는 말을 하거나 틀린 걸 틀리다고 말하면 세상 살아가는 데 미숙하다고 평가받는 사회다. 그러나 성경속의 예언자나 우화 ‘벌거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아이처럼 담백하게 말해야 진실하고 건강한 사회가 된다는 생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범죄는 나쁘다는 걸 각인시켜 주는 것이다. 그 다음이 교정교화다. 30년 넘게 형사재판을 해온 한 판사는 신앙만이 그들의 영혼을 교정할 수 있다고 했다. 경전과 함께 많은 책을 읽히고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삶을 배우도록 하면 어떨까. 재소자들의 어두운 내면에 빛을 비추어 그들이 죄를 벗어나 참 소망을 가지게 될 때 범죄는 말라버릴 것이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