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 시장이 2년 전 아들의 대리신검 의혹과 관련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좀처럼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지난 10월 14일 서울시 신청사 국회 국정감사장. 정용기 새누리당 의원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상대로 질의에 나섰다. 정 의원은 “아들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한 8명을 고발했는데, 왜 정식재판을 받지 않고 선처를 요구했나. 재판으로 진실을 밝혀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박원순 시장은 “병무청 조사가 끝났고, 검찰에서도 무혐의 처분이 났다. 가족에 대한 질문은 이번 서울시 국감과는 관계가 없다”며 난처함과 불쾌함을 드러냈다.
이날 박 시장은 검찰에 처벌불원서를 제출해 선처를 요구한 것에 관해서는 “선거가 끝나고 정몽준 후보와 선거 중에 있던 일은 화해하자고 해서 취하를 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정몽준 캠프 측은 지방선거 당시 박주신 병역 의혹 건을 선거 이슈로 활용하지 않았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지난 2012년 2월 22일 서울 신촌에 위치한 연세 세브란스병원. 공익근무 중이던 박주신 씨가 들어왔다. 당시 강용석 한나라당 의원이 주신 씨 병역 의혹을 공식 제기했고, 이에 보수단체에서 박 시장을 압박하고 나서자, 기습적으로 공개재신검에 나선 것이다. 이날 검사를 진행한 세브란스병원 측은 “박주신 씨가 병무청에 제출한 MRI 필름과 오늘 병원에서 촬영한 MRI는 동일 인물”이라고 밝혔다. 상황은 반전됐고, 강용석 의원은 사퇴했다.
하지만 일부 보수단체에서는 “박주신 씨 MRI 필름이 바꿔치기 됐다”며 이른바 ‘대리신검’ 의혹을 제기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지나친 주장으로 여겨졌다. 이 과정에서 ‘영상의학 권위자’라고 이름 붙여진 양 아무개 박사가 의학적인 소견을 덧붙이며 언론에 등장했으나 어디까지나 제삼자에 불과했다. 급기야 6·4 지방선거 과정에서 박 시장은 “나도 시장이기 이전에 아버지”라며 양 박사를 포함한 8명을 고발 조치했다.
검찰 역시 보수단체에서 박 시장 가족을 상대로 제기한 각종 고소·고발 건에 불기소 처분을 내려 왔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올해 4월 한 통의 서면증언서 때문이다. ‘나영이 주치의’로 익히 알려진 한석주 연세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과장(교수)이 2년 전 재신검과 관련해 그간 의문을 품고 있었던 점을 서면을 통해 확증한 것이다. 한석주 교수는 최근 ‘여대생 청부살해 사건’으로 수감된 윤길자 씨가 세브란스병원에서 발급한 허위진단서를 통해 형집행정지를 받은 사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내부 고발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사실 한석주 교수는 2년 전 주신 씨의 재신검을 촉발시킨 당사자이기도 하다. 한 교수는 주신 씨 문제로 여론이 들끓을 당시 감사원 홈페이지에 “강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판단된다”는 요지의 글을 올려 기름을 부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박원순 시장 측에서 재신검 장소로 세브란스병원을 택한 것도 한 교수를 의식한 부분이 없지 않았고, MRI 결과가 나오자 한 교수는 박 시장을 상대로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2년 전 박 시장에게 공개사과를 한 한석주 교수.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하지만 2년 뒤 서면증언에서 입장이 달라졌다. 이 중 검찰에서 주목하는 있는 대목은 연세 세브란스병원이 신체검사 당일 주신 씨의 신원 확인을 제대로 했느냐는 부분에 있다. 4월 서면증언에서 한 교수는 “이○○ 의료원 홍보실장, 최○○ 홍보팀장에게 물어보니 박원순 아들의 주민등록증 대조와 같은 기본적인 신원확인 작업이 당일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브란스 측은 검사가 끝나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는 것에 대비해 주신 씨의 주민등록 사본을 서울시를 통해 받아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의혹은 또 있다. 피고발인 측은 “당시 박주신은 서울시 직원 10여 명을 대동하고 병원에 나타났고, 기자 역시 서울시가 지정한 4명만이 입회한 상태에서 검사를 진행했다. 온전한 의미에서의 공개신검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주신 씨는 세브란스병원에서 MRI 검사를 받은 당일 새벽, 경기도의 또 다른 병원에서 별도의 MRI 검사를 받는 등 ‘예행연습’을 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 박원순 시장 측은 “확실하게 논란을 불식시키는 차원에서 미리 한 번 더 촬영한 것”이라며 해명한 바 있다. 박 시장 관련 송사를 대리한 적이 있는 한 변호사는 “박주신 씨 대리신검에 관한 직접적인 증언과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를 한다는 것은 이를 다분히 정치적 사안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라며 “선거법이 친고죄가 아니라지만 고발인이 처벌불원서를 제출한 것은 효력이 큰 사안이다. 특히 서울시장이 선처를 호소한 사안을 검찰에서 다시 끄집어내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얼마나 납득할지 모르겠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해당 건으로 피고발된 김기백 <민족신문>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김 대표는 최근 “세상에 어느 고소·고발 건이 100% 확증을 갖고 시작하느냐”고 반문하며 “그동안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된 만큼 박 시장은 이번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동안 경찰과 검찰은 나를 비롯한 피고발인을 여러 번 소환해 진술케 하면서도 박주신은 국내에 있을 때조차 한 번도 소환한 적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피고발인 다수는 불기소 처분이 내려질 것을 대비해 박원순 서울시장을 상대로 무고로 맞고소한 상태다. 검찰로서는 양날의 검을 휘둘러야 하는 상황이다. 또 다른 피고발인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피고발인들이 선거 때 맞춰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말하는데, 박원순 시장 쪽에서 선거 때만 반응한 것”이라며 “이번에 검찰이 불기소를 한다면, 2년 뒤 대선을 앞두고 박 시장을 또 다시 의혹을 제기하는 우리를 파렴치범으로 모는 등 쇼를 할 것이 빤하다. 이번 기회에 재판을 통해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당 건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제2차장실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건과 관련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비서실은 지난 31일 “주신 씨 병역의혹에 관해서는 지난해 검찰에서 진실이 다 밝혀진 사안이다. 이미 끝난 사안을 자꾸 거론한다는 것은 (의혹을 제기하는 측) 의도에 끌려가는 것이기에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