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0일 오사카 시청에서는 두 사람의 특별 면담이 진행됐다. 이날 면담은 7월 기자회견에서 하시모토 시장이 재특회를 비난하자 사쿠라이 대표가 면담을 신청해왔고, 이를 다시 하시모토 시장이 받아들이면서 성사됐다. 면담은 공개로 진행해 100여 명의 취재진이 몰릴 만큼 관심이 뜨거웠다.
하시모토 시장은 극우 성향 정치인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일본군 위안부 정당화 발언을 비롯해 끊임없이 망언을 일삼아 일명 ‘망언 제조기’로도 불린다. 논쟁 상대였던 ‘재특회’의 사쿠라이 대표는 일본 내 혐한 감정을 부추기는 선동자다. 특히 그가 설립한 재특회는 “한국인은 바퀴벌레” “일본에서 한국인을 몰아내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혐한 시위를 주도하는 단체다.
사실 애초부터 기대는 무리였다. 면담은 수준 이하였다. 시작부터 막말이 오가더니 서로 멱살을 잡을 듯한 태세를 보여 경호원들에게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대화는 줄곧 자신의 주장만 쏟아냈다. 하시모토 시장이 “너 같은 차별주의자는 오사카에 오지 마라”고 비난하자 사쿠라이는 “내가 왜 차별주의자냐? 그럼 일본인을 비방하는 한국인들은 다 차별주의자다”고 맞섰다.
이후 대화는 “너 이 자식, 까불지 마” “시끄러워” 등 서로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격한 언쟁에 화가 난 하시모토가 “집에나 가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면담은 끝나고 말았다. 사쿠라이는 밖으로 나가는 하시모토를 향해 “겁쟁이, 니가 그러고도 남자냐” 등의 폭언을 퍼부었다. 30분 예정의 면담은 이렇게 불과 7분 만에 막을 내렸다.
하시모토 도루 일본 오사카 시장이 10월 20일 재특회의 한국인에 대한 혐오발언 문제로 대담을 하기 위해 사쿠라이 마코토 대표를 만났다. 사진은 대화 도중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자 경호원들이 말리는 모습.
마스조에 요이치 도쿄도지사도 쓴 소리를 가했다. 우연히 TV를 통해 영상을 봤다는 그는 21일 기자회견에서 “별로 보고 싶지 않는 영상이었다”고 운을 뗀 후 “적어도 한쪽은 공인이었는데, 공인으로서의 품격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유명 인사들도 가세했다. 평론가 아즈마 히로키는 “귀중한 인생, 이런 바보 같은 콤비를 보며 허비하고 싶지 않다”고 비판했고, 저널리스트 이와카미 야스미는 “어차피 한통속인 두 사람의 말다툼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또 극작가 고카미 쇼지는 “장대한 코미디를 봤다”며 비꼬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와 관련, 하시모토 시장은 공식 석상에서 “재특회가 헤이트스피치를 그만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면담 성과에 대해 밝혔다. “시장으로서의 언행이 부적절했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그렇게 느껴졌다면 어쩔 수 없다”며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더욱이, 사쿠라이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이 쓴 책 <대혐한 시대>가 이번 면담을 통해 “아마존재팬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했다”며 기뻐하기까지 했다. 애당초 그의 목적은 ‘이슈화’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하시모토 시장은 왜 공개대담을 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정치 쇼”라는 의견이 많다. 지난해 여러 차례 망언으로 물의를 빚은 하시모토가 곤궁에서 벗어나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하시모토는 젊고 거침없는 이미지로 급부상해 일본 정치판을 뒤흔들 뻔했으나 지난해 위안부 망언과 미군 풍속업 활용 권유 발언이 잇따라 국제적 파문을 일으키면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었다.
그래도 성과(?)가 아주 없는 건 아닌 듯하다. <교도통신>은 “일본 민주당이 헤이트스피치를 규제하는 새로운 법안을 정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민주당은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 겸 유신당 공동대표가 헤이트스피치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유신당과 법안을 공동 제출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잠깐 - 헤이트스피치(Hate Speech)란? 인종이나 국적, 성별 등 특정한 그룹의 사람들을 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파괴시킬 목적으로 악의적인 증오심을 부추기는 선동 행위를 일컫는다. 일본에서는 ‘재특회’ 등이 중심이 돼 재일(在日) 한국·조선인을 겨냥한 헤이트스피치가 문제시 되며 비난을 받고 있다. |
혐한책 독자 살펴보니 고령자들이 즐겨 읽더라 <마이니치신문>이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6세 이상 3600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혐한·혐중’ 관련 서적이나 특집 기사를 읽은 사람은 전체의 13%였는데 그중 45%가 60대 이상이었다고 한다. 반면 10대 후반은 3%, 20대는 8%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넷우익의 역습>이라는 책을 쓴 평론가 후루야 쓰네히라는 “인터넷 우익과 재특회를 동일시 여기는 것은 경솔한 생각이다. 재특회는 그중 가장 과격한 일파에 불과하다”면서 “대다수의 인터넷 우익은 거리에 나오지 않고, 말 그대로 인터넷 공간에서 자폐증 성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인터넷 우익은 수도권에 사는 비교적 시간과 돈에 여유 있는 중·노년 중산층이 많다. 혐한·혐중 책을 사는 사람이 고령자에 치우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