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서는 벌써 반기문 대망론 등 차기 대권주자에 대한 논의가 오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2의 반기문’으로 김문수 위원장, 오세훈 전 시장, 홍준표 지사를 꼽고 있다. 일요신문 DB
“정치권이 반기문 깃발을 올렸다. 반 총장이 선을 그었지만, 일단 사람들의 머릿속에 반기문이 차기 대통령 후보로 들어가 버렸다. 밥 먹다가도, 술집에서, 어느 날 뉴스에서, 등산 중에 골프를 치다가 사람들이 반기문 어떠냐, 반기문 되겠냐 말들을 할 것이다. 보통 레임덕은 임기 말 측근 비리나 게이트, 또는 대통령 성과에 대한 혹한 평가가 나올 때 두드러지는데 지금 여권은 스스로 개헌론, 대망론으로 레임덕을 일찍 부르고 있다. 이렇게 된 마당이니 ‘반기문 현상’은 반복될 것이다.”
그 의원은 “앞으로 여든 야든, 여야 속의 계파든, 원외든 자기 이해에 따라 잠룡 애드벌룬을 띄워 여론의 동향을 살피는 현상이 나올 것”이라 했다. 여권의 전략 쪽 인사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일부에서 들은 얘기다. 친박 일색인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이 반 총장 띄우기에 나선 것은 어떻게 해석해도 답이 안 나온다. 다만 대선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친박이 일부만 잘나가고 나머지는 팽당했다는 생각에 박 대통령을 겨눴다고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반 총장 카드가 희미해질 때 어느 누가 차기 주자를 내세운다고 해도 비난하기가 힘든 분위기가 조성됐다. 반 총장 카드보다 확실할까 싶지만 숨어 있던 인재가 발굴되거나, 정치권과 거리를 뒀던 인사들이 하나둘 거론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본다.”
지난 10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한 그날,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은 ‘2017년 대권지형 전망’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청와대와 물밑에서 양해를 구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시점에 대권 전망이라니…’라며 혀를 차는 여권 인사가 적지 않았다. 특히나 반 총장 지지율이 올 초만 해도 20% 정도였는데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40%에 육박했다. 이런 시점에 친박이 ‘역린’을 건드린 셈이다. 정치권 동향에 밝은 한 인사는 최근 의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말을 전해줬다.
“국민은 안철수 현상에 낀 거품을 봤다. 그 학습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 밖에 있던 자들이 언론에서 거론되면 처음엔 신선한 맛이 있지만 금세 내공이 들통 나지 않았나. 고건 전 총리도 그랬고, 정운찬 전 총리도 그랬다. 박원순 시장도 실은 행정을 하고 있지 정치를 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래서 몇몇은 울타리 안에서 사람을 띄울 것이라고 말하면서 세 사람을 이야기하더라.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세 사람 중 필두가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이다. 그는 요원해 보이던 당내 입성에 성공했다. 노동운동을 했고, 국회의원 경력, 경기도지사 이력까지 스토리가 된다. 실언 탓에 구설도 적잖았지만 실무형 지사였다는 평가도 만만찮다. 특히 새누리당의 확실한 지지기반인 경북(영천)이 고향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때 보수의 아이콘으로, 소통령으로 불렸던 오 전 시장은 2011년 8월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었다가 투표율이 모자라 재선 1년 2개월 만에 사퇴했다. 안철수 의원과 박원순 시장을 정치권에 불러들인 죄인으로 취급받았지만, 최근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무상급식 디폴트 분위기와 맞물려 그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의 인사는 “정치권에 기웃거리지 않고 유학에다 봉사까지 자숙의 시간, 그 내용이 좋았다는 평가다. 특히나 무상급식에 대한 정치권의 반성과 자성이 나오는 시점이어서 직을 걸었던 그의 진정성이 재평가될 수 있다”며 “만약 그 때 오 전 시장의 결단이 능력이 아닌 소신의 문제였다고 평가받게 되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촉발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농약급식과 묘한 대비를 이뤄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오갔다”고 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거론한 의원도 있었다고 한다. 할 말은 하고 마는 성격, 모래시계 검사의 이미지는 강점이지만 잦은 설화와 다소 가벼운 무게감에 대통령감은 아니라며 논쟁이 붙었다는 전언이다.
이 세람 이야기가 나온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렇듯 정치권은 요즘 박 대통령보다는 ‘미래권력’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띄우기 식의 ‘반기문 현상’이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하며 우후죽순 발발할 분위기가 엿보인다. 특히 세월호 정쟁으로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과 식상함이 팽배해져 누군 어떤가는 식의 기대감이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는 말들이 오간다. 하지만 이를 나쁘게만 볼 수 없다며 친박계의 한 의원은 이런 말을 보탰다.
“정치권에서 이러쿵저러쿵해도 박근혜 정부가 공공 분야 개혁에 성과를 내고, 경기 활성화에 성공하면 레임덕은 있을 수 없다. 다만 현역 의원들로선 당장 20대 총선이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에 당의 인기, 당의 미래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할 시기다. 야권은 문재인, 안철수, 안희정, 김두관, 김부겸 등 다소 고정화된 잠룡 리스트가 있는데 새누리당은 한 명도 없지 않은가. 반 총장 카드가 김무성 견제용이든 문재인 견제용이든 간에 기왕 나왔으니 여권에서도 이런저런 사람을 천거해야 한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은 서로 경쟁해선 안 되나?”
반 총장이 정치를 하겠다 안 하겠다,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아 여러 가능성이 회자하는 가운데 ‘제2의 반기문’ 띄우기를 기대하는 인사들도 있다. 일부는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론이 반 총장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수순으로, 내치 총리에 욕심을 부리는 이들이 장난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들도 한다. 하지만 양자 입양 하는 식의 대선주자 띄우기로 기존 정치권 인사가 제 얼굴에 침 뱉고 있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