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양적완화를 중단하자 다른 나라들은 제2의 위기 덤터기를 쓰고 있다. 문제는 단기외채가 많고 경상수지 적자가 쌓여 벼랑 끝에 서 있는 신흥국들이다.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헝가리, 칠레 등이 외국자본이 빠져나가면 1~2년 안에 국가부도에 처할 수 있는 나라들이다. 우리나라는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외채가 1300억 달러 수준인 반면 외환보유액은 3600억 달러가 넘는다. 따라서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외국자본이 빠져나갈 경우 금융시장 혼란과 가계부채 악화로 경제가 더욱 심각한 불안에 빠질 수 있다.
일본은 2012년 말부터 돈을 대량으로 푸는 부양정책으로 잃어버린 20년을 되찾는다는 ‘아베노믹스’를 펴고 있다. 그러나 수출증가, 투자회복 등 경제활성화가 반짝 효과로 끝나고 올해 초 소비세인상을 계기로 다시 침체의 수렁에 빠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양적완화를 중단하자 엔저효과를 극대화하는 극약처방으로 양적완화를 확대하고 있다. 연간 60조 엔씩 풀던 양적완화 규모를 80조 엔으로 늘렸다.
이렇게 되자 인근 국가들의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해외시장에서 50% 이상 수출품목이 겹치는 우리나라는 발등의 불이다. 이미 국내외 여건의 악화로 우리나라 수출은 날개가 꺾였다. 3분기 수출이 전분기 대비 -2.6% 감소했다. 향후 일본의 추가적인 양적완화는 엔저를 가속하여 우리나라 수출의 숨을 막을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과 유럽연합이 경기부양을 위해 팽창정책을 확대할 경우 우리 경제는 금융불안과 수출감소가 극도로 악화하여 설 땅을 잃는다.
국제 통화전쟁이 본격화할 경우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외국자본의 유출에 따라 증권시장이 추락하면 기업투자가 위축된다. 또 재산가치가 줄고 가계부채가 늘어 소비는 더 얼어붙는다. 여기에 엔저의 타격으로 수출이 더 감소할 경우 산업기반이 흔들린다. 더욱이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계속 풀 경우 외국자본에 이익을 챙겨 내보내는 모순을 초래한다.
일단 정부는 금융시장과 환율의 안정화에 금융과 재정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리하여 통화전쟁으로 인한 금융불안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안 된다. 근본적으로 정부는 기업의 창업과 투자를 활성화하는 획기적인 산업정책을 내놔야 한다. 그러면 오히려 갈 곳이 없는 외국자본이 대거 몰려와 경제를 일으키는 순기능을 할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전 고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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