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경매투자로 빚 독촉에 시달리던 일가족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2007년부터 이 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부동산 경매 사업에 뛰어들었다. 아파트나 빌라를 싼값에 경매를 받아서 집값이 오르면 팔 생각이었다. 자금이 여유롭지 않았던 이 씨는 평균 7000만 원 이하의 주택 위주로 낙찰 받았다. 제2금융권에서는 경매 낙찰가의 80%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이 씨는 1000만 원 정도만 가지고도 경매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씨가 경매에 뛰어든 2007년은 경매시장이 좋을 때였다. 이 씨도 ‘일확천금’은 아니지만 조금씩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경매가 생계수단이 된 이 씨는 경매로 낙찰 받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그 집을 싸게 전세 놓으면서 소유 주택을 늘려갔다. 이러한 방식으로 2013년까지 이들 부부는 이 씨의 명의로 아파트와 빌라 11채, 부인 김 씨의 명의로 4채를 소유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면 이 씨 부부는 빌라와 아파트 15채를 소유한 중산층이었다.
그러나 이 씨 부부의 속사정은 달랐다. 이 씨 부부는 적은 자본금으로 경매를 낙찰 받느라 제2금융권에서 9억 원의 대출을 받아 이자를 내고 있었다. 부동산 경기가 2008년을 기점으로 침체되면서 이 씨 부부가 소유한 집값도 하락했다. 집을 팔려면 오히려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월 300만 원에 달하는 이자를 갚는 것도 점점 어려워졌다.
이 씨는 이자를 갚기 위해 2012년부터 서울의 한 폐기물 처리업체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성실했던 이 씨는 1년 만에 정직원이 됐고, 200만 원가량의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달 이자를 갚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이 씨 부부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생활비를 해결해야 했다.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면서 이 씨 부부는 자신들이 살던 집을 내놓고 경매로 받은 빌라로 들어갔다. 부인 김 씨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을 하며 남편에게 힘을 보탰지만 이자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지난 9월 부인 김 씨는 다니던 직장을 퇴직했고, 생활고는 더욱 극심해졌다.
부인 김 씨는 마이너스 통장과 보험 대출금의 만기일이 다가 올 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빚을 갚지 못하면 연말에는 집이 넘어가는 상황까지 왔다. 빚 독촉의 압박에 시달리던 부인 김 씨는 급기야 지난 9월 한 차례 자살시도를 하기도 했다. 중학생이었던 이 씨 부부의 딸 이 양은 삭막해진 집안 분위기에도 학교에서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MBN 뉴스 화면 캡처.
그런데 지난 10월 29일부터 이 양이 학교에 출석하지 않았다. 결석 한번 한 적 없이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했던 이 양이 무단결석을 하자 담임은 직접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이 양의 집 문이 잠겨있어 담임은 학교로 돌아와야 했다. 다음날도 이 양은 결석을 했다. 이 양의 담임은 다시 한 번 이 양의 집을 찾았다. 담임은 수차례 문을 두드렸지만 집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이 양의 담임은 경찰에 신고했다.
인천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신고를 받고 집으로 들어갔을 때 이 씨 가족 3명은 안방에 반듯이 누운 자세로 숨져 있는 상태였다. 방안에는 4개의 화덕에 연탄과 번개탄이 올려져 있었다. 부검결과 사인은 연탄가스에 의한 질식사로 밝혀졌다. 지난달 28일 저녁이 사망시각으로 추정된다”며 “방안 창문과 문을 테이프로 막아 놓은 흔적이 있어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테이프를 두 번 붙였는데 시간차가 있었다. 먼저 자살한 아내와 딸을 발견한 이 씨가 뒤따라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일가족이 숨진 채 발견된 현장에서는 부인 김 씨와 딸 이 양의 유서가 발견됐다. 부인 김 씨는 유서에서 ‘점점 마이너스는 늘고 보험대출은 차고, 끝내 마이너스 인생으로 살다 간다’며 남편에게 ‘이미 몇 번을 쓰다 찢었는지. 아이가 이해해줘서 같이 가게 됐다. 딸을 데려간 독한 어미라 하지 말고 용서해달라’고 적었다.
13살의 이 양도 A4용지 반 장 분량에 유서를 남겼다. 이 양은 아버지 이 씨에게 남긴 유서에 ‘나랑 엄마랑 먼저 갔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 그리고 따뜻하게 입고 잘 차려 먹고. 나랑 엄마랑 의식이 있어도 깨우지 말고 행복하게 가게 해줘. 우리 가족은 영원히 함께 할 것이기에 슬프지 않다’고 마지막 말을 전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경찰 관계자는 “평소 이 씨가 주변사람들에게 대출 빚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밝고 성실했다고 한다”며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이 씨가 부인과 딸이 사망한 사실을 알고 망연자실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씨는 자살 전날 평소처럼 회사에 출근해 ‘내일 보자’고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정확한 이 씨 부부의 부채를 알기 위해 관련 기관에 업무협조를 요청할 방침이다. 앞서의 경찰관계자는 “이 씨의 집에서 통장만 20~30개가량이 발견됐다. 그중 오는 13일 대출 상환 만기일이 다가오는 계좌도 있었다. 빚이 얼마나 더 있는지는 계좌를 추적 중이다. 은행과 금융감독원을 통해 더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