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주체전에서 첫 시범종목으로 치러진 바둑대회 전경.
이번 첫 시범경기는 선수 3명에 후보 1명인 남-녀 일반부 단체전, 남녀 각 1명인 일반부 혼성 페어, 고등부 혼성 개인전 등 4개 부문. 한 팀은 선수 11명과 감독-코치로 구성된다. 제한시간 각 30분에 30초 초읽기 3회, 덤은 6집반. 금-은-동메달 위주가 아니라 득점 합계로 순위를 매긴다. 1위 8점, 2위 7점, 공동3위 5.5점, 5위 2.5점.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과 달라 금메달이 적거나 없어도, 점수만으로도 우승할 수 있다. 점수가 같으면 그때는 금-은-동메달 숫자로 가린다. 대회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승 전남(18.5점) ▲준우승 대구(15점) ▲ 3위 경남(13.5점) ▲ 공동 4위 광주/강원도(12.5점) ▲ 공동 6위 부산/경기도(10.5점)이고, ▲8위 인천(10.5점) ▲공동 9위 전북/제주(8점) ▲11위 울산(7점) ▲12위 대전(5점) ▲13위 서울(5점) ▲14위 경북(2.5점) ▲공동 15위 충남/충북(2.5점) ▲17위 세종
전남은 남-녀 단체전을 석권, 2개의 금메달로 시범경기 첫해 종합우승의 영예를 안으면서 4위에 오른 이웃 광주와 함께 ‘바둑의 고장’ 호남의 전통을 알렸고, 바로 이틀 전(10월31일) ‘2014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한 선수들이 하루도 못 쉬고 곧장 서귀포로 날아온 대구 팀은 여기서도 남자 단체전 동메달, 여자단체전 은메달을 따내며 준우승, 겹경사를 누렸다.
지난해 제94회 인천체전에서 각각 3, 4위를 했던 경남과 강원도가 올해도 3, 4위에 오른 것은 대단하다. 올해 내셔널리그에서도 3위로 약진한 경남은 남자단체전과 혼성 페어에서 동메달. 강원도는 남자단체전 은메달, 여자단체전 동메달로 메달에서는 경남에 앞섰으나 종합점수에서 간발의 1점 차이로 4위가 되었지만 “이래도 우리가 바둑 열세 지역이냐”면서 활짝 웃었다. 그에 비해 평소 강호로 알려진 서울 경기와 지난해 우승 준우승인 전북과 인천이 중-하위권으로 밀린 것은 의외였고, 특히 서울이 13위로 처진 것은 이변이었다.
제주팀 이유경 선수(오른쪽)의 대국 모습.
바둑이 체육으로 변신을 꾀하기 시작한 것은 14년 전이었다. 2000년 12월 당시 집권여당 새천년민주당의 실세였던 한화갑 의원이 한국기원 제5대 총재(초대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2~4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로, 2001년 2월에 허동수 GS그룹 회장이 제14대 이사장(17대까지 연임)으로 부임하면서 한국기원은 ‘바둑 체육화’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듬해 한국기원은 대한체육회 인정단체가 되었고, 그 이듬해(2003년) 제84회 전라북도 전국체전부터 전시종목(동호인종목)으로 참가했다.
2005년 11월 사단법인 대한바둑협회가 창립되었다. 1997년 발족한 ‘사단법인 한국아마바둑협회’를 흡수한 것이었다. ‘재단법인 한국기원’은 대한체육회에 가입할 수 없고, 가입하려면 단체 이름이 ‘대한○○협회’라야 했기 때문이다. 조건호 전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초대 회장을 맡았다. 조 회장은 올 1월에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제18대 한국기원 총재(이사장 직제 폐지)로 취임하면서 대한바둑협회 회장을 겸임하게 될 때까지 연임했다. 2006년 5월 대한체육회는 대한바둑협회를 준가맹단체로 인정했다. 조 회장은 그 해 7월에 일본기원을, 이듬해 3월에는 중국기원을 방문해 바둑의 아시안게임 진입을 위한 협조 체제를 구축했고, 2007년 5월 아시안게임 평의회는 바둑을 2010년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했다. 2009년 2월 대한체육회 제25차 이사회는 바둑을 55번째 정가맹단체로 인정했다. 그러나 올해 인천 아시안게임에 바둑은 들어가지 못했고, 지난해 인천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실내무도대회에 참가하는 것에 그쳤다. 전국체전에서는 장장 11년 동안이나 전시종목이었다. 여기까지가 바둑 체육화의 약사(略史)다.
인내의 11년이었다. 전시종목-동호인종목이란 건 글자 그대로, 그저 동호인들의 구경거리였지만 이제 대우가 달라진다. 국가·대한체육회로부터 공식 지원을 받는다. 17개 시·도에서는 바둑 선수와 팀을 육성하게 될 것이다. 감독-코치-선수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며 스카우트 경쟁도 벌어질 것이다. 정식종목까지는 최종 면접만 남은 셈이다. 보통 2~3년이 걸린다고 한다. 체육 경기에 완전히 적응하기엔 룰이나 복장 등 아직 조금은 미흡한 구석이 있다. 정비가 시급하고, 다른 종목과의 융화도 중요한 사항이다. 바둑이 정식으로 체육에 정착하는 것을 견제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곳도 없지 않으니까. 국가 지원이 분산되는 것을 달가워할 리가 없다. 그것과는 별개로 차제에 생각되는 것이 있다. 체전 정식종목은 말할 나위 없지만, 바둑이 동계올림픽에 들어가는 일이다. 바둑은 여름도 좋지만, 겨울은 더 좋을 것인데, 평창 동계올림픽이 있다. 그때가 기회다.
제주바둑 간부진과 선수단. 뒷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김기형 전 회장, 여섯 번째가 고만수 회장.
제일 신명난 곳은 제주도 바둑협회다. “바둑 시범경기 첫 대회를 치르게 되었다. 제주 바둑으로서는 인연이자 행운이 아닐 수 없다”는 자부심으로 제주 바둑의 원로 김석범 고문을 비롯해 현 집행부인, 고만수 회장, 오행조 강순찬 부회장, 양문혁 전무, 고영하 한공민 김영우 이사, 고승우 총무 그리고 전기(前期)의 김기형 회장, 박동일 고문, 김준식 홍성칠 이사, 강승진 전무, 부상민 사무국장 등 현-전 라인업이 총출동해 지극정성으로 선수-임원들의 편의를 돌봐 주었고, 대회의 성공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감동적으로 헌신했다. 그리고 제주(감독 장수영 9단)는 17개 팀 중에서 9위, 당당히 가운데에 섰다. 이들이 지난 10여 년 동안 제주도 바둑을 위해 땀 흘린 결과다.
체전에 참가한 선수-임원들은 “이번에 와서 보니 제주도 바둑이 저변 인구로나 ‘삼다수배’ 같은 대회와 행사의 규모, 다양성, 활기에서나 서울 경기에 필적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협회는 또 대회가 끝난 후 각 시-도와 해외동포 바둑 선수 모두를 초대해 만찬을 베풀었다. 다른 종목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제주 팀의 마스코트로 활약한, ‘섬 속의 섬’ 추자도 바둑3자매의 맏이 이유경 선수, 단 1명이 출전해 비록 17위를 했지만 스포츠맨십으로 고군분투한 세종특별자치시 팀, 촉박한 일정 등의 사정으로 해외동포 중에서는 유일하게 출전해 번외경기로 만족한 호주선수단(3명)에게는 따로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