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일 씨는 로프 일을 하며 그린 로프공 만화 <적벽에 달리다>로 제4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 대상을 차지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명함이 말해주듯 그는 고층건물 벽을 타는 ‘로프공’이다. 경력 3년, 공식 일당 35만 원을 받는 오야지(현장책임자)로 회사까지 차렸다. 그는 또한 ‘만화가’다. 경력 20년차. 로프공 회사 대표 명함에 그려진 ‘날개’가 그의 본업을 살짝 비친다. ‘만화가 김강일’과 ‘로프공 김강일’이 만나 대작 <적벽에 달리다>가 탄생했다. 상금 5000만 원의 제4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 대상 수상작이다. 수상 소식을 듣고 지난 4일 일요신문사로 한달음에 달려온 그의 인생역정을 소개한다.
“3년 전쯤이었습니다. 만화판이 침체기였잖아요. 투잡이 필요했습니다. 인생 2막이죠. 할 바에는 제일 힘든 데서 해보자, 그런 생각을 하며 길을 가는데 로프공들이 아파트 타고 있더라구요. 찾아가서 일 좀 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물어보며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만화가와 로프공과의 첫 만남이었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투잡이었다. 그러나 로프 타는 일이 만만찮았다. 끔찍한 일도 겪었다. 다른 팀에 있던 선배 만화가가 묶이지 않은 로프를 묶은 것으로 착각해 탔다가 추락해 숨진 것. 그만큼 작은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지는 위험한 일이기에 몰입을 해야 했다.
“젊었을 때 노동일 해보곤 험한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고소공포증까지 있어 밑에 보면 무서워요. 너무 힘들어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제 성격이 뭐든 시작하면 끝까지 하거든요. 회사까지는 차릴 필요가 없었죠. 그래도 거기까지 한번 해보자 한 거죠. 개인사업자도 내고. 일당 9만 원부터 시작해 지금은 제 공식 일당이 35만 원입니다. 요즘엔 이쪽 시장도 어려워 일이 꾸준하지는 않지만요.”
로프 일에 어느 정도 이력이 붙으며 만화가의 본성이 꿈틀거렸다. 사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 이외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뼛속까지 만화가였다.
“우리 또래가 다들 그렇지만 처음에 <마징가제트>, <태권브이>를 좋아하며 컸죠.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현세 선생님의 <떠돌이 까치> 한 권을 다 베꼈습니다. 그 때 직업이 정해졌어요. 다른 꿈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박해를 많이 받았다”는 그의 말처럼 꿈을 이뤄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중·고생 시절 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리다가 얻어맞기를 다반사. 그럼에도 꿋꿋하게 연예인 사진도 베끼고, 만화 캐릭터도 만들고, 일부 작품은 팔아가면서 꿈을 키웠다. 고교 졸업하고는 당연히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정식’은 아니지만.
“고교 졸업 후 이현세 선생님 B팀(하청)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만화가 산업화되던 시기였는데요, 뒤처리 두 달만에 바로 얼굴만 그리는 마스크 터치(일명 마스크맨)로 올라왔습니다. 누구도 데생 같은 건 안 가르쳐주니 독학으로 습작도 했죠.”
그가 데뷔한 건 1994년 말. 서울문화사의 성인만화 잡지 <빅점프>를 통해서였다. 작품은 <뺑끼통 1440>. 그 때가 스물넷이었다. “최초의 감방만화 시도죠. 그 나이에 성인만화로 데뷔한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라며 자부심은 대단했지만 그의 만화가 확 피지는 못했다.
“하다 보니 스토리가 달려요. 그림이랑 글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한다는 건 뇌가 둘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연재를 길게 못했죠. 스토리작가를 만나보니 궁합이 잘 안 맞더라구요. 혼자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남들 하듯이 일본 만화 적당히 베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기 싫었어요.”
‘현장의 스토리’에 천착하게 된 이유다. 로프 일을 하면서 올 초 2회분에 해당하는 원고를 만들었고 가을에야 3회분까지 완성해 제4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에 응모했다. 대상을 ‘먹을’ 줄 알았을까? 그는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답을 하며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내밀었다. 연필로 정성스럽게 쓴 당선 소감문이었다.
“약 3년간의 공백기 이후라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의도에서 공모전에 투고했는데, 너무 과분한 큰 상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부담, 기쁨, 한…. 여러 감정들이 난무하지만 아무래도 기쁨이 제일 큽니다. 오늘만 맘껏 기뻐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원고를 그리겠습니다. 저는 작가로서 아직 많이 미숙하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에 진인사를 다하여 성장하는 것을 천명으로 받들겠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한 시민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가 좀 더 나아지도록 관심을 갖는 게 시대정신이자 작가의 기본기라고 생각합니다. 불필요한 인생 막장들이 줄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펜을 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금상 ‘레슬러들’ 윤태준 “마지막으로 던진 낚시로 대어 잡아” “웹툰은 안 하느냐, 출판만화 망했는데 왜하느냐, 게임이 대세인데 게임을 해야지 등등. 주변의 말에 스트레스 좀 받았어요. 맞는 말인 듯싶기도 하고…. 한참을 고민하다 출판 쪽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에 응모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비인기 종목이 돼 버린 프로레슬러들의 고군분투를 소재로 한 <레슬러들>의 주인공과 닮았다. “금상 수상 소식에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고 집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며 수줍게 웃는 그의 얼굴과, 미련할 정도로 순수한 마음으로 현실과 부딪히며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만화 속 캐릭터도 그렇다. “오랫동안 작가 준비를 많이 해왔지만 사실 지난해 결혼하면서 기가 꺾였어요. 하지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을 통해 제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는 걸 확인했고, 덕분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앞으로 편안히 읽을 수 있으면서도, 대중성과 주제의식 중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 만화를 그리도록 계속 노력하면서 정진하겠습니다.” 그와 함께, <일요신문>과 함께, 출판만화의 부활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
우수상 ‘벌레는 찌르찌르’ 전재운 (글)·박준규 (그림) “제 처지가 벌레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재운 작가 “제 얘기 하고 싶었습니다. 기자, 극작가, 만화 스토리 작가를 전전했지만 다 잘 안 풀렸어요. 서울에서 일산으로, 지난해 7월엔 파주 원룸까지 왔습니다. 생활은 해야 하는 데 빚은 쌓이고, 나이는 마흔이 넘어가고…. 제가 스스로 벌레 같은 놈아,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그래, 여기가 내 유배지다. 다시 한 번 해보자며 스토리를 발굴했습니다.” ‘벌레 기업’ 스토리를 완성한 그는 포털 만화 코너를 살피며 벌레를 살려줄 만화가를 물색, 동갑인 박준규 작가와 의기투합했다. 우수상 수상. 그러나 그는 아직 배가 고프다. “저는 저 자신이 젊고 어리다고 생각합니다. 웹툰 쪽으로 진출할 거예요. 현재 웹툰의 주축인 10대 후반 20대 초반 작가들의 감각을 이길 수는 없겠죠. 하지만 제가 한 실패 경험, 제 나이대가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얘기를 할 겁니다.” |
우수상 ‘서른 즈음에’ 황기홍 “2%의 아쉬움은 연재로 뒤집을 것” 게다가 당시 1등인 금상 수상자 성주삼 작가(현 <칼의 땅> 연재 중)와 같은 화실에 있으며 성 작가의 만화공모전 응모 계기가 됐다. 그가 올해 다시 <서른 즈음에>로 응모, 우수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기대 못 했는데 1차 당선 네 작품에 포함돼 좋았죠. 대상 서바이벌 준비할 때는 괜찮다 했는데 해놓고 보니까 아쉬워요. 임팩트 있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제가 손이 빨라요.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스토리고요. 연재는 무리 없을 겁니다.” 그 아쉬움을 연재로 뒤집을 기세다. 이번 만화공모전 심사 총평에서처럼 ‘심사위원들을 보란 듯이 비웃을 만큼 기개 넘치는 원고’가 탄생할지 주목된다. |
최종심 총평 ‘적벽에 달리다’ 이야기 구성력 탁월 지난 10월 31일, 제4회 일요신문 만화공모전의 본선 2차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2차에서는 9월 17일에 진행한 1차 심사 통과작 네 편이 추가 원고를 통해 최종 순위를 결정지었는데요, 네 분 모두 짧은 시간 안에 적잖은 분량을 작업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만화작가 김수용, 이충호, 이현세 씨와 만화칼럼니스트 서찬휘 씨(왼쪽부터)가 10월 31일 오전 일요신문 편집국에서 만화공모전 심사를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어느 심사가 그렇지 않겠습니까만 남의 창작물에 순위를 반드시 매겨야 한다는 일과 그 결과를 발표한다는 일은 특히나 고역스럽습니다. 올 일요신문 만화 공모전에서 1차 심사는 수상권에 오를 네 작품을 뽑는 일이었기에 그나마 부담이 덜했는데, 2차 심사는 그 가운데에서 순위가 갈립니다. 심사위원 네 사람은 이에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심사에 임했습니다. 그리하여 저희가 선정한 최종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상 <적벽에 달리다>, 금상 <레슬러들>, 우수상 <벌레는 찌르찌르>, <서른 즈음에>. 대상으로 뽑힌 <적벽에 달리다>는 고층 건물 유리창을 닦는 ‘로프공’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1차 심사에서도 그래픽의 밀도 면에서 월등한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추가 원고는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긴장감과 이야기 구성력을 보여주었다”라는 평가와 함께 <일요신문>이라는 매체의 성격에 어울리는 극화를 보여줄 수 있으리란 기대를 받았습니다. 다만 심사위원들은 좀 더 자기만의 스타일을 갖출 것을 주문했습니다. 프로레슬링의 대중적 인지도가 사라져 가는 우리나라에서 레슬러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레슬러들>은 “일단 재미있다”, “무난하고 안정적”이라는 반응을 얻으며 <적벽에 달리다>와 끝까지 경합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극적이고 강렬하게 전달하는 힘이 다소 아쉽다는 평가를 받으며 금상으로 뽑혔습니다. 우수상에 오른 <벌레는 찌르찌르>와 <서른 즈음에>는 앞서 두 작품에 비해 독자들을 안정적으로 몰입시킬 수 있는 부분에서 다소 밀렸습니다. 어머니를 죽이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벌레(곤)’란 이름을 받았던 주인공이 아버지의 모든 것이었고 지금은 빼앗긴 회사를 되찾겠다고 나서는 <벌레는 찌르찌르>가 기업 드라마로 풀어나갈 수 있을 법한 규모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서른 즈음에>는 2000년대에 서른 즈음을 지나던 청춘들의 궁상맞으면서도 치열한 일상을 담아 1차에서 지면과 어울릴 듯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2차에서는 심사위원들 대부분 “눈여겨 볼 만한 작품들이었다”라고 말하면서도 이들 두 작품에 몰입과 공감을 끌어내는 부분이 다소 부족함을 지적했습니다. 이 한 달여는 누가 더 지면 연재에 좀 더 잘 어울리는지를 가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려운 시간 감내하며 작업에 임해주신 네 분께 고생하셨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제는 일요신문사와 협의에 따라 공모전이 아니라 신문지면 연재라는 ‘실전’이 다가올 텐데요, 공모전이라는 형태를 통했을 뿐, 네 분은 연재를 하는 시점에서 동일한 출발선에 선 것과 다름없습니다. 최종 심사결과 상위인 분들은 그 순위만큼의 질 좋은 원고를, 하위인 분들은 저희 심사위원들을 보란 듯이 비웃을 만큼 기개 넘치는 원고를 한 사람씩의 작가로서 만들어 주시길 기대해 마지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사위원장 만화가 이현세 심사위원 만화가 이충호·김수용·만화 칼럼니스트 서찬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