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석 대표
모뉴엘 신화의 주역은 현재 해외 도피 중인 박홍석 대표이사와 부도사태 직후 퇴사한 원덕연 부사장이다. 원 부사장은 디자인학도 출신으로 실제 모뉴엘을 창업한 인물이다. 타사 제품에 비해 디자인 면에 월등했던 이유는 역시 원 부사장의 재능 덕이었다. 2007년 삼성전자 미국법인 출신으로 벤처 1세대로 칭해지는 박홍석 대표를 영입한 이후 모뉴엘은 철저한 분업화 전략에 나선다.
기존의 창업자인 원 부사장은 제품 디자인과 국내 사업만을 담당했고, 훗날 매출액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해외사업 분야는 박 대표가 전담하게 된다. 그리고 박 대표는 차근차근 모뉴엘 지분의 94%를 차지하며 사실상 회사를 장악했다.
모뉴엘 입장에서 해외파 선진 공학도이자 실전 기업 경험까지 풍부한 박 대표 영입은 ‘신의 한 수’에 가까웠다. 그런 모뉴엘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지난 10월 20일, 모뉴엘은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박홍석 대표는 해외로 잠적했다. 알고 보니 연매출액 1조 원 달성은 허상에 불과했다. 이는 분식회계와 매출 부풀리기를 통한 금융사기가 목적이었다. 현재까지 조사에 따르면 모뉴엘은 지난 6년간 각종 서류조작을 통해 금융권의 대출을 받았고, 홍콩 등 현지실사가 있을 때만 간헐적으로 가짜 공장을 내세우며 사기극을 펼쳐왔다.
모뉴엘이 가짜 서류로 금융권의 돈을 빼내간 주요 수법은 이른바 ‘매출채권 팩토링’. 한 기업이 외상으로 판매해 발생한 채권을 금융권에 할인 판매해 자금을 따내는 방식이다. 소위 말하는 ‘채권깡’이 그것이다. 현재 모뉴엘은 농협은행,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금융권에 물어야 할 돈만 6786억 원 수준이다. 이 중에는 담보대출도 있지만, 그 담보 역시 무역보험공사 책임이다. 금융권의 피해도 피해지만, 모뉴엘을 상대로 하청을 맡아온 수많은 중소기업의 피해도 만만찮다.
‘혁신기업’으로 꼽혔던 모뉴엘의 초대형 분식회계가 터지자 관련업계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사진은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모뉴엘 본사 전경.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모뉴엘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제품의 기술력에 대해 보다 근본적으로 따져 물을 필요가 있다. 어찌됐든 모뉴엘은 독자적인 플랜트와 자본이 아닌 기술을 근간으로 하는 벤처기업이다. 모뉴엘의 문제점은 ‘기술’은 분명 존재하지만, 실제 ‘쓰임’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뉴엘이 미국 전자박람회에 출품한 신기술 제품 중 시장 판매로 연결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이는 기술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잘 꾸미고, 이용한 결과다. 실제 소비자가 접하는 모뉴엘 제품의 수준은 여느 제조업체의 것과 비교해 봐도 특별하진 않았다. 즉 적절한 콘셉트를 잡은 기술을 사업의 ‘목적’이 아닌 ‘도구’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기술이 목적이고 근간이 되는 벤처기업의 기본을 무시한 셈이다.”
산학 프로젝트와 벤처 양성에 정통한 한 사립대 교수는 기술사기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기술은 실현되기까지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 흔히 업계에서 말하는 ‘기술주기’가 그것이다. 또 비록 그 기술에 투자가 있었음에도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실제 기술 연구의 절실한 의도가 있었다면, 비록 현실화에 실패하더라도 그간 축적된 자료와 경험은 또 다른 기술 연구에 자산으로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애초 그 목적이 아니라면, 또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수준의 기술을 도출했더라도 그 수준과 다르게 외부에 단순 홍보의 수준을 넘어 이를 과장하거나 사업에 이용한다면, 그것은 사기다. 어쩌면 이번 모뉴엘 사태는 그 묘한 경계점에 있을 수도 있다.”
<일요신문>은 지난 3년간 수차례에 걸쳐 벤처기업 ‘플래닛82’의 나노이미지센서(SMPD, 1룩스 이하의 암실에서도 촬영이 가능한 이미지센서) 기술의 사기극을 보도한 바 있다. 준정부기관에서 개발해 한 벤처기업으로 넘긴 해당 기술은 지난 2011년 결국 허구로 밝혀졌고, 한때 시가총액 기준 코스닥 순위 4위를 기록했던 업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플래닛82 사태는 허위 기술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잘만 홍보한다면 하나의 아이템으로서는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심지어 이 기술은 허위로 판명난 후에도 올 초 ‘다단계 아이템’으로 이용된 사례를 접할 수 있었다(<일요신문> 보도).
모뉴엘 히트작인 물걸레 기능이 탑재된 로봇청소기 클링클링(왼쪽)과 통합형 홈씨어터 PC.
어쩌면 문제는 지금부터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7월 금융위원회를 통해 ‘기술금융’ 상품을 내놓았다. 이는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의 일환이며 금융권에 대한 보신주의를 질타하는 데에서 비롯됐다. 기술금융은 투자를 대가로 업체의 지분을 가져가는 기존의 벤처캐피탈과 다르다. 순수하게 기술만을 보고 자금을 융통해 준다. 좋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어도 마땅한 담보나 자본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벤처기업을 비롯한 중소기업들은 ‘사막의 오아시스’다. 실제 이를 이용하는 업체들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허나 이를 반대로 보자면, 제2의 모뉴엘이나 플래닛82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앞서의 교수는 ‘정보의 불균형’이란 말을 통해 정부에 몇 가지 주의사항을 당부했다.
“현재의 기술금융은 업체와 정부 간 철저한 ‘정보의 불균형’ 상태에서 돈을 융자해 준다. 기술을 담보로 한다지만, 그 기술은 엄연히 무형 자산이다. 담보에 대한 평가는 철저히 업체가 내세우는 정보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술금융은 분명 좋은 취지지만, 현재 너무 성급한 감이 없지 않다. 담보로 하는 기술을 읽어내고 평가할 수 있는 검증의 과정이 빈약하다. 이를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인력 등용을 포함해 자구책이 필요하다. 이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언제든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