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빌딩 전경.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김 회장은 이날 경기 내내 아들을 응원했으며 경기 후에는 메달(단체전 금, 개인전 은)을 목에 건 아들과 환하게 웃으며 사진도 찍었다. 지난 3월 27일 신병 치료 차 마스크를 쓰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미국으로 출국하던 때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6개월간 많이 호전된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한 몸 상태가 아니었다”며 “사진상에만 웃으며 나왔을 뿐 계속 부축 받았고 진땀을 많이 흘리며 견뎠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6개월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재계에서는 경영일선 복귀론이 고개를 들었다. 조만간 김 회장이 그룹 경영에 복귀해 신사업 추진과 투자를 진행해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러나 김 회장의 경영 복귀에 대한 외부의 시선이 좋지만은 않다. 한화 내부 관계자는 “임직원들이 회장 복귀를 바라고 있으나 티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 회장이 재판 때문에 자리를 비운 지난 몇 년간 한화그룹은 총수 부재로 인한 어려움에 시달렸다. 김연배 한화생명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비상경영위원회를 가동하긴 했지만 과감하고 신속한 결단을 내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 역시 총수가 부재중인 한 기업 관계자는 “내부 시스템이 돌아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으나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장기투자 결정을 내리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며 “사업 파트너와도 속 깊은 얘기를 나누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한화그룹 관계자 역시 “큰 틀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하는 투자 결정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면서 “작은 투자 결정도 망설일 정돈데 하물며 수천억, 수조 원 단위 투자 결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한화그룹의 최근 움직임은 김승연 회장의 복귀론에 힘을 실었다. 인천아시안게임이 끝나자마자 삼남 동선 씨가 한화건설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시작했으며 김 회장의 최측근 중 한 명인 김연배 부회장이 한화생명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긴 것은 김 회장 복귀를 위한 체제 정비로 해석됐다. 한화그룹이 최근 말레이시아, 중국, 전남 여수 등 국내외 태양광 설비 투자를 확대하기로 결정한 것도 김 회장 복귀를 가시화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동선 씨는 지난 10월 초 한화건설에 입사해 10월 16일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 한화건설의 해외 건설 현장을 경험하기 위해 떠났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입사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중동으로 떠난 탓에 오너 자제의 입사에 따른 분위기 변화는 크게 없었다”고 전했다.
김승연 회장과 장남 김동관 한화솔라원 실장. 사진제공=청와대
동선 씨가 한화건설에 입사함으로써 김 회장의 아들 삼형제는 모두 각각 다른 계열사에서 경영수업을 받게 됐다. 장남 김동관 한화솔라원 실장은 이미 그룹의 태양광 사업을 주도하는 위치에 올라와 있으며 차남 동원 씨는 지난 3월 한화L&C에 입사했다. 이런 가운데 삼남 동선 씨도 입사하자 한화그룹의 후계승계 작업에 시동이 걸린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재계 고위 인사는 “그동안 장남만 뚜렷한 역할이 있었는데 차남과 삼남이 경영수업 대열에 합류하면서 한화의 후계승계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며 “아무래도 태양광 사업을 이끄는 장남에 무게가 많이 실리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한화그룹은 지난 10월 30일 국내외 태양광 설비에 과감히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태양광 사업을 이끄는 한화큐셀, 한화솔라원, 한화케미칼이 모두 대규모 설비 증설에 나선다.
우려는 존재한다. 올해부터 개선될 것으로 예상됐던 태양광 시장이 여전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이 최근 신수종사업에서 태양광사업을 제외시킬 것으로 전해진 것만 봐도 태양광시장의 전망이 얼마나 어두운지 알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 초부터 태양광 시장이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으나 개선 시기가 자꾸 지연되고 있다”며 “아직까지 언제 개선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힘들 만큼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화는 오히려 대규모 증설을 결정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그룹 주력 사업으로 해왔던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해나갈 것이기에 지금 투자하면 태양광 시장이 개선될 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판단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지금이 투자 적기로 판단했다는 얘기다. 문제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에 달렸다.
한화의 이 같은 결정에는 김승연 회장의 ‘재가’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건강 호전 후 김 회장은 그룹 안팎의 주요 결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심지어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신임감독으로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는 일을 김 회장이 직접 지시했다는 얘기까지 전해질 정도다.
한화그룹은 대외적으로 김 회장의 경영 복귀 공론화에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경영 복귀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주위 시선이 따갑기 때문이다. 아직 집행유예 기간인 탓도 크다. 집행유예 기간에는 등기이사에 오르지 못하며 따라서 대표이사도 될 수 없다. 단순히 그룹 회장으로서 직함만 있을 뿐이다. 재계 관계자는 “복귀 명분을 만드는 게 중요한데 지금으로선 뚜렷한 명분이 없는 것 같다”며 “그래도 회장으로서 활동이 점점 늘어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