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재계 관계자가 내뱉은 말이다. 태풍의 핵은 12월 초로 예정된 삼성그룹 인사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지난 2, 3분기 ‘어닝쇼크’ 수준으로 영업이익이 줄어들면서 대규모 임원 물갈이설이 파다하다. 특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입원한 이후 사실상 경영전면에 나선 이재용 부회장이 주도하는 첫 인사여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삼성의 오랜 성과주의 인사원칙에다, 이 부회장만의 경영스타일이 더해지는 것이다. 향후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삼성그룹을 이끌어갈 이른바 ‘이재용 사단’의 등장 가능성도 점쳐진다.
물갈이의 타깃은 우선 삼성전자를 이끄는 3인의 CEO다. 권오현 반도체(DS)부문 부회장, 신종균 IT모바일(IM)부문 사장, 윤부근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이다. 실적만 놓고 보면 스마트폰의 성장성 한계에 부딪쳐 있는 신 사장이 가장 불안해 보인다.
반면 반도체 부문은 호황 속에 한 차원 앞선 미세공정의 기술력으로 원가를 절감하며 스마트폰 부문에서 빠진 영업이익을 채우고 있어 상대적으로 안정돼 보인다. 가전부문도 큰 성장을 이뤄내진 못했지만, 내수 침체와 글로벌 경기침체가 겹쳐진 상황에서 그나마 선방한 것으로 평가된다. 세 부문에 대한 삼성 수뇌부의 평가로 이들 CEO는 물론 관련 부문 임원들의 자리가 결정 나는 것이다. “제 자리라도 지키면 성공”이라는 분위기다. 지난해 161명의 신임 임원이 나왔는데 올해는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더욱이 스마트폰 실적 부진을 만회할 신성장동력 찾기가 최우선 과제인 만큼 새로운 사업부문을 발굴하고 동력을 이끌어낼 ‘용인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에서 삼성전자 전체가 인사 때까지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할 형편이다. 삼성 내부사정에 밝은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큰 폭의 교체보다는 조직에 긴장을 주는 정도의 상징적 인사에 그칠 가능성도 높다”고 내다봤다.
삼성전자 실적 악화의 여파는 그룹의 다른 전자부문 계열사들로도 확산되고 있다. 3분기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사업 부진으로 덩달아 적자를 낸 삼성전기는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40~50대 부·차장급 직원을 중심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부문별 감원 규모가 정해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디스플레이도 그룹의 경영진단을 받고나면 조만간 삼성전기와 같은 방식의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삼성SDI는 PDP 사업을 접으면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200여 명을 내보낸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딱히 정해진 인사철이 없다. 정몽구 회장의 지시에 따른 수시 인사가 관행이 돼버렸다. 최근에도 이삼웅 기아차 사장을 불시에 교체했다. 이 전 사장은 지난 10월 말 노사 갈등 해결에 시간이 지연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했다. 후임엔 재경본부장이던 박한우 사장이 취임했다.
현대차의 연말 인사는 계열사별 임원 승진 인사만 단행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하지만 최근 실적 부진에 따른 큰 폭의 인사가 될 것이란 전망도 만만찮아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의선 부회장 체제로 무게 중심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만큼 연말 인사의 내용에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SK그룹 빌딩(왼쪽)과 LG 트윈타워.
SK그룹은 12월 중순 인사가 예정돼 있다. 일각에서는 최태원 회장의 부재에 따라 조직 안정이 우선이어서 소폭의 인사가 이뤄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지만, 석유화학 업종의 불황에 따라 고전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 등 주력사업의 사업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대규모 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수펙스추구협회라는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어서 조직 흔들기가 훨씬 쉽다는 분석도 나온다.
LG그룹은 상대적으로 인사폭이 크지 않을 전망이다. LG그룹은 11월 말부터 12월까지 계열사별로 인사를 발표하는데, 지난해 주요 계열사 CEO들이 교체된 터라 고위층 인사요인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전략 스마트폰 ‘G3’가 선전하면서 LG전자가 3분기에 사상최대 실적을 낸 것이나, 핵심 계열사인 LG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도 실적개선이 이뤄진 게 낙관적인 전망을 낳고 있다.
기업분석업체인 한국CXO연구소는 지난 6일 올해 재계인사 키워드로 임원감축(Cut)·총수부재(Absence)·세대교체(Next)·올드보이 퇴진(Delete)·젊은 연구인력 강세(Young, Engineering, Supervisor)의 앞 글자를 딴 ‘캔디’(CANDY)를 제시했다. CXO연구소는 실적둔화 여파로 기업들이 임원감축 카드를 꺼내들 것으로 예상하면서, 2년 이하 임원들이 집중적인 감축 대상이 될 것으로 봤다.
국내 100대 기업의 임원 수는 2009년 5600명에서 2010년 6000명, 2011년 6600명, 2012년과 2013년 각각 6800명, 올해 7200명으로 증가세를 보여 왔다. 조직의 리더를 늘려 실적을 개선해 보려는 시도가 효과를 보지 못함에 따라 올 연말 인사에서는 상당수 기업들이 임원 줄이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CXO연구소는 전망했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