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탈세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광주지법으로 들어서는 허재호 회장. 최근 허 회장이 계열사 누락 의혹으로 또 한번 검찰에 고발되면서 그룹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연합뉴스 | ||
여기에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시작된 경제난이 겹치면서 치명타를 맞았다. 건설업체를 지원하기 위하여 보험, 증권, 은행, 자산운용사 등 여러 금융기관이 결성한 대주단에 의해 대주그룹 최대 계열사인 대주건설의 퇴출이 결정된 것. 대주건설은 건설사 중 유일하게 D등급을 맞으며 워크아웃 수순을 밟고 있다.
대주그룹이 흔들리자 호남 지역에서는 “대주그룹이 전 정권과 연관이 깊다는 이유로 현 정권이 ‘대주 손보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주그룹이 위기에 빠지게 된 원인과 배경을 쫓아가봤다.
대주그룹은 광주·전남 지역의 대표 기업으로 꼽힌다. 오너인 허재호 대주그룹 회장(67)이 광주에서 1981년 ‘대주종합건설’로 시작한 것이 모태다. 현재는 대주건설, 대한조선, 광주일보를 포함해 총 41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연매출 2조 원을 올리고 있는 대기업이다. 특히 DJ 정권이 들어선 이후인 지난 10년 동안의 성장이 눈부셨다. 대주그룹은 90년대 중반까지 자금난으로 허덕였으나 계열사 몇 개를 팔아치우며 자금난을 해결했고 여기에서 남은 돈을 이용해 공격적 M&A에 나섰다.
하지만 그 M&A가 발단이 돼 갖가지 구설수에 시달렸다. ‘대주그룹의 실제 주인은 정치인 A 씨다’ ‘골프장을 한꺼번에 인수하는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식의 소문이었다.
모두 확인되지 않는 루머였지만 호남지역 기업이란 지역적 특성과 국민의 정부·참여정부가 집권했던 지난 10년간 급성장했다는 시기적 특성이 맞물려 흘러나온 것들이었다. 물론 이런 루머들은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럴듯한 나름의 배경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대주그룹의 계열사인 동양상호 저축은행 회장에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형인 이 아무개 씨가 임명된 것이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병완 전 실장의 형이 회장이 된 것에 대해 재계에서 말이 많았다”며 “특히 금융권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던 사람이 갑자기 저축은행 대표가 된 것은 석연치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몇몇 언론이 이 대표의 취임 배경에 대해 취재를 하기도 했으나 밝혀진 것은 없었다.
대주그룹의 위기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07년이다. 당시 국세청은 대주그룹이 수백억 원의 탈세를 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특별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검찰로 치면 특수부에 해당하는 서울청 조사 4국에서 담당했다.
조사결과 탈세 혐의를 잡은 국세청은 허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허 회장은 2005∼2006년 이뤄진 대주건설과 대주주택의 법인세 등 508억 원 규모의 탈세를 지시하고 비슷한 시기에 부산 남구 용호동의 한 아파트 공사에 시공사로 참여해 연대보증과 사업자금 지원 등의 대가로 받은 121억 원 가운데 100억 원가량을 빼돌렸다. 특히 수사과정에서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허 회장이 전 정부 실세들에게 무마청탁을 해왔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허 회장은 얼마 전 법원에서 선고유예를 받았지만 세무조사를 계기로 시작된 위기는 둑이 터진 것처럼 계속됐다.
특히 정권 교체 이후 더욱 심해졌다. 정권교체 이후 재계에서는 ‘전 정권에서 성장한 기업들에 대해 세무조사 및 검찰 조사를 할 것이다’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대주그룹도 ‘전 정권에서 급성장한 기업 중 하나’였기 때문에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실제 있었을지도 모르는 ‘손보기’보다는 대외 환경이 더 큰 악재로 다가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건설사들이 잇단 부도위기에 놓이게 된 것. 대주그룹 최대 계열사인 대주건설도 예외는 아니었다. 또한 제2의 계열사라 할 수 있는 대한조선도 워크아웃 대상 기업에 선정됐다.
대주건설은 대주단에 가입한 건설사 중 유일하게 D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이 과정이 석연치 않았다는 게 대주그룹이나 금융권 관계자들의 말이다.
대주건설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애당초 이번 평가 기준 자체가 모호했지만 그렇더라도 외부 기관의 평가에서도 B 등급이 나온 대주건설을 D 등급으로 평가한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갑자기 등급이 바뀐 것은 결국 외부의 힘에 의한 게 아니냐”며 “퇴출 업체 명단에 어떻게 호남기업만이 포함됐는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번에 공정위가 검찰에 허재호 회장을 고발한 것도 결국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이 재계 일각의 분석이다.
대주그룹은 지난해 4월 3일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됐으나 같은 해 7월부터 지정기준이 자산총액 2조 원에서 5조 원으로 완화되면서 제외됐다. 허 회장은 지난해 4월 3일 기업집단 자료를 제출할 때 자신이 직접 지분을 보유하거나 친족, 임원, 계열회사의 지분보유, 임원겸임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21개 계열사를 누락시켰다. 누락사실을 인지한 공정위의 독촉에 따라 21개사를 세 차례에 걸쳐 신고했으나, 공정위는 소속회사 신고누락의 정도가 크고 허위자료 제출의 고의성이 인정된다며 허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누락된 계열사의 자산 규모는 약 1조 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그룹 및 누락된 계열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 대주그룹의 자금흐름이나 계열사 현황 등은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지난 정권 때 탈세로 검찰 조사를 받을 때와는 다른 각도로 수사가 진행될 수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건이 일선 수사부서에 배정되면 그동안 대주그룹과 관련되어 올라온 첩보들을 모아 수사에 참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루머로만 떠돌던 대주그룹 성장배경에 대해서도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현재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대주그룹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반드시 대주그룹을 지켜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하지만 그룹 안팎의 상황이 대주그룹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지는 않다. 대주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보유 중인 골프장이나 계열사들을 시장에 내놓았다. 하지만 매각이 뜻대로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 조사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과연 대주그룹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