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사가 시끄러운 내막 - 이연호 기자

일요신문 2015-12-21 조회수 4357

기사 바로가기 ==> [핫스토리] 김영사 전·현직 대표 ‘이전투구’ 내막

[일요신문] ​특종상 후기는 쓸 때마다 조금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들에게 과연 얼마만큼 중요하고 가치 있는 기사였는지 따져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저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상 정도로 생각하고 간단히 후기를 써 보겠습니다. 한 때 잘 나가던 정치인이 있습니다. "형님으로 부르겠습니다"라는 말로부터 제게 형님이 된 분이죠. 나이차로 보면 족히 삼촌뻘인 그를 형님으로 부르는 게 가끔 꽤 쑥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는 오히려 제게 자신을 지칭할 때면 늘 "형이 말이야…" "형은 있잖아…"등의 말로 절 편안하게 해 줍니다. 그에게 어느 봄날 언제나처럼 "형이 고기 사 줄게. 보자"라는 연락이 왔고, 기분 좋게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약속 시간이 넘었는데도 그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고 연락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리를 뜰 수는 없었습니다. 두 시간을 꼬박 기다린 후에야 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그만한 사정이 있었던 겁니다. 그가 늦은 대신 저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내 놓았습니다. "대한민국 문화계를 뒤흔들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게 그의 말머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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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에서 과거 책을 냈던 인연으로 만난 김영사의 전 사장이 사석에서 꺼낸 얘기가 제게로 옮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저의 오감은 오직 ‘국내 단행본 업계 메이저 출판사 중 한곳인 김영사의 오너가 사이비 종교 교주’라는 그의 말에만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취재를 위한 첫 번째 접촉 대상은 김영사 전 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수 십 년간 김영사를 맡아 키워 온, 출판계에서는 알아주는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이었지만 지난해 시원치 않은 이유로 갑자기 자리에서 내려 온 인물이었습니다.

어느 봄날 아침. 인사동 찻집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인터뷰는 허락했지만 기사화에 대해선 주저하던 그를 설득하는 일부터 취재는 시작됐습니다. 그에게 들은 바로는 회사 주식과 경영을 생판 모르는 30대 초반의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에게 일임하고 수도에만 정진한 미담의 주인공이었던 김영사 오너의 실상은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무허가 법당을 차려 놓고 직원들을 현혹해 노동력과 임금을 착취한 것은 물론, 회사 경영에서 완전히 떠나 있었음에도 꼬박꼬박 고액의 월급을 챙겨갔고 각종 개인 경비를 회삿돈으로 해결했던 것입니다.

확인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에게 회사 직원 명단을 요구했고, 십 여 명의 전.현직 직원들을 상대로 본격 취재에 돌입했습니다. 직원들의 증언은 대동소이했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의 증언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기자의 일이란 늘 의문을 품고 의심해야 하는 일입니다. 피해자를 자처한 그가 오히려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오너와의 불화로 회사를 그만 두고 불만을 품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증거 확보가 필수였습니다.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기에 매달렸습니다. 간절하면 늘 어떻게든 열리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회계자료를 입수했고 결국 무사히 보도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제 성격상 가장 어려운 순간은 부정을 저지른 측의 입장을 듣는 일입니다. 상대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집요하게 쏟아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이지만 가장 꺼려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부정의 장본인인 김영사 오너와 그의 최측근이자 김영사 최고위 임원에게 입장 확인 전화를 할 때는 특히 많은 긴장을 했습니다. '사이비 종교 교주'라는 단어가 주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보도 이후 친하게 지내던 경찰들로부터 '수사를 하고 싶다'는 요청을 받았고, 제가 수집한 자료들을 넘겨줬습니다. 수사는 진행 중이며, 곧 결론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감사의 인사를 끝으로 후기를 마칠까 합니다. 김원양 국장님, 이성로 팀장님 절 잘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소나무 같이 늘 푸른빛으로 변하지 않고 제 곁에 서 있는 동생 정환이와, 최근 회사를 떠나 제주도에서 힐링 여행 중인 동생 다영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연호 기자(일요신문 취재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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