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위를 달리는 ‘말’이 내는 기자의 ‘말’-김포그니 기자

일요신문 2014-08-11 조회수 5713
[일요신문] # 기사 바로가기 - 박 대통령 접견 사진 논란 "국민은 봄 잃어버렸는데 대통령 의상은…"

기본이 있어야 재미도 본다는 말이 있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체감하는 문구다.

이를테면 어떤 사건을 취재할 경우 별다른 노력 없이도 술술 잘 풀릴 때가 있다. 초짜 시절엔 취재가 잘 되면 “아, 이상하게 잘 풀리네”라며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가거나, 화장실 문을 닫아놓곤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미간을 찌푸리며 “아, 난 천재인가봐”라며 테리우스 비웃음을 날리기도 했다. 안타까운 과거다.

돌이켜보면 순조롭게 잘 풀렸던 취재 뒤에서는 항상 아주 약간의 ‘운’과 오랜 시간 엮어 올린 ‘퍼즐’ 맞추기에 있었다. 여기서 퍼즐이란 그간의 사소한 ‘경험’, 의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형성된 주변과의 ‘인간관계’가 얽히고 설킨 것을 의미한다. 이런 기본이 되어 있어야 재미도 볼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가령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취재가 그러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이 발생한 초기 단계부터 취재에 착수하지 않았기에 사건의 개요조차 파악이 안 된 상태였다.

“조만간 마무리되겠지”라고 여겼던 문제의 이 ‘국정원’ 사건은 사건 발생 1년이 지났음에도 대부분의 매체에서 연일 주요 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사회부 기자인데 그래도 한번 즘 건드려 봐야하지 않을까” 라는 일종의 책임감이 느껴졌다. 한참이나 지난 시기였지만 그래도 뛰어들어야지. 휴대폰 버튼을 눌렀다. 뒤늦은 신호가 가기 시작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사건 제목부터가 이러하니 문제가 된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를 먼저 만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우성 씨의 경우 민변에서 변호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전화를 건 곳은 민변이 아닌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

‘공감’은 2005년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공익법무법인으로 민변을 비롯해 공익변호사들에게 존경받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번 국정원사건을 맡은 민변 측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음이 당연했다. 그냥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껴졌다. 특히 공감의 OOO 변호사 등은 민변을 비롯한 법조계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럼 다 알고 있겠지.

“변호사님, 전데요. 국정원 사건 지금 민변에서 누가 맡고 있나요.”

“오. 포그니 기자. 드디어 이거 취재하려는 구나? 왜 연락이 없나 했어. 잠깐만”

OOO 변호사와는 2005년도부터 안면이 있던 터. 취재는 순조로웠다. 2005년도에 OOO 변호사를 만났을 때 나는 코흘리개 대학교 2학년생이었다. 기자가 될 것을 염두에 두고 OOO 변호사와 함께 일을 시작 한 게 아니었단 얘기. 그저 소중한 인연이라 생각하고 거의 10년간 관계를 이어온 게 취재 과정에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유우성 씨 측에선 OOO 변호사의 추천을 받은 기자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OOO변호사님이 제 이야기 하셨어요? (웃음) 일단 사무실로 오십시오. 설명해드릴게요.”

유우성 씨와 그의 여동생 인터뷰 섭외도, 관련 자료 단독 입수도 물 흐르듯 진행될 수 있었다. 유 씨는 물론이고 특히 이번 사건에서 진술 번복으로 국정원 강압 조사의 의혹을 제기하게끔 했던 그의 여동생 유가려 씨는 인터뷰하기 어려운 인물로 유명했다. 이 사건을 가장 오랫동안 취재한 <한겨레>의 허재현 선배 정도가 유가려 씨를 단독으로 만나봤을 정도였다. 그런데 목요일 저녁, 한두 시간 안에 이 모든 섭외가 해결됐다.

장기간 레이스에 맨 마지막으로 뛰어들어 한두 시간 안에 단독 거리를 입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2005년부터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에서 일하며 쌓아둔 신뢰 관계가 있었다. 이게 없었다면 이번 취재는 겉핥기에 그쳤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러운 만남,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취재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분야에 사람들과의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이를 통한 자연스러운 관계 형성, 그리고 사소한 경험들이 뜻하지 않게 취재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는 케이스가 그동안 수도 없이 많았다.

기자를 두고 발로 뛰는 업이라 했다. 발로 뛴다는 게 ‘현장을 열심히 돌아다니라’는 말도 되지만, 평소 의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세상 구경을 열심히 하고 돌아다니다 보면 기자로서의 ‘재료’, 이를테면 일종의 기본이 다져지는 것이 아닌가, 취재를 하면 할수록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쉽게 말해 발로 많이 뛰고 경험을 많이 한 기자 본인의 역량이 눈부시게 대단해서 특종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변과의 호혜관계, 상호작용 이른바 얽히고 설킨 ‘퍼즐’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이번 일요신문 취재3팀에서 터트린 온라인 특종도 이런 ‘퍼즐’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그렇다.

이를테면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추모 기간에 푸른 색 계열의 옷을 입었던 적이 있다. 김수현 선배에게 지나가는 말로 “박 대통령이 혼자 푸른 색 옷을 입었더라고요. 그거 좀 문제 있는 거 아닌가. 기사로 쓸까 말까 고민 중입니다”라는 말을 흘렸더니 김수현 선배는 ‘흥’ 하는 새침한 얼굴로 “어머, 정말? 그거 문제 있다. 어서 기사로 써”라며 업무지시를 내리셨다. 그 과정에서 김수현 선배는 나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내리치도 했다. “빨리 보도하라”는 강한 표시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기사가 “국민은 봄을 잃어버렸는데 대통령 의상은”(2014.04.24)이다.

이 기사가 나간 뒤 박 대통령의 의상에 대한 논란이 거세졌다. 일례로 한 포털 게시판에는 “대한민국 언론 중에 <일요신문>만 박 대통령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며 <일요신문>을 칭찬하는 글이 게시돼 조회 수만 약 30만 건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후 여러 매체들에게 박근혜 대통령 의상 색에 대해 의문을 표하기 시작했고, 박 대통령은 한동안 검은 색 옷을 입고 공식석상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도되지 않을 뻔한 이 기사는 앞서도 말했지만 김수현 선배의 조언에서 시작됐다. 이렇듯 특종이나 좋은 평가를 약소하게나마 받은 기사들의 대부분은 기자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역량’보다는 ‘주변’에 의해 만들어질 때가 더 많다.

‘박근혜 조문논란 할머니 단독 인터뷰’ 기사 역시 대다수의 주요 매체에서 받아 적은 특종 중 하나다. “이 인터뷰를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 갑자기 등장한 분이 계셨나니 이름하야 신자. 민자. 섭자.라고 하겠다.

신민섭 선배는 “내가 지금 너라면 꽃 춤을 추겠다. 당장 써”라며 갑자기 꽃놀이 춤을 춰 보였다. 그 모습에 놀라 시작된 문제의 ‘박근혜 조문 논란 할머니 인터뷰’ 결과는 예상 밖의 뜨거운 호응으로 돌아왔다.

끝으로 누군가 내게 ‘특종은 어디서 나오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홍성철 팀장을 한번쯤은 만나야 한다고 답하고 싶다.

홍 팀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토마를 타고 있는 위풍당당한 자신의 모습이 촬영된 사진’을 올려 주목받고 있다(그는 최근 페이스북을 개설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 그의 모습이 흡사 모 대통령을 연상케 하는 위압적인 인물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지만, 홍 팀장의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뜻하지 않은 여유를 느낄 수 있어 주목할 만하다. 

콧김을 내뿜으며 씩씩대는 야생마를 여유 있는 손짓으로 다루는 자태에서 “이게 바로 리더십이 아닌가”라는 걸 깨닫고 마는 것이다. 그 사진을 보고는 ‘원효의 깨달음’ 마냥 무릎을 탁 치고 말았음은 물론이다.

취재 좀 한다는 기자들 중에는 예상치 못한 곳을 본능적으로 오가며, 말 그대로 말처럼 뛰어다니는 이들이 여럿 있다. 그 때만큼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인 것이다. 본능적으로 쓰려던 기사와 전혀 상관없는 취재원에게 전화를 하고 달려가서 기묘한 특종을 건져내는 이들. 

천방지축 ‘망아지’같은 기자들을 ‘적토마’로 길러내는 게 팀장이 갖춰야 할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미처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망아지들이 홍성철 팀장 밑에서 하나둘씩 적토마 수업을 받고 있다.

홍 팀장은 기자의 이런 본성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몇 안 되는 팀장이다. 기자를 풀어주고 뛰게 해주는 과정에서 극적인 상황에서만 적절한 채찍질을 하는 것을 보면 경이로울 때가 많다. 본인의 능력 부재로 컨트롤 하지 못하는 말들을 두고 “저 말은 좀 맛탱이가 간 것 같다. 도축해야 할 것 같다”며 손을 놓는 미약한 이들도 있다. 반면 ‘검은 선글라스’의 홍 팀장을 사자성어로 말할 것 같으면 ‘여유작작’이라고 해야 할까.

일요신문 취재3팀에 온지 2 달 반 만에 벌써 2 건의 특종을 터트렸다. 단독 건만 해도 열 손가락을 넘어간다. 홍 팀장 특유의 ‘기자를 울타리 밖으로 풀어주기’ 관리를 받다보면 취재를 안 하려고 해도 안할 수가 없다. 자유롭게 뛰게 해주는데 취재를 못하는 이는 기자라고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요신문에서 좋은 보도가 나온다면 그건 전적으로 해당 기사를 쓴 기자보다는 그 기자를 둘러싸고 형성된 퍼즐의 하모니에서 나온 것일 테다.

나의 경우 취재3팀의 홍성철 팀장, 신민섭, 김수현, 강태선 선배의 부처와 같은 자애로운 태도와 채찍질, 그리고 복도에서 마주치는 편집기자 선배들로부터 힘을 받을 때가 있다. 편집 선배들은 어찌나 다정한지 “취재 잘 되가?”라고 말하며 어깨를 살짝 짚고 지나가주실 때가 많은데 이럴 때마다 마치 가족으로부터 위안을 받는 느낌이 들고 마는 것이다. 뒤늦은 얘기지만 편집 선배들께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오는 7월 9일은 일요신문i 창간 2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때, 그때 탄력적으로 장애물을 뛰어넘어 경주하는 말들이 이젠 ‘미디어’라는 거대한 들판을 질주하고 있다. <일요신문>의 ‘말’들이 국민적 여론으로서의 ‘말’이 되려는 과정에 취재3팀 내부의 ‘퍼즐’들이 시시각각 맞춰지며 특종을 쏟아내고 있다. 레이스는 시작됐다.

김포그니 기자 (일요신문 취재3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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